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외 2
1.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고봉준 외 23/한겨레출판/2022)
한겨레 신문이 2021년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 및 연재한 26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교수, 시인, 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김수영'이라는 거대한 시인/사상가 전모를 다방면에서 다소 손쉽게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흔한 비유로 거대한 산에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처럼, 김수영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데 여러 가지 길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 김수영은 우리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작가다. 그의 시는 무엇보다 절절하다. 머리로 쓴 시가 아니라 '온몸'으로 쓴 시라는 느낌이 확연하다. 이 책의 제목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아아...절창이다.
2. <유물론VS관념론>(타카다 모토무/최미선/책갈피/2024)
나는 (적어도 철학의 영역에서) 일본 저자들이 쓴 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려운 철학을 너무 쉽게 설명하고, 그래서 철학을 속류화한다. 철학이 어려운 것은 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사태 자체가 어려워서 그러한 것인데, 일본 저자들의 책을 보면, 마치 철학자가 별것도 아닌 것을 일부러 어렵게 쓰는 것을 비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제목들도 하나같이 어찌나 경박하고, 저자들의 말투도 하나같이 간지럽다. 그런데 최근 한 출판편집자가 쓴 <왜 읽을 수 없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됐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는 푸코의 책을 끝까지 읽어 본 것이 있는가. 푸코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데리다의 글은 몇 문장이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한국의 철학과 교수들이 쓴 책들은 어떠한가. 과연 내가 온전히 그들의 글을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어려운 사태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어려운 것이 쉽게 설명된다면, 그건 그냥 애초에 어려운 사태가 아니었던 거다. 어려운 것은 어렵게 설명되어야 하고, 고통스럽게 이해되어야 한다. 딴 소리가 길었는데...아무튼 유물론과 관념론은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고는 거대한 주제 중의 하나님이 분명하다.
3. <진리와 문화변동의 정치학>(김경만/아카넷/2015)
최근 리처드 로티에 대해 생긴 관심을 확장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말로 쓰인 로티에 관한 책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김경만의 이 책은 실로 귀하다. 이 책의 부제는 '하버마스와 로티의 논쟁'인데, 논쟁을 보면 문제와 관심의 핵심에 바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로티나 하버마스 같은 이들에게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이들이 단지 철학이라는 영역에 갇혀 있지 않았고, 끊임없이 사회에 대해 발언을 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사상가이다. 물론 철학이 그리고 학문이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법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하고 난 이후에는 학문이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덜 회의적이 되긴 했다. 법학자들의 연구가 법관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곧 판례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철학은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줄 것인가. 하버마스와 로티는 왜 치열하게 논쟁을 했을까. 그저 말장난이었을까. 그건 아니었으리라고 본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