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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05. 2020

기획:
출판 기획까지 해내야 독립출판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4편: 기획의 마무리

독립출판과 기성출판의 차이는 기획에 있다.

제가 몇 차례 독립출판을 하면서 느낀 겁니다. 작가는 책을 만들기 위해 원고를 쓰죠. 주제를 정해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메시지를,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언제까지 작업하겠다. 이런 것들을 정해둡니다. 그게 작가의 기획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걸 가지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면 편집을 거쳐 책으로 나오죠(모두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제작 일정

하지만 독립출판 작가는 원고의 기획뿐만 아니라 출판의 과정도 기획해야 합니다. 저는 그걸 몰랐어요. [원고 기획과 집필 - 편집 - 제작 - 유통 - 홍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글을 쓰고 그 글을 책임지기 위해서 그 다음 단을 생각하는 식이었죠. 


이제는 꼭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 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원고의 제작이 끝이 아니라는 걸. 디자인이 끝이 아니라는 걸. 저는 몇 번쯤 지쳐서 '아, 몰라. 괜찮겠지.'하고 허술하게 넘긴 것이 언젠가 다시 돌아와 후회로 남는 것을 자주 겪었거든요. 이번엔 덜 후회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94년산 박민주의 경우. '유통? 홍보? 에이 뭐, 나는 많이 안 팔려도 괜찮아. 디자인? 그냥 책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했죠. '팔리는 게 문제가 아니고, 적어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알아뒀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독립서점에 있는, 혹은 교보문고에 있는 내 책이 주변의 책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파스텔톤의 책들 사이에서... 너는 참 애를 쓰고 있었지. 하...

혼자 작업할 때는 내 책만 보입니다. 하지만 서점에 책을 두면 그 사이에 있는 책의 모습을 보게 되죠. 저는 그 대비가, 내가 놓친 것들이 너무 현격하게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게 그렇게 아쉽더라고요.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든 자식 같은 책이 거기서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남들이 한 만큼 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독립출판에서 중요한 건 남과 같으냐 틀리냐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정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남들과 같은 정도는 해야 한다고 '정해도' 독립출판이고, 남들보다 특별한 걸 만들겠다고 '정해도' 독립출판입니다. 애초에 내가 디자인이나 유통이나 홍보의 방식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면 아쉬울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독립출판 과정 역시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게 짜여야 만족스러울 겁니다. 물론 시도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으니까, 일단은 내키는 대로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번째 독립출판을 기획했습니다.


1. 기획의 목표: 끝까지 힘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출판의 전 과정을 마무리한다

말했듯 저는 늘 출판기획을 소홀히 했습니다. 기획은 처음의 스타트라인이 아니라 처음과 끝을 정하는 것인데, 끝을 정하지 않았죠. 뒤로 가면 갈수록 힘이 빠졌습니다. 더 이상 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기획의 목표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을 끝까지 계획대로 내는 겁니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7월 30일까지 집필 - 편집 - 제작 - 유통 - 홍보의 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에 대한 목표 그리고 기한을 잡아 확정을 짓기로 했습니다.


2. 집필의 목표: 1년간 꾸준히 한 가지 주제의 원고를 집필한다.

원고 집필 기획은 사실 저번 회차에서 다뤘습니다. 집이 멀어서 오랫동안 이동해야 하므로, 그 시간 동안 본 것과 느낀 것들을 1년간 쓴다는 것을 정했죠.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로 쓰고, 달 말에 노션에 원고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2020년 9월까지 원고를 쓸 겁니다. 집필의 목표를 달성하면 최소 100개의 원고는 나올 것이라고 나름의 하한선도 정해두었습니다. 그 기준에 부합하려면 적어도 한 달에 8~9개의 원고가 나와야 하죠. 다행히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시점에 이미 100개가 넘는 원고를 모았습니다(물론 그중에 반은 나오지 않겠지만).


3. 편집의 목표: 집에 오고 가는 길에 읽기 좋은 책을 만든다.

책은 저처럼 집이 먼 사람을 타겟으로 합니다. 그러려면 1) 이동하면서 보기 좋은 판형이어야 합니다. 2) 이동하면서 보기 좋은 레이아웃이어야 하고요. 3) 이동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올려야 합니다. 4) 이동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표지를 만드는 것도 놓치지 않고 싶네요.


