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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Jun 03. 2022

예쁜 글자를 찾는 당신,
당신의 예쁨은 어떤 인상인가요

글자 속에 녹아있는 인상들

좋은 폰트를 찾고 싶다고요? 텍스트를 더 잘 표현하는 방법도요?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와 신민주 에디터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첫째주와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좋은 폰트 가이드입니다.


난 예쁜 게 좋다.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뻐서 썼다'는 말을 지양하지 않는다. 그보다 문제는 어떻게 예쁠 것이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분위기 파악이다. 나는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가, 이 콘텐츠에서, 이 디자인에서, 이 글에서. 맥을 읽는 센스, 그리고 읽어 낸 걸 찾아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화에서는 글자의 인상을 파악해 보려고 한다.



도전! 글자 표현 읽기


여태까지 좋은 폰트 가이드에서는 대체로 폰트를 이루는 기능적인 부분을 주로 이야기 했다. 또렷하게, 더 쉽게, 더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는 아름다운 폰트를 어떻게 찾는지에 대해서. 반면 표현과 인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느낌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글로 표현하기 까다롭고, 그렇게 표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더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오려면, 텍스트가 가져야 하는 기능과 동시에 그 글자가 주는 인상과 느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탐구해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맨땅에 헤딩하기 같은 일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글자의 표현을 해독하는 과정을 나눠보겠다.



차분하고 담담한 인상을 글자로 표현한다면


“글자들 중에는 삐침이라든지 획의 굵기에 변화를 가파르게 줘서 표현을 강조한 글자(이미지에서 바람)들도 있지만, 담백하게 글의 의미를 전하는데 무리가 없는 차분한 글자도 있어요. 담재가 그렇죠.”


©오늘폰트


글자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글자의 인상도 여유로워야 한다. 힘을 주기보다는 좀 빼고, 가벼운 옷을 걸친 사람처럼.


세로짜기 전용으로 만들어진 담재는 자음 글자(닿자)가 모음글자(홀자)에 비해 작다. 그에 따라 안정적인 여백을 만들어내, 글자들이 모여있을 때도 여유롭게 읽혀진다. 글자사이가 좁으면 그만큼 활발하게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글자사이 간격이 떨어져 있을 땐 잔잔하고 조용한 느낌을 전할 수 있다.


©오늘폰트


획의 끝을 둥글게 굴리는 것과, 날렵하게 빼는 것에서도 차이는 생긴다. 담재는 획의 끝이 튀어나오게 만들어졌지만, 날렵하기보단 부드럽다. 전체적인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이런 글자로 본문을 쓰면 마치 조약돌처럼 맑고 동글동글한 글자들이 조근조근 말을 전하는 느낌을 줄 것이다.


©오늘폰트



인상이 짙고 강직한 인물을 글자로 표현한다면


“각진 글자들은 글자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꺾이는 부분에서도 단호하죠.”


갈맷빛은 인상이 짙은 서체다. 담재가 부드럽고 곱다면, 갈맷빛은 가차없이 쭉쭉 내려 긋는다. 통통하게 차오른 부분 없이 뻗어나가는 모습에서는 가야 할 길을 알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사람 같단 생각도 든다. 교수님의 표현으로는, 살집이 많아 늘어난 부피로 인해 강력해 보이는 사람같다기 보다 애초에 골격이 크고 인상이 짙은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나도 이 글자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눈썹이 굉장히 짙은 사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폰트


남자도 아니고 ‘사내’라는 표현에서 느꼈겠지만, 이 글자는 옛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 획의 굵기 변화를 통해 붓으로 그린 필서체의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폰트

“현대적인 활자들은 보통 머리(획의 시작)와 맺음(획의 끝)만 조금 표현하고, 그 사이는 직선적으로 표현하죠. 대칭이 되게끔. 하지만 과거의 글자체들은 비대칭이에요.”


글자를 그리는 도구가 달라졌기에 과거와 현재의 미감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옛스러운 무언가를 표현 하려면 그 시대의 도구가 주는 인상을 눈여겨 봐야 한다. 갈맷빛은 그 당시의 옛스러운 느낌을 표현한 결과다.


©오늘폰트



우아하고 강렬하게, 날카롭고 예민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글자로 표현한다면


“사드라는 사람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귀족 변태?”

“네, 그런…”


오늘폰트에는 누벨이라는 글자가 있다. 광기와 집착을 글자로 표현하기 위해서 표현을 더 과하게 파고 든 흔적이 눈에 보이는 글자다. 획의 굵기 대비나 맺음, 삐침 같은 것들도 선명하다. 글자가 꺾일 때 생기는 튀어나온 부분도 좀 더 존재감이 있게 무게를 줬다. 


