언어와 상징권력 외 3
생일주간이라서 마음껏 책을 살 수 있는 한 주다. 이럴 때는 전집을 사는 것도 괜찮기는 하지만, 갖고 싶은 전집은 대부분 그중 몇 권을 이미 산 경우가 많고, 또 전집은 고르는 재미가 없어서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다. 이럴 때는 역시 평소에 보관함에 담아두고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을 위주로 사는 것이 좋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은 평소 보관함에 담아 두고 꼭 사야지 했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서 막상 살 때가 되면 쉽게 손이 가지 않고, 당장 사고 싶은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번에 산 책 중 <18/19세기 독일철학>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권은 갑자기 끼어든 책들이다. 최근에 생긴 관심을 반영하는 것일 테지만, 이 관심이 언제 또 변덕을 부릴지가 걱정이다.
1. <18/19세기 독일철학>(프레드릭 코플스턴/표재명/서광사)
영국의 예수회 신부인 프레드릭 코플스턴의 철학사는 거대하다. 원서로는 11권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책으로는 <후기 스콜라 철학과 르네상스철학>을 제외하고는 다 모았다. <18/19세기 독일철학>은 피히테에서 니체까지를 다룬다. 피히테와 셸링의 비중이 생각보다 상당히 높다. 약 21년 전에 코플스톤 철학사의 1권에 해당하는 <그리스 로마 철학사>를 샀으니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났다. 이처럼 양이 많은 철학사 책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책은 반복해서 보아야 효과가 있는데, 양이 많을수록 반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흡이 길어지면 데카르트를 공부할 때, 플라톤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도 큰 문제이다. 그래서 만약 빠른 시간 안에 철학의 기초를 잡고 싶다면, 비교적 최근에 나온(이것도 이미 최근은 아니구나) 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의 두 권짜리 서양철학사를 추천한다. 그러나 어쨌든 긴 호흡으로 철학사를 제대로 파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진득하게 코플스턴의 책을 붙잡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왜 서양철학사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일까.
2. <단테 『신곡』읽기>(프루 쇼/오숙은/교유서가)
"절판된 비운의 책을 찾아 다시 선보이는, 교유서가 어제의책 시리즈" 중 하나로 나온 책이다. 이런 시도, 이런 기획, 아주 좋다. 교유서가는 믿을 만한 출판사다. 교유서가에서 나온 책이라면 믿고 사도 좋다. 특히 어제의 책 시리즈는 아주 좋은데, 작년에 이 시리즈 중 한 권인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신곡』 50년 공부의 결실을 담은 <단테 『신곡』강의>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단테의 <신곡>에 관한 이 두 권의 듬직한 책이 있으니 이제 단테의 <신곡> 여행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우스트, 돈키호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카프카의 작품들은 문학의 영역으로 분류되지만, 길잡이가 필요하다. 단테 <신곡>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띠지에 "시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라고 쓰여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 쪽이다. 어쩌면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는.
3. <리처드 로티, 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이유선)
이 책은 리처드 로티의 주저인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에 대한 간략한 해설서이자 길잡이 역할을 할 만한 책이다. 로티에 관한 한 이유선은 믿을 만한 저다.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의 역자이기도 하다. 철학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미국철학이나 미국철학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우리나라 대학의 철학과가 유럽철학 중심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성향상 미국철학에는 그다지나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우연한 계기로 로티에 관심이 생겼고, 어쩌면 로티의 철학이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탁월한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 신문 기자인 고명섭의 다음과 같은 로티에 대한 해설을 인용한다. "로티는 이상적인 자유주의 사회라면 누구나가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스트일 것이라고, 다시 말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liberal ironist)일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새로운 어휘와 언어를 창안함으로써 자기 창조에 몰두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 세계에서 고통과 굴욕이 사라질 날을 희망하며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노력을 할 때 필요한 것이 공감적 상상력이다. 이 공감적 상상력이 커질수록 낯선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포용력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낯선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로티가 말하는 ‘연대’다."
4. <언어와 상징권력>(피에르 부르디외/김현경/나남)
부르디외의 책을 드디어 샀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니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이라는 책을 작년에 샀다. 그런데 아무래도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은 부르디외의 주저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하니 실질적으로는 부르디외 책을 처음 산 셈이다. 부르디외는 우리가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느끼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간질간질하고 미묘한 상황들과 그 상황들이 발생한 이유를 적절한 개념어로 잘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서 부르디외는 탁월하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러나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개념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개념화함으로써, 아니 그렇게 개념화를 할 때에만, 우리는 현실을 곱씹어 보고, 그럼으로써 그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