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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Apr 20. 2019

알퐁스 도데

알퐁스 도데의 <별-프로방스 지방, 어느 목동의 이야기>는 주인집 딸인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연모하는 어느 목동의 사랑에 대한 짧은 이야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분상의 차이는 사랑의 장애물이었는데, 신분상의 차이보다 더 큰 장애물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고, 연정과 흠모의 대상은 언제나 자기보다 더 크게 보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왜소해 보이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이 소설에서도 목동의 아가씨에 대한 이상화된 마음이 신분상의 차이보다 더 큰 사랑의 장애물로 느껴진다.


산에서 양들을 지켜야 하는 목동은 산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보름마다 반 달치 식량을 가져오는 머슴아이나 노라드 아주머니를 만나는 것이 사람 구경의 전부이다. 그런 목동에게 가장 큰 기쁨은 이들에게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소식을 듣는 일이다. 불쌍한 목동아, 네가 아가씨 소식을 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니,라고 묻고 싶어지는데, 그렇다면 목동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나이 스무살이었고, 스테파네트는 이제껏 내가 본 여성 중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대답하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식량을 가지고 산을 찾아 오게 된다. 머슴아이는 아프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여서다. 식량만 주고 돌아가던 아가씨는, 갑작스레 내린 비로 냇물이 불어나 건너가지 못하고, 목동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예기치 않게 연모하는 아가씨와 산속에서 단 둘이 하룻밤을 지내게 된 목동은, 양의 우리 안에 깨끗한 짚 위에 고운 새 모피를 깔아 아가씨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밖으로 나와, 문 밖에서 아가씨의 잠자리를 지킨다. 


사랑의 불길에 혈관이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티끌만큼의 나쁜 생각도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하느님은 믿어 주실 것입니다.


양이 움직이며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아가씨가 우리 밖으로 나와 목동에게 다가온다. 목동과 아가씨는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 이야기를 나눈다. 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어느새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다. 목동은, 별들 가운데서 가장 곱고 가장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자신의 어깨 위에서 잠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다가 나는 잠시,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산문시를 읽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문장을 곱씹어 읽다 보면, 비록 산문이지만, 별이 빛나는 밤의 정적 속에서 조용조용 읊조리는 목소리가 들려 오고, 이내 일정한 운율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들은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별빛을 바라보며 밤을 보낸 적이 있으시다면,
우리가 잠드는 시각에 또 하나의 신비스런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때, 샘물은 더욱 맑게 노래하며, 연못에서는 작은 불꽃들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산의 정령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며,
대기 속에서는 잘 분간할 수조차 없는 음향과 가볍게 스쳐 가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한 음향들은 마치 나뭇가지가 자라고 풀잎이 돋아나는 소리와도 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낮이 생물들의 세상이라면 밤은 사물들의 세상인 것입니다.


목동의 아가씨에 대한 사랑이, 사랑을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스무살의 미성숙한 사랑인지, 아니면 그러한 구분마저 초월한 보다 성숙한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나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한번쯤 만나게 되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사랑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목동의 남은 인생길에서 어둠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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