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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12. 2020

사진의 현장감이 곧 퀄리티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7편: 사진

사실 사진을 잘 못 찍습니다.

그래도 사진을 책에 싣고 싶었습니다. 아주 많이. 그리고 잘. 사진이 있는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은 여행에세이 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이번 책에는 꼭 사진을 많이 쓰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글을 쓸 때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다른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공간에서 다시 찍었죠.



물론 어떤 사진이 예쁜 사진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3X3으로 망을 만들었을 때 겹쳐지는 지점들에 포인트가 되는 대상이 오는 게 좋다거나, 어떤 선이 이미지를 가로지르면 좋지 않다거나... 정말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포인트가 너무 뭉쳐있으면 또 그게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찍어서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건 "베를린 일기" 덕분입니다.


독립출판물들도 보면 사진이 있는 책들은 정말 신경 써서 찍은 것들이 많습니다(물론 완전히 망한 사진을 컨셉으로 낸 독립출판물도 있긴 하지만). 다들 어디서 그렇게 배워서 찍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베를린 일기"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진은 정말 너무나 예뻤지만, 어떤 사진들은 '아니, 이렇게 막 찍어도 되는 거야?'싶을 정도로 놀라움을 줬어요. 그래도 책의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렸죠. 저는 그 이유를 현장감에서 찾았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사물은 빠르게 움직입니다.

돌아다니다가, 혹은 머물다가 '아, 이 순간을 남겨야겠네'라고 생각하는 그 찰나에 벌써 내 주변의 사물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진을 찍죠. 당연히 그 결과 나온 사진 자체는 예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는 알고 있기에 이 사진에 담긴 뒤늦은 흔적들마저 의미가 있죠. 제가 베를린일기의 사진을 보면서 '참, 좋네'라고 느낀 이유는, 그 현장감을 담아서 본인에게 남기고, 또 독자에게 남겨주려고 했던 작가의 노력이 멋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 노력이 친숙하기도 하고요. 홈비디오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남몰래 베를린일기를 옆에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 첫 책이나 두 번째 책은 레퍼런스를 삼은 책이 없지만...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의 레퍼런스 북은 비공식적으로 "베를린 일기"가 되었죠. 이렇게 제가 여기 써버리면 공식이 되어버리지만, 아무튼. 저는 덕분에 사진을 찍을 용기가 가득 생겼습니다. (사실 약간 궁상맞은 듯 어딘가 락킹한 작가님의 문체 역시 제 마음에 너무 쏙 들어서 도저히 헤어나오기가 힘들긴 합니다. 이 책을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면... 아, 내가 할 말이 아니구나)


사진 자체의 퀄리티가 곧 현장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주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을 대범하게 찍었습니다. 몇 개의 사진이 별로여도, 비슷한 배치로, 비슷한 색감으로 수정해, 통일감 있게 전한다면 그 각각의 이미지는 둘째 치더라도 분위기만큼은 분명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죠. 



실제로 책의 한 면을 차지하게 된 이미지들 입니다(포토샵으로 톤보정을 거치기 전)



어떻게 하면 지금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직관적인 사진도 찍긴 했지만, 가끔은 그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맞닥뜨렸던 마음의 이야기도 썼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마다 무엇을 찍어야 집 가는 길에 만난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사실 깊게 고민해서 답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제 머릿속에 사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답이 안 나오면 아무거나 막 찍었습니다. 길게 작업 기간을 잡고 하는 거니까, 정말 별로면 미래의 내가 다시 감을 잡아서 찍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실제로 그랬고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원고를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면서 편집도 합니다. 지금 여기서는 집필 단계에서의 사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방금 전까지는 편집자로서 사진을 내지에 올리고 있었죠. 그런데 내지 작업을 하던 중, 이건 재촬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꼭지가 있었습니다. 지난가을에 찍었어야 했던 사진을 올가을에 다시 찍게 생겼죠. 그나마 겨울의 사진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다시 한번 나의 레퍼런스 북과, 레퍼런스 북을 만나게 해 주었던 서촌 그 책방의 독서 모임에 감사하며... 집필의 다음 주제로 이동하려고 합니다. 바로 '소재는 발견되는가 발명되는가'입니다. 되게 심오한 것 같은데, 원고에 쓸 이야기를 포착해 내겠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웃겨서 했던 고민이었습니다. 이건 꼭 독립출판이 아니더라도 그냥 뭔가 제작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것 같아요. 내일 뵙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자신의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제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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