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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Apr 02. 2019

끝, 그리고 출발 (8)

내셔널갤러리 : 미술관에서 살아남기/즐기기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미술관과 박물관 관람이었다. 교과서나 인문 교양서적들에서 보았던 그 예술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하이데거가 <예술 작품의 근원>에서 존재의 본질을 논구하기 위해 예로 든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를 직접 보고,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자신의 이론을 펼치기 위해 모셔 온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 선다는 것은 나에게는 헤밍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식당이라고 극찬한 마드리드의 보탱에서 코치니요 아사도를 먹는 것 만큼이나 감동적인 일일 것이다(마드리드를 두 번 갔지만, 아쉽게도 코치니요 아사도를 먹지는 못했다). 


국문학도였던 내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철학공부를 하면서부터다. 철학자,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사람들이 익히 아는 철학자들인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등과 달리 소위 현대 철학자들은 예술, 특히 미술을 철학의 전면에 내세운다. 하이데거가 고흐의 <구두>를 통해서 자신의 미학론을 설파했고,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서, 들뢰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통해서 존재론을 전개한다. 김상환 선생님의 말씀처럼, 진선미라는 세 개의 가치가 미라는 가치 속으로 통합되는 것이 현대철학의 한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들의 철학은 앞선 철학자들에 비해 뭔가 형식면에서 멋스럽고 내용면에서 풍부한 느낌을 준다. 이 멋진 철학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려면, 미술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이 때부터 미술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미술에 대한 교양주의 차원의 집착. 한 작품이라도 더 보고 알아가야 된다는 신사유람단의 마인드. 이 무겁고 엄숙한 교양주의의 덫에 초보여행자인 나는 너무도 손쉽게 걸려 넘어졌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술관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하마터면 심정적으로 여행을 망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한 달간 유럽여행을 갔다고 하더라도,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많은 미술관과 그보다 훨씬 많은 미술 작품을 담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그릇이었다. 한 달간 한 도시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니 미술관에 집착하게 되면 여행의 시간은 무척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령 런던을 예로 들어보자. 런던에 일주일간 머무른다고 하자. 내셔널갤러리 하루, 대영박물관('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미 굳어진 표현이라 다른 표현을 쓰기도 쉽지는 않다) 하루,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과 초상화갤러리 하루, 코톨드 갤러리와 월리스 켈렉션 그리고 사치갤러리 하루,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하루, 이렇게 일정을 짜게 되면 벌써 5일이 된다. 일주일에서 남은 이틀은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이 될테니 런던의 햇살과 바람과 공기와 강과 소음은 조금도 즐기지 못하고 런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지만,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온통 시간을 소진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 차례 유럽여행을 더 하면서, 그리고 그때마다 교양주의의 유혹과 싸우면서, 내 나름대로 미술관에서 살아남기/즐기기 방법을 터득했다(물론 대단한 방법은 아니다). 첫째, 평소 꼭 보고 싶었던 작품 몇 개만 기억해 두었다가 그 작품만 휙 보고 나오는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만 보면 되는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만 보고 나와도 좋은 것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만 봐도 그걸로 된 것이다. 둘째, 슬렁슬렁 (피곤하지 않게) 쉬엄쉬엄 걸어다니다가 우연히 눈에 띄었지만, 그리고 평소에 전혀 몰랐지만 혹은 평소에 꼭 보고 싶었던 그림은 아니지만, 지금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만 보는 것이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라파엘 전파 그림의 황홀함에 넋을 잃는다거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 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고야의 그림 앞에서 충격으로 저절로 잠시 멈춰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그림 감상은 충분하고, 더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양적·질적으로 압도적인 유럽의 미술관에서 살아남기/즐기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이다.


자, 지금 런던 여행 중이니 런던 얘기를 조금만 하자. 런던에는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내셔널 갤러리이다. 유럽의 다른 유명한 미술관의 소장품에 비해서 인지도가 높은 작품은 다소 적지만, 그래서 더 부담없고 편안한 곳이다. 게다가 바로 앞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있고, 피카딜리 서커스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레스터 스퀘어가 있으니 미술관 구경을 하다가 힘들면 잠깐 나와서 쉬기도 좋다. 지하 카페에는 런던의 겨울 날씨에는 반드시 한 번은 먹어줘야 할 뜨끈한 스튜가 있으니 참고하시라. 


내셔널 갤러리. 오른쪽에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가 보인다. 이곳의 아침식사도 훌륭하다. 연주회도 좋다. 
내셔널갤러리. 좌측 네 번째 좌대에 파란 수탉이 보인다.
테이트 브리튼. 단정하고 우아하다. 이 곳에 있는 작품들도 미술관의 느낌과 어쩐지 비슷하다.

2014년 겨울 유럽여행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확실히 느끼는 거지만, 미술관과 박물관 안에서 보았던 그림이나 조각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걸으면서 경험했던 것들이다. 걸으면서 보았던 것, 걸으면서 들었던 것, 걸으면서 나눴던 얘기, 걸으면서 맡았던 냄새, 걸으면서 웃었던 일, 걸으면서 먹었던 음식, 무작정 걸으면서 걸었던 일, 걷고 또 걸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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