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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Apr 16. 2019

2019년 4월 16일의 기록

그 날의 기억

그 날 나는 신림동 고시촌의 어느 독서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시 공부 기간 내내 일산의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6월에 있을 2차 시험을 앞두고 그 전 해 11월 말경, 신림동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에서 하는 것보다 공부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원룸에 밤늦게 불켜고 들어가는 것도 쓸쓸했고, 밤에 혼자 자는 것도 외롭고, 아침에 혼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고시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은 소화가 잘 안 됐고, 해 질 녘이면 집에 있는 인선도 무척 보고 싶었다.


집에 있는 인선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신림동 고시촌의 어느 독서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행여 공부에 방해 될까봐 여간해선 먼저 전화하지 않는 인선이 먼저 전화를 한 것이었다. 급하게 받은 나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인선은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고, 그래서 불을 붙인 담배가 금방 탔고, 그래서 연달아 한 대를 더 피웠고, 그 날은 2014년 4월 16일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고시식당의 TV 뉴스에서는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그럼 그렇지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평소처럼, 녹음해 놓은 판례를 들으면서 맛없는 점심을 억지로 먹었다. 졸음을 쫓으며 한두 시간 공부를 더 하다가 잠깐 쉬러 밖으로 나왔다. 그 날 집에 있는 인선에게서 걸려 온 두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신림동 고시촌의 어느 독서실 앞 광고판에 어지럽게 붙은 학원 광고를 멍하니 쳐다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급하게 전화를 받은 나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인선은 한참 대답하지 못하다가, 재차 다그쳐 묻자, 인선은, 내 기억에 아마도, 울먹이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점심 먹으면서 보았던 TV 뉴스 속 큼지막한 자막은, 큼지막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한두 시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두꺼운 수험서를 억지로 넘기다가 인선이 있는 일산의 집으로 가려고 자리에서 그만 일어섰다.


내 생각에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마음은, 집에 가고 싶은데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슬픈 마음은, 돌아올 수 없는 누군가를,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내 기억 속의 그 날, 집으로 돌아가던 해 질 녘, 바람은 찼고, 봄은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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