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비뚤어진 집착과 비정상적인 소유욕이 낳은 비극적인 결말일까. 아니면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한 이성에 대한 지고지순한 마음의 과장된 형태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일까. 에밀리 그리어슨의 호머 배론에 대한 마음과 행동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9세기 말 미국 남부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인 에밀리는, 아버지의 부재와 가문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뻣뻣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는 포장도로가 깔리고, 유서깊은 목조건물은 사라지고 자동차 수리 공장이나 면화에서 면섬유를 분리해 내는 공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귀족의 힘을 보여줄 경제적 자산이 에밀리에게는 없었다. 남은 건 오로지 귀족이라는 허울 좋은 배경뿐이었다. 에밀리는 세상을 무시하면서 외부와의 연결을 완전히 차단하고, 몰락한 가문의 저택에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에밀리가 북부 출신 건설 현장 노동자 호머 배론과 연애를 한다. 에밀리가 불쌍하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에밀리는 호머 배론의 머리 글자를 새긴 남성용 화장 도구를 주문하고, 남성용 잠옷을 사들인다. 어느 날 저녁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을 무렵 검둥이 하인이 부엌문으로 호머 배론을 맞아들이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전언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에밀리와 호머 배론이 동거를 시작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호머 배론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로부터 1년 후, 에밀리는 독성이 강한 비소를 샀고, 사람들은 에밀리의 집 근처에서 한동안 독한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몇십 년 후 에밀리는 죽고,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다하기 위해(또는 어쩌면 얄팍한 호기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몇십 년 간 굳게 닫혀 있던 에밀리의 집에 들어 온다. 거기서 사람들은, 해골의 모습으로, 그가 누워 있는 침대와 뗄 수 없을 만큼 뒤엉켜 붙어 있는, 한때 포옹의 자세를 취한 채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남자 옆에 놓여 있는, 누군가 누워 있었던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는 베개 위에서, 나이 든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철회색을 띤 길다란 머리카락도.
윌리엄 포크너의 이 단편 소설의 원제는 'A rose for Emily'이다. 대학생 때 이 소설을 번역해 오라는 과제를 받고, 제목부터 턱 막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에밀리를 위한 장미'라고 해야 할지,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라고 해야 할지. 두 제목은 소설에 다소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소설 본문과 결부지어 생각해 보면, 어느 제목을 택하더라도 어울리기는 한다. 이 소설을 다시 읽은 지금에도 어느 제목이 더 소설과 어울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소중한 동시에 피할 수도 없고 어쩔 수도 없는 여인으로, 또한 냉정하고도 고집 센 여인으로 세월을 비껴가며 살았던" 한 여인에게, 또는 이제는 붙잡을 길 없이 스러져가는 과거의 모든 영화와 유산 앞에, 작가는 장미꽃 한 송이를 놓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