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미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가

2025년 9월 4일 독서일기

by 글쓰는 변호사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읽다가 변호사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두 개의 구절을 만났다. <선악의 저편> 109절과 110절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죄자는 자주 자신의 행동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비방한다.(<선악의 저편> 109절)
범죄자의 변호인 가운데 범죄의 끔찍한 아름다움을 범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정도의 예술가는 드물다.(<선악의 저편> 110절)


운이 좋은 것인지 지금까지 형사 사건을 변호하면서 내가 만난 범죄자들 중 그 누구도 대놓고 "나는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오.", "내 행동은 범죄가 아니오."라고 항변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무죄를 호소한 사람들이 극히 일부가 있기는 했는데, 그 사건들에서는 무죄를 주장해서 실제로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비록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어도 그 행동이 범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하는 마음이 소위 양심에서 나온 것일까.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순수한 양심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가벼운 것으로 보이게 만들어 낮은 형량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 행동은 별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가벼운 처벌을 하여 주세요, 하는 그런 마음의 움직임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범죄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작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다소 분명해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범죄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비방한다."라고 하는 니체의 말이 이해가 된다.


110절이 문제다. "범죄의 끔찍한 아름다움"이라니. 범죄에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는가. 이미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구절이다. 니체는 어떤 '범죄'에 대해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정하고, 그 어떤 범죄를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를 변호인으로 상정한다. 니체는 어떤 범죄를 생각하고 위와 같은 구절을 쓴 것일까. 나를 포함하여 우리들 대부분은 범죄를 법/도덕적 관점에서 판단한다. 비윤리적인 모든 행위가 위법적인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위법적인 행위는 전부 비윤리적인 행위가 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범죄라면, 즉 법을 어긴 행위라면, 그건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윤리적 관점에서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미학적 관점에서 범죄를 바라볼 수 있을까. 미학적 관점에서 어떠한 범죄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조커 정도의 범죄라면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쌓아 놓은 지폐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에서 교수와 베를린 등의 은행강도 역시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선상에 놓기는 어렵지만, 1988년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을 때, 지강헌의 범죄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끔찍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니체로 돌아가보자. 결국 범죄를 미학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아름답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윤리(선)의 영역과 미(아름다움)의 영역이 독립되어 있는가 아닌가로 수렴된다. 기존의 윤리와 규범에 망치질을 해대는 니체는 기성의 법과 도덕규범이 범죄로 규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 본 것일 것이다. 윤리의 영역과 미의 영역을 구분하고, 각 영역이 독립되어 있다면,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 윤리의 관점과 미의 관점에서 각각 판단이 가능할 것이고, 그 행위가 범죄라고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와 같은 니체의 입장에 선다면, 범죄를 미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보다 훨씬 보수적인 나는, 그러나,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능력 있는 범죄자가 출현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