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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May 20. 2022

좋은 무료폰트를 골라 쓰는 방법

덮어 놓고 쓰지 말고 좀 골라서 쓰자

좋은 폰트를 찾고 싶다고요? 텍스트를 더 잘 표현하는 방법도요?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와 신민주 에디터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첫째주와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좋은 폰트 가이드입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 ‘읽히기만 하면 되니까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폰트를 쓸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본다. 그보다는 ‘무료 폰트를 쓰면서도 디자인적으로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무료폰트 중엔 앞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무료폰트다!’싶은 특징들이 있다고 했다. 그 특징을 좀 알아 두면, 무료폰트를 고를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무료폰트의 특징

앞선 회차에서 서술했듯이 어떤 구조적인 이유였든 환경적인 이유였든, 무료폰트는 빠른 시간 안에 적은 인력으로 만들어져야 할 때가 많다. 때문에 빠르게 조합식을 만들어 글자체를 배포하곤 한다. 그로인해 두드러지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이다.


ㄱ. 속공간이 고르지 않다


네모틀 글자체는 가상의 네모틀인 정각 안에 균형감과 공간감을 고려해 자소를 배치하여 완성된다. 각 글자의 균형이나 공간을 생각하지 않고 블록처럼 조합해 버리면 어느 곳은 크고, 어느 곳은 꾹 눌려 있어서 불안해 보인다. 제대로 조정되지 않아서 속공간이 들쭉날쭉한 느낌을 준다. 이런 글자를 본문에 올리게 되면 어디는 서로 뭉쳐 있어서 전진되어 보이고, 어디는 속공간이 넓어서 후진되어 보인다. 글자 외곽만 반듯해도 단정한 인상을 가진 글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속을 들여다 보면 그 공간이 균일하지 않으니 (특히 본문용 폰트를 찾을 땐) 주의하는 게 좋다.


ㄴ. 글자의 상-하, 좌-우가 분리되어 보인다


‘교뇨됴료묘뵤쇼…’ 이런 글자들이나 ‘개내대래매배새’ 이런 글자들을 보게 되면 자소가 굉장히 단순하게 붙어있는 것 같지만, 그 모양과 크기에 따라서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는 부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그냥 자음의 자리에 자음을 넣고 모음의 자리에 모음을 넣게 되면, 어떤 글자들은 그 둘이 붙은 자리가 마치 합성된 것처럼 인위적으로 느껴지고, 분리되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점을 좀 덜 느껴지게 만들려면 조합식을 다양하게 만들면 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ㄷ. 윗선정렬


글자의 기준선은 대체로 가운데보다 살짝 위쪽에 있다. 그래야 시각적으로 봤을 때 중앙을 중심으로 정렬된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데 무료폰트 사이트에서 폰트를 보면 윗선에 맞춰 빨랫줄처럼 글자들이 정렬 되어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일단 효율성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중앙으로 정렬을 하게 되면, 위와 아래의 공간을 모두 신경써서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윗선으로 정렬하게 될 경우 아래 공간만 신경을 쓰면 된다. 그럼 시간도 훨씬 줄어들겠지.


덧붙이자면 윗선 정렬은 탈네모꼴 글자체를 만들때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윗선정렬을 하더라도 공간이 균일하고 짜임새가 있으면 문제가 없다. 다만 무료폰트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 상태일땐 그러기 힘들어서 그렇지.



삐뚤빼뚤한 게 매력이라면 어떨까?


꼭 모든 글자가 정인자나 태명조 중명조 처럼 생겨야 옳고 예쁘다는 게 아니다. 의도하는 표현 방식에 알맞은 제작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거지. 예를 들어 지난 회차에선 글자의 형태가 도형적이거나 탈네모틀인 경우 조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고, 그럴 때 더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와 비슷하게 형태적으로 무료폰트의 특징이 잘 발현된 경우가 또 있다. 배민 폰트다.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배민이 폰트로 아주 유려하고 세련된 현대적 글자체를 재현해 내려고 하기 보다는, 레트로한 감성을 살리는데 중점을 둔 것이 현명한 한 수였다고 한다. 폰트 소개글에도 대놓고 이렇게 써 있다. “뭐 사실 한눈에 예쁜 디자인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쓸만합니다.” 각 글자체의 소개글에서는, 과거의 간판을 모티브로한 글자체들을 볼 수 있는데, 그곳에서도 팩트를 전한다. “삐뚤빼뚤한 모양이 특징”이라고.