©오늘폰트


그러면서도 우아함을 놓치지 않는다. 사드는 좀 광기어린 인간이긴 했지만 귀족이었으니까 우아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가운데에 있고 상하 좌우 대칭 구조를 가진 해서체의 형태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오늘폰트

‘ㅇ(이응)'은 이 폰트에서 내 눈을 가장 끌었던 글자다. 삐져나온 상투가 어딘가 아름다우면서도 전에는 보지 않았던 독특한 인상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이응의 속공간이 살짝 파인 것도 그런 느낌을 더 살려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실제로 이런 부분들은 모두 서간체의 특징으로 보면 아주 특별한 부분이 아니었지만, 표현을 강조하는(좀더 과장해서 이 글자의 외양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과정에서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폰트



투박하고 따뜻한 사람을 글자로 표현한다면


고딕도 따뜻하고 투박할 수 있다. 곡선을 잘 사용한다면. 고래실로 표현된 고딕은 직선적이고 곧은 느낌 보다는 온기가 느껴지는 곡선으로 편안한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폰트


“투실투실해서 따뜻해 보이는 건가요?”

“산세리프인데 날카롭지 않고 편안하니까, 성격이 완만한 친구같잖아요.”

“아, 약간 잠만보 같은…”


교수님은 이 글자를 통해 직선이 아닌 곡선을 통해 시골의 거친 황토같은 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잘 포장된 도로같지 않고 질박하고 편안한. 그래서 자세히 보면 글자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 꽤 가까운데도, 볼록하게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어서 답답하단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든다.   


옛스러운 느낌을 받기도 한다. 비대칭적으로 곡선을 사용한 최정호 글자체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정호 글자체의 곡선을 잘 보여주는 또다른 예시인 SM 중고딕 ©오늘폰트

현대적인 글자들은 직선이 많다고 하지만, 최정호체는 유달리도 과거에서 부터 곡선이 잘 쓰인 글자들이 많았다. 원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표현된 글자는 인쇄를 했을 때도 눈부심이 덜하다. 둥그렇게 글자의 외곽선이 보정되기 때문에 대비감이 옅어진다. 글자에서 온화함이란 그런식으로 표현되는 모양이다.


©오늘폰트



자기자리에서 꼿꼿하게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을 글자로 표현한다면


계속 곡선이 많이 들어간 글자를 조망했는데, 그렇다면 직선이 쓰였을 땐 어떨까. 교서관체의 특징을 가진 일서에서 그 인상을 찾아 볼 수 있다. 꼿꼿하고 바른 느낌을 준다. 


둥글둥글한 담재에 비해 또박또박 가지런한 일서 ©오늘폰트


교서관체는 한자를 쓰던 조정의 양반들, 관료들이 쓰던 글씨의 모양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또박또박 정확하게 떨어지는, 네모반듯한 글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유롭다기 보다는 단정한 일잘러(?)의 면모가 느껴지는 글씨다. 빈틈이 없을 거 같다고 해야할까. 딱 잘 짜여진.


일서의 틀이 된 교서관체 ©오늘폰트


일서도 표현이 크지 않다. 귀퉁이나 맺음에서 글자에 어떤 표현을 더 덧붙이지 않았다. 그만큼 담백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읽기 자체는 걸리는 표현이 없이 편안해도, 공간에서 읽혀지는 글자의 캐릭터는 '어쩐지 보통내기가 아닐 것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맞는다면 믿음직한 책사가 되겠지만, 안 맞으면 요만큼도 도움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개인적으로 일서를 한 할머니의 수필에 사용한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은 참 열심히 사는 어른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고 꼿꼿하게 자신의 일상을 이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어쩐지 일서가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왜 그랬는지 이 글을 쓰면서 좀더 확실해진 기분이 든다.


©오늘폰트



반박 시 당신의 생각이 맞다


인상은 각자의 마음에 맺히는 것이기에, 글자를 보는 나와 이용제 교수님의 표현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사실 인터뷰를 진행할때, 폰트 상세 설명서에 있는 표현들을 보며 “전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라고 말했던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누벨은 진중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있고 나름의 무게가 있긴 하지만 진중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외려, 누벨은 고집있고 제멋대로 고상하게 아름다운,  외설적일 정도로 곧게 자신의 방식으로 진지한 인간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진중과 진지는 다르다면서.


그런 것처럼 당신이 글자들을 보며 느끼는 감각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글자 인상을 해독에 대한 반박을 한다면 당신이 옳다. 그리고 이 글이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표현을 찾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기쁠 거 같다. 그저 서체를 만드는 사람이든, 서체를 골라 쓰는 사람이든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해서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에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다시 말하자면 난 예쁜 걸 좋아해서(후후).


인터뷰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

정리 신민주 에디터

디자인 김민기 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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