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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May 14. 2019

스포일러, 잘 쓴 글, 어벤져스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이 글에는 (제 판단에는 아무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영화 <에번져스: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포일러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이 개봉하던 날, 나는 퇴근길 지하철 역에서 영화에 대한 스포에 노출되었다.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계단을 올라오고 있던 어떤 남자 두 명이 크게 떠드는 소리를 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도 개봉일 날, 전혀 예기치 않게, 뜻밖의 장소에서 스포를 당한 것이다. 꽤 중요한 정보였기에 당황하기도 했고, 나름 기다리고 있던 영화였기에 살짝 김이 샌 것도 사실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처럼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의 경우, 영화 관계자나 팬들은 스포일러에 민감하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의 경우 감독, 배우는 물론이고 팬들까지 나서서 스포일러 금지 운동에 자발적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대해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쩐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 같은' 비극적 사건의 발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그 비극적 사건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영화의 핵심에 해당할 것이라는 점을 (<어벤져스:엔드게임>의 개봉을 기다리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어서 더욱 스포일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편 스포일러에 민감한 모습들을 보면서, 좀 유난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 혹은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에드워드 노튼에 대한 정보 정도라면 충분히 노출을 금지하고, 유난을 떨어서라도 스포를 막아야 되는 것이 타당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스포에 노출될까봐 안절부절못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특히 '잘 만든 영화'라면 특정 인물이나 특정 사건에 대한 일부 정보의 노출 정도는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구조가 탄탄하게 설계된 작품이라면 특정 요소 하나에 전체가 의존하고 있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특정 요소 하나가 빠진다고 해서(노출된다고 해서) 작품 전체가 붕괴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특정 요소는 영화 전체의 맥락과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비로소 부여받을 뿐, 그 자체로 영화를 좌지우지 하지는 못한다. 


스포일러 얘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참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지하철 역에서 스쳐 지나간 두 남자에게서 듣게 된 스포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두 남자가 나에게 뿌린 스포 장면을 볼 때도, <아하 그 때 그놈들이 한 얘기가 이거였군, 이놈들!>하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는데, 그만큼 영화에 몰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잘 만든 작품이라서 특정 요소가 노출된다고 해서 전체가 붕괴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마블 영화를 재미나게 보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3부작(<배트맨 비긴스>,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과 비교하면서 마블 영화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벤져스:엔드게임>만큼은 <다크나이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는 수작이다. 비유하자면, <다크나이트>가 아도르노처럼 난해하고 복잡해서 알아 들을 수 없게 얘기를 한다면,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에리히 프롬처럼 간명하고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감동을 준다고나할까.  


#잘 쓴 글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보고나서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었고, 글로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오마이뉴스의 어떤 시민기자가 쓴 영화에 대한 글을 읽고서는 쓰려던 생각을 접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대해 읽어본 글들 중 (내 생각에) 가장 잘 쓴 글이었고, (좀 과장을 한다면) 요 몇 년 사이에 읽은 영화비평 중 가장 잘 쓴 글이었다. 그렇게 잘 쓴 글을 읽고나니 내가 쓴다한들 그보다 더 잘 쓸 수 도 없을 것이고 동시에 뭔가 써야겠다는 욕구가 충족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잘 쓴 글'은 깊게 고민하고 충분히 생각해서 쓴 글이었다. 영화가 자신의 마음에 일으킨 파장을 민감하게 감지하고나서 쓴 글이었다. 약간의 이론을 언급했지만, 현학적이지 않았고, 꼭 필요한 것이었다. 비평이나 감상에 비평이론을 꼭 동원해야 한다면, 이렇게 이론을 사용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었다. 건조하지 않고 감동을 주면서도 불필요한 감정과잉은 없었다. 영화를 다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다. '잘 쓴 글'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어벤져스


결국 행복이 무엇인지 얘기하기 위해, 11년간 22편의 영화를 쉴 새 없이 만든 것이었구나.

굿바이 어벤져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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