60~70년대엔 우리나라에 폰트라 할만한 개념이 사람들의 뇌리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다. 어눌하고 군더더기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당시의 최선이었다. 한눈에 잘 들어오는, 가독성이 좋은, 한글의 모양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니까. 그렇기에 이걸 지금와서 복각해 간판이나 상호명, 메뉴판, 전단지 등에 쓰는 것엔 나름의 의미도 가치도 있다. 눈에 잘 읽히진 않아도 잘 띌 수는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든 무료폰트는 티가 난다


모든 무료폰트가 다 휘뚜루마뚜루 만들어졌다고 할 순 없다. 애초에 교수님도 무료폰트를 만든 적이 있고. 그리고 교수님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만든 무료폰트도 있다. 그래서 더 무료폰트 의뢰과정과 시장에 대해 좀 더 많은 적나라한 이야기를 해 주셨지만… 그걸 다 담을 순 없고(흠흠. 궁금하면 활자공간 오세요), 나름의 팁이 있어서 그 얘기만 좀 하려고 한다.


‘그래도 좀 내공이 있는 사람이 만들었다, 충분한 자원을 들여서 만들었다’ 싶은 무료폰트에는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구구절절한 제작과정이 있다는 거다. 누가(어떤 회사, 또는 개인이), 언제 어떤 식으로 만들었고, 누가 사용성 평가를 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그건 다 돈을 충분히 줬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고 기록도 할 수 있는 거고.”


아리따도 그랬고, 마루 프로젝트도 그랬다. 실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거나 구글링을 통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면 쉽게 제작 과정에 대한 단서를 여기저기 뿌려뒀음을 알 수 있다. 폰트 제작에 관심이 있거나, 좋은 폰트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참고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교수님 반응이 괜찮았던 폰트들...

*몰래(?), 조심스레(?), 허락(?)과 피드백을 받아(?) 올린다.


교수님께 눈누 사이트를 보여드리면서 반응을 살펴봤다(아, 이런건 영상으로 찍으면 좋았을텐데…). ‘으윽!’ 하고 괴로워 하신 건 아니지만…


“이렇게나 무료폰트가 많아졌어요?!”


라는 반응을 볼 순 있었다. 그러면서 위에서 언급한 무료폰트의 특성들을 좀 살펴봤었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싶은 반응을 받았던 폰트 몇가지를 눈치껏 3개 정도 추려봤다(나눔, 마루부리, 아리따는 제외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G마켓 산스, 함렛, 그리고 고운바탕과 고운돋움이다. 이 중에서 고운바탕과 고운돋움을 두고는 ‘원래는 유료로 판매했던 폰트인데 왜 무료폰트로 나왔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을 정도.

 

그래서, 이 세 폰트를 따로 가져와 다시 한 번 교수님께 ‘왜 이 폰트들에는 좋은 평가를 주셨는지' 물어봤다. 교수님은 ‘극근글금긋긍급긓 늑는늘늠늣능늡늫 륵른를름릇릉릅릏 미빼삐매배뻬니 삣삥뺑규뉴듀류휴퓨’라는 글자들을 폰트웨이트를 바꿔가며 직접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비교해 보는 건 글자의 반을 갈라서 상단과 하단을 비교해 보고, 공간이 균일하게 움직이는지, 획의 굵기가 변해 때때로 약해보이진 않는지,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그 결과 세 폰트는 꽤 양호해 오래 보아도 안정적인 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글은 무료폰트 제작환경의 현실을 알리면서
창작자가 자신의 눈을 믿고 폰트를 봤으면 해서 썼다.


다시 말하지만 무료폰트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알고 잘 쓰라는 거다. 설익은 과일임에도 떨어져 나와야 하는 무료폰트 생산 구조를 당장 바꿀 수 없지만, 그게 문제라고 또 모두가 유료폰트를 쓸 순 없다. 시각적 완성도나 만족도를 꼼꼼히 따져가면서 창작자들은 작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글자를 읽고 있다’, ‘눈으로 글자의 모양을 따라가고 있다’는 인식도 없이 글의 내용을 습득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게 무료냐 유료냐로 급을 따지기보다, 그냥 잘 읽히는 글자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다.


그럴 때 포장지에 속지 말고 제대로 봐야 한다. 무료폰트 소개페이지에 들어가면 많은 곳에서 이 폰트가 가진 심미적 가치를 자랑하고 있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폰트를 만든 입장, 배포한 입장에서 그들이 그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디자인을 잘 하고 싶은 사용자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다. 그래서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폰트를 찾을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느낌적인 느낌'이나 ‘좋다고 해서’ 쓸 때가 많다. 그 기준을 말하고자 이 글을 썼다. 무료폰트도 유료폰트도 다 그냥 폰트다. 폰트엔 각각의 모양이 있다. 그 모양을 잘 보고 쓰자, 당신이 디자인을 하고 있다면.


인터뷰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

정리 신민주 에디터

디자인 김민기 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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