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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Jul 30. 2020

회고: 뻔뻔하게 다시,
세 번째 독립출판을 하기까지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2편

독립출판물에는 저마다의 존재감이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서로 다른 존재감이 있듯, 독립서점에 있는 형형색색의 독립출판물에도 그것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좀 부담스럽게, 도저히 쳐다보지 않으면 못 배기게, 아주 조용해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게 존재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존재감을 좋아합니다. 


그게 내 책이 아닐 때는 그렇습니다. 이해와 감상에 빠지기는 쉽지 않고 왜 이건 놓쳤을까 하고, 그 완성도에 아쉬움을 느끼죠. 아쉬움이 저를 세 번째 책까지 인도하고 있습니다.




집:합은 제가 참여해서 기획하고 함께 쓰고 엮은 책이니 일단 빼고 논하겠습니다.

첫 번째 "94년산 박민주",
2018년 제가 25살까지 경험했던 상처를 떨치겠다고 나온 책입니다. 

남성 공포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남자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렇게 된 나름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이 책에 드러나죠. 이걸 만들고 저는 '연애를 많이 하는 연애고자'에서 벗어났지만 정작 연애를 못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이전까지 연애를 한 이유는 이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거든요. 이러나저러나 이제 트라우마로 인해서 사람을 피하진 않으니 잘 된 거 아니냐는 생각은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에겐 이 책이 세상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가족들이 제가 정말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왜 자꾸 그 문제를 들춰? 네가 그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면 계속 그냥 그 꼴인 거야.'같은 말 밖에 안 했는데. 미안해하시는 눈치였죠(그러면서도 은근히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채근하시지만). 


그건 좋았는데 복수의 농도가 좀 짙어서 독자들에게 약간의 부담을 안겼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엔 좀 미안해지더라고요? '조금만 더 담백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욕심을 내려놓았다면.' 이런 생각도 했고. 디자인에서는 '가독성을 포기하더라도 손글씨였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후회도 있었고, 기획으로는 '책 제목을 [경기도 오산시 연애동 고자마을에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라디오 DJ가 사연을 소개하듯이 좀 가볍게 엮었어도 좋았을 거 같다'는 후회도 있었습니다.


이미 생각은 글이 되었고, 그게 묶여서 책이 되었고, 누군가에 손에 닿아서 책장에 꽂혔으니, 다음 책에서나 담백해보자! -같은 결론을 냈죠.


두 번째 책, "지난민주일기"는
'내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내가 있다!'고 세상에 외치고 싶어서 만들었습니다.

일기 쓰고 일주일 뒤에 다시 한번 제가 답신을 해주는 형식으로 나와의 교환일기를 썼죠. 하면서 즐거웠고, 엮으면서도 즐거웠습니다. 굿즈 만들기도 좋았고. 그냥 그 모든 94년산 박민주 때 하지 않았던 모든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굿즈 책갈피도 만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덜 후회하긴 했죠. 이때부터 디자인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었고. 조금씩 사진도 넣어보고, 내지 레이아웃에 대한 고민도 깊게 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올리는 것 말고, 조금 더 독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북페어를 나가보니 무엇을 잘 못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제목이었습니다. '민주가 누구죠? 그 사람 알 게 뭐죠? 그 사람 일기장까지 봐야 한단 말이에요?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제목이라는 평가를 들어본 적도 있습니다. 북페어 나갔을 때 구경하시던 분들이 제 책을 흘끗 보시다가 옆 테이블로 가면 그 생각에 괴로웠어요. 내지의 배치나 사진의 전체적인 톤을 통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당연히 있었죠. 좀 더 흐름에 신경 썼어야 했고, 욕심은 버렸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습니다.






후회를 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제 책을 좋아해 주신 독자분들,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들,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책을 만드는 걸 좋아했고요.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고 싶었어요. 글을 책으로 엮는 게 좋았어요. 좋아서 잘하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눈치를 많이 보는 제가 마음대로 좋아하는 걸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잘해야만 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있다면 로또 정도?


그래서 세 번째 책을 기획했습니다.

기획 전에 세운 철칙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1년 동안 좀 더 고민해서 원고를 집필하자'이고 둘째는 '편집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자(타이포그래피, 일러스트, 포토샵)'입니다. 실제로 1년 원고 집필은 지키는 중이고, 타이포그래피는 안그라픽스 책을 그냥 쌓아놓고 보면서 독학하기도 했습니다. 강남역에 있는 굿무슨무슨학원에서는 일러스트와 포토샵을 기초부터 심화까지 풀코스로 배웠으며, 텀블벅으로 창작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건 다 사면서 계속 지식을 쌓기도 했죠. 생활은 궁핍했지만, 지식을 사는 건 아낄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제 잔고를 채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투자한 것만큼 제가 분명히 원하는 걸 얻어갈 걸 아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저의 두 책이 기반이 되어 칼을 갈았다는 이야기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다음부터는 제가 어떻게 첫 책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어떤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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