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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11. 2020

집필: 자연스러운 내 마음을
당신께 드리려고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6편: 원고의 분량과 톤

어느 날은 길게 쓰고 싶고 어느 날은 짧게 쓰고 싶은데...

원고를 쓰다 보면 분량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에세이니까 너무 짧아도 좀 이상하겠고, 너무 길면 호흡이 길어서 늘어질 것 같죠. 특히 지난민주일기를 쓰면서 특정 꼭지가 너무 길면 지면 구성을 통일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웬만하면 비슷한 분량의 에세이가 편집하기엔 좋더라고요.


지면 구성을 통일한다는 건 이런 겁니다. 아래 사진은 지난민주일기의 일부 지면인데요. 보시면 지난주의 내가 좌측에 일기를 쓰고, 일주일 뒤에 쓰는 답장은 오른쪽에 싣는 방식입니다.

좌측에서 매기고 우측에서 받기

이런 식으로 계속 쓰면 사람들이 어느 면을 보더라도 좌측부터 우측으로 읽으면 되겠죠. 그런데 글의 양이 길어져서 한 페이지를 넘어가게 되면 이런 지면 구성을 통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장표가 가끔 생기는 거죠. 좌측에서는 앞장의 지난 일기에 답변하고, 우측에서는 다시 또 다른 지난 민주가 등장하는. 그러면 헷갈리겠죠.


앞장에서 매기고 뒷장에서 받기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어디가 지난주고, 어디가 이번 주인지 모르겠어서 좀 헷갈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도... 애초에 이렇게 매기고 받는 형식의 책이 많진 않고 사람들이 많이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더욱 구성의 통일을 해주었어야 했죠. 후회가 남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일단 길이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썼습니다.

저는 지금 집필을 하는 작가니까요. 편집의 일은 편집단계에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책에서 꼭 살려야 하는 건 '글쓴이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잘 살려서 쓰는데 집중하는 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탄생한 한 줄짜리 원고가 다섯 개 정도 있습니다. 반면 2000자가 넘어가는 원고도 있죠.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은 한 줄만으로도 온전히 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분명하고, 어떤 순간은 오랫동안 글을 쓰면서 복잡한 마음을 기록하고 싶을 수 있잖아요. 괜히 분량을 맞추겠다고 말을 더 넣거나 더 많이 빼게 되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했고요.


이렇듯 집필 단계에서는 한 원고마다 나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데 더 초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출판사에 원고를 맡길 게 아니잖아요. 제가 편집하면서 흐름을 고려해 끊고 배치하면 되는 거죠. 지면의 통일은... 여백을 잘 써서 페이지를 늘리면 될 것 같으니까요(그만큼 돈이 들겠지만).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자' 이건 톤에 대해 고민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톤은 쉽게 말해서 분위기입니다. 어떤 책은 우울하면서도 관조적일 수도 있고, 여유로우면서도 때때로 사랑이 넘칠 수 있죠. 마치 사람처럼 책도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 건 확실합니다. 제목과 표지, 목차의 흐름, 내용의 문체, 단어의 결, 감정의 흐름, 기승전결의 방식 등에서 독자는 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전 책에서 때때로 톤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분위기가 깨졌다는 거죠. 왜 갑자기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들까 고민했습니다. "갑자기 우울하고, 갑자기 기뻐하면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뜬금없이 확 분위기가 전환되면 사람들은 '엥?'할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하나의 감정으로 가야 하는 구나.


그런데 말이죠, 어떻게 사람의 마음과 일상이라는 게 자로 잰 듯 비슷할 수 있겠어요. 저는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정말 우울하다가 기뻐하면 안 되는 거야? 살면서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가수들은 앨범에 잘만 우울한 노래랑 기쁜 노래를 같이 넣잖아. 좋으면 다 상관없는 건가?' 생각의 꼬리를 물다가 뮤지션들의 앨범을 생각해보니까 감이 좀 오더라고요. 


중요한 건 갑자기 구나.

우울하고 기쁜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음영을 주지 않으면 그림에 입체감이 생기지 않듯이,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에세이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생동감을 잃고 말 거예요. 중요한 건 개연성 있게 통일된 방식으로 표현된 어두움과 밝음인 거죠. 갑자기 확 분위기가 바뀌면 누구라도 당황스럽잖아요.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제 감정 역시 숨기지 않지만, 그런 감정이 된 이유나 그렇게 된 흐름에 대해서 분명하게 적었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지난 편에서 상세한 정보가 없으면 독자는 그 상황을 작가와 같이 그릴 수가 없다고 이야기 했었죠. 제가 분량과 톤을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도 비슷합니다. 모든 것들이 개연성이 없이 변화하면 독자는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겠죠.


나의 이야기이지만 공감하기 어렵지 않게.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에서는 나의 이야기와 내 생각을 쓰되, 마음이 변화할 때는 특히 주의해서 썼습니다. 그흐름에 대해서 '독자를 두고 가지 않고' 풀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요. 제 일화이기 때문에 타인에게는 특수하지만, 비슷한 일이 생각날 만큼 머릿속에서 그려져야 마음에도 닿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좋은 컨텐츠는 그 두 가지 '다르다(특수성), 하지만 비슷하다(보편성)'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하는 건 독립출판입니다. 독립적인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특수성과 출판물을 읽을 대상에 대한 보편적인 배려, 이것이 잘 되었을 때 독립출판물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그전까지는 너무 특수해서 문제였던 것도 같고요... 그래서 저는 계속 어떻게 하면 나를 넘어 타인에게도 의미를 주는 책을 만들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답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저는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한 가지 장치를 더 넣기로 했습니다. 바로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에 이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자신의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제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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