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8편: 소재 발견? 발명?
저는 가끔 그런 날들을 경험합니다. 네, 가끔요. 그게 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에 실을 한 줄짜리 에세이도 한 다섯 꼭지 정도되는 데 이들은 보통 그렇게 탄생했거든요.
그날은 유독 집에 가는 길이 늦었습니다. 저는 빠르게 집으로 내달리고 있었죠. 막차가 끊기면 안 되니까요. 뛰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잠깐 숨을 고르며 걷다 하늘을 봤어요. 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죠. '달이 저렇게 예쁘게 차오르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빨리 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지금을 기록하자'고 생각했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본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의 모양을 궁금해하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나 대부분의 원고는 '1주일에 한 개는 써야지'라는 목표 아래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고 싶었습니다만... 저도 사람인지라 의식없이 흘려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각을 딱 잡고 글을 쓸 때가 꽤 많았어요. 미어캣처럼 내가 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펴보는 거죠. 작은 변화에도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 하려고 안테나를 빳빳하게 세우고요. 그렇게 어딘가에 글 쓸 거리가 있을거야 하고 살펴보다가 '이거다!'싶으면 파바박 써내려갔죠.
"그냥 이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기록하고 싶을만큼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들을 놓아주는 경험도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풍경이나 심상들은 기록되었을 때 그 아름다움이 희미해 지기도 하니까요. 카메라를 들거나 그 순간을 기록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사람'에서 '기록하는 사람'으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데 그 시간도 아깝고요.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축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고 싶은거죠. 만약 내가 느낀 아름다움이 내 손으로 꼭 기록되어야 한다면 다시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면 뭐, 소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진 않았지만, 이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작위적인 노력에 의한 산출물 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싶기도 하고요. 내 삶의 조각같은 원고를 만들고 싶었고 책을 엮기 위한 원고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진심이냐고. 이 글귀는 모두 내 마음인 것이 맞냐고 물으면서 썼습니다. 자연스럽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제 고집이 더 많이 투영 됐던 것 같아요. 독립출판하면서 이 점이 너무 고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누가 그러더라고요.
결국엔 결과론적인 거 아닌가 싶어요.
범죄만 아니면, 어디서 누가 쓴 거 가져다가 대놓고 베끼거나 하는 게 아니면, 그 방법이 어떻게 되었든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미겠죠. 어차피 내가 어떤 의도로 썼든 독자들은 거기까지는 신경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그냥 공감이 되는 이야기는 공감을 할 것이고. 공감이 안 되는 이야기는 공감을 안 하겠죠.
생각해보면 '내 글쓰기는 자연스러웠으면 한다'는 건 나의 만족을 위한 제 고집입니다. 독자를 생각한 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하면서 부리는 고집이면 모르겠는데, 저는 그 고집까지 제 작품의 일부로 다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가 어디에 공감하지?'를 생각해 보니까, 그냥 내 아집이었구나 싶었어요. 이 앞 뒤도 안 맞고 이루기도 쉽지 않은 고집은 적당히 꺾기로 마음먹고 최소의 기준선 하나만 분명히 잡기로 마음을 먹었죠.
'우리 집이 멀어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소재인지'만 생각하자.
이게 지난 1월에서 2월 넘어갈 쯤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집필에 대해서는 지난 겨울에서 이번 봄까지 참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혼자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좋은 원고를 쓰고 싶어서 오키로북스에서 하는 오직원 원정대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매주마다 쓰고 그에대한 피드백을 참여자분들과 오키로북스 직원분으로부터 받는 식의 프로그램이었죠. 그 내용을 다음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자신의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