하지만 혼자서 이런 것들을 잘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그래서 안면을 터놓고 지내는 책방 올오어낫띵 사장님께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료 작가들에게도 물었죠. 학원에서 편집 지식을 쌓기도 하고 텀블벅에서 각종 편집 관련 책들을 사 모아서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동하는 누군가 어느 곳에서 꺼내도 빠져들 수 있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겠다고. 편집은 6월 6일 시작했고 10월 10일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여전히 텀블벅을 들어가서 살펴봅니다. 요즘엔 폰트 기획전도 자주 보고.


4. 제작의 목표: 편집 때 그린 제작 사양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제작사를 찾는다

제가 뒤로 가면 갈수록 힘이 빠져서 후회막심했던 단계는 대부분 제작이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인쇄소, 지업사, 후가공, 종이 이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는 책을 어떻게 만들고 싶었든 현실과 타협하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제작의 목표를 이렇게 정하긴 했는데, 완전히 이뤄지기란 쉽지 않겠죠. 그래도 최대한 비슷한 제작 사양으로 가려고 합니다.


일단 저는 1) 종이와 코팅에 대한 욕심을 애초에 버리고 후가공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2) 원하는 결과물의 형태를 분명히 정하고 제작사를 찾는 게 좋겠죠. 3) 주위의 아는 인맥 모르는 인맥을 동원해 추천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4) 그러고 나면 최대한 적게 들이는 방법을 알아보고, 견적을 받아 봐야죠. 가심비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최대한 알아볼 겁니다. 언제? 8월 15일부터! 예상 제작 날짜는 아무리 미뤄져도 10월 12일입니다.


5. 유통의 목표: 10월 22일, 스무 곳의 독립서점에 책을 깔아둔다.

제작에 들어가고 일주일 뒤면 책이 옵니다. 포장하고 보내야죠. 그렇게 하려면 1) 인쇄소가 결정되고 가제본을 발주할 때 책 소개서를 써야 합니다. 2) 가제본을 뽑으면 그걸로 사진을 찍고요. 3) 그 전에 미리 독립서점도 방문해서 밑밥을 뿌려 놓는 것도 좋겠죠(어차피 책 소개서는 따로 드려야겠지만 입고 문의 메일을 보내지 않아도 되게끔). 4) 그리고 최종 인쇄 발주와 동시에 입고문의 메일을 보내는 거죠. 


9월 말쯤 유통의 프로세스를 돌려 10월 22일 목표를 달성할 테고, 사실 그 뒤에도 입고 문의는 계속 될 겁니다. 다만 유통사에는 이번에도 보낼 생각이 딱히 없습니다. 제 책이 어느 서점에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유통사에 넣는 것의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게 나쁘다거나 뭐 불쾌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요(첫책은 유통사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내가 책방에 책을 들고 찾아가는 수고를 줄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책방에 제 책을 들고 찾아가서 깊든 얕든 어떤 관계를 맺는 게 좋거든요.


6. 홍보의 목표: 2020년이 가기 전에 2쇄를 찍는다. 

94년산 박민주는 많이 남았고, 지난민주일기가 이제 제 손에 더이상 없긴 하지만 2쇄를 찍을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길 바라요. 2쇄를 빨리 찍으려면 당연히 책도 좋아야겠지만, 홍보도 잘 돼야 하는데요. 1) 8월부터 일주일에 인스타그램 2건 이상, 브런치를 주중 3개씩 올리려고 합니다. 2) 독립서점에 책이 들어가면 공개할 글과 썸네일을 준비하고요. 이번에는 광고도 잘 활용해 보려고요. 3) 북토크도 한두 번만 하지 말고 좀 더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걸 기획해야겠습니다.


*기한을 정하는 게 의미 있는 이유

이 기획을 머릿속으로만 가지고 있다가 글을 쓰겠다고 정리를 하면서 수정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제 생일인 10월 30일에 책을 출간할 계획을 하고 있던 건데요. 생각해보니까 10월 31일에 할로윈이라는 대목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코로나라도 인스타그램이 도배될 거란 말이죠. 10월 30일에 하면 묻힐 것 같으니 빨리해야겠더라고요. 아예 뒤로 미루는 방법도 있는데, 분명 서점들이 10월 31일에 뭔가 이벤트를 열 테니까 그 전에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고요.




기획은 작업의 시작점을 정하는 게 아니라 처음과 끝을 그리는 것

이 말을 계속 새기면서 기획했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시점에는 아직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거창하게 그리긴 했지만요.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다길래. 일부러 시간을 넓게 잡고 이번 작업에 들어간 것도 사실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어서고요. 고랑이든 호양이든 잘해서 눈치 안 보고 책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기획이 끝났으니 집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자신의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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