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하여 #001

by 글쓰는 변호사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벨 훅스 지음/이경아 옮김, 문학동네, 2017)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하에 다루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포괄적이고 개괄적으로 언급한다. 흔히 페미니즘 이론이 기대고 있는 이론들(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등)에 의지하지 않고, 저자 자신의 공부와 페미니즘 운동 경험에서 온축된 지식과 의견을 말한다. 그래서 저자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직접적이고, 분명하고, 에두르지 않고, 또렷하고, 설득력이 있다.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페미니즘 공부 입문서로 제격인 이유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정의한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지배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며 젠더 차별을 근절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투쟁(255쪽)"이다. 이 명제는 이 책에서 여러 번 반복되면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문장의 형식은 간명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투쟁이다. 그렇다면 투쟁의 대상은 무엇인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지배와 억압이다. 그 지배와 억압을 공고히 하고 확대 재생산하려는 세력 역시 투쟁의 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투쟁의 결과, 즉 투쟁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젠더 차별이 사라진 평등한 사회이다.


물음은 계속된다. 성차별주의란 무엇인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지배와 억압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성차별주의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지배와 억압을 만들어 내는가? 그 지배와 억압을 재생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오로지 남자만이 지배자이고 억압하는 자들일까? 아니라면 성차별주의는 남성에게만 보이는 특성이 아니고 여성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 그들(그녀들)은 그 지배와 억압을 통해 어떠한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가? '젠더 차별이 사라진 평등한 사회'라는 말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젠더 평등만이 실현된 사회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제분야에서 평등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혹은 젠더 차별이 사라지면 자연히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의미인가?


성차별주의와 더불어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또한 빠지지 않는다. 가부장제 안에서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주의가 만연하게 되고,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주의를 양분으로 하여 가부장제는 공고해진다. 저자는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며(위 정의를 다시 한번 음미해보라), "남성들이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 남성중심주의가 진짜 문제(162쪽)"라고 하면서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도 역시 피해자임을 강조한다(우리의 군대를 떠올려 보라). 따라서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고, 오히려 연대해야 할 동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남녀 갈등을 부추겨 모종의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세력들에게 놀아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계급투쟁은 페미니즘 운동에 필수 불가결하다고 한다. 심지어 "여성해방의 유일한 진짜 희망은, 계급 엘리트주의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상상력에 달려 있(107쪽)"으며, "페미니스트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계급문제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연대를 위한 토대를 쌓아야 한다.(108쪽)"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라는 대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도 각자 다른 계급에 속해 있을 수 있다. 즉 각자의 계급적 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이와 같은 계급 이익의 차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에서 페미니즘 진영 내부의 분열을 가져온 주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상층 계급 여성의 페미니즘과 하층 계급 여성의 페미니즘이 같을 수 있겠는가. 정규직의 페미니즘과 비정규직의 페미니즘이 같을 수 있겠는가. 강남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자의 페미니즘과 월세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페미니즘이 과연 같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계급이익이 다름에도 페미니즘이라는 대의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계급 문제에 무관심한 페미니즘은 순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계급투쟁이 페미니즘 운동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필수 불가결하다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은 어떤 지점에서 구별이 되는 것일까.


나는 이 글에서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긴 질문들이다. 이 책에는 내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 내지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명은 간략한 입문서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리라. 앞으로의 페미니즘 공부를 통해 해명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페미니즘 운동에 있어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이론적 설명과 이해가 아니라 어떤 회심(回心)이다(이 책 제2장의 제목이 '의식화-꾸준한 회심'이다.). 기존에 관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바꾸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회심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 버금갈 만한 회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페미니즘은 하나의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저자는 '페미니즘적 영성'이라는 제목의 장(제18장) 첫머리에서 "페미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영적인 실천을 도모하는 저항운동이다.(239쪽)"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적 사고로의 회심은 의미 있는 일일까(그것이 가능한지는 일단 유보하자). 저자의 말을 믿는다면, 그 회심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고, 나아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는 지배를 종식하여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끔 우리를 해방하는 것"(263쪽)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와 같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고 발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궁극 목표가 아니겠는가. 인생의 궁극 목표와 페미니즘의 목표가 일치한다면, 페미니즘적 사고로의 회심이 그리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