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르트
구입일자 2025년 9월 5일
한동안(?) 새 책을 사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요즘 다시 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책 사기를 자제하는 동안 전에 사놓은 책들을 꽤 읽고 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참 핑계도 좋구나. 집에 있는 책을 죽기 전까지 다 못 읽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최소한 죽기 전까지 모든 책을 한 번이라도 펼쳐 보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 손때라도 묻혀 주자. 손을 씻지 않고 책을 만져야겠다. 책이 다칠까 봐 살살 다룰 것이 아니라 마구 구겨줘야겠다. 그래야 그 책을 만졌다는 사실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산 책은 발자크의 <사라진/샤베르 대령>과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이다. 발자크와 바르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바르트는 비평서 <S/Z>를 썼는데, 이 책이 발자크의 <사라진>을 철저하게 독해한 책이다. <S/Z>는 <사라진>을 한 줄 한 줄 독해한 책이라고 하는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아무튼 문학비평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독서다(난 아직 읽지 못했다.). 원래는 <애도일기>만 구입하려고 했는데, 무의식(애도일기->바르트->사라진)적으로 <사라진>까지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것이고, 아내가 그냥 주문을 해버린 것이다.
<애도일기>는 바르트 책 중 가장 가독성이 높은 책일 것이다. 사실 바르트의 다른 책은 거의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어렵다.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도 어머니를 잃고 극도의 슬픔에 잠겨 쓴 일기만큼은 어렵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렵게 쓰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 아마도 어떤 역겨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고급 지식인의 자의식은 제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이 메모를 하면서, 내면의 진부함에게 나는 나 자신을 모두 주어버린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애도일기>를 먼저 읽은 사람들은 이 책이 어떤 극한의 슬픔을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이 일기를 쓸 때 바르트의 나이는 무려 62세. 이 나이에 이런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하는 내가 놀랍다(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최근에 어떤 분에게서 '세상에 호상은 없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바르트는 애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애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아내는 나에게 일기를 쓰라고 말한다. 일기가 무엇일까? 하루의 일과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쓸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나는 쓰지 못한다. 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문자는 이미 내 감정이 아니다. 내 감정을 온전히 담아낸 것이 아니므로, 그건 이미 변형된 것이다. 감정은 무정형이고, 그것을 문자로 표현하려면 다듬어야 하는데, 그렇게 정형화하는 순간, 그렇게 문자로 표현된 감정은 이미 원래의 내 감정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이 된다). 감정은 문자에 갇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 일기를 쓰고 싶기는 하다. 언젠가 쓸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