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주 Aug 13. 2020

집필: 슬프게도
원고는 자연발생되지 않았습니다.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8편: 소재 발견? 발명?

세상이 '나를 글로 써줘'라고 말하면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해 보셨나요?

저는 가끔 그런 날들을 경험합니다. 네, 가끔요. 그게 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에 실을 한 줄짜리 에세이도 한 다섯 꼭지 정도되는 데 이들은 보통 그렇게 탄생했거든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의 한 줄짜리 에세이 5꼭지 중에 하나.


그날은 유독 집에 가는 길이 늦었습니다. 저는 빠르게 집으로 내달리고 있었죠. 막차가 끊기면 안 되니까요. 뛰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잠깐 숨을 고르며 걷다 하늘을 봤어요. 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죠. '달이 저렇게 예쁘게 차오르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빨리 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지금을 기록하자'고 생각했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본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의 모양을 궁금해하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나 대부분의 원고는 '1주일에 한 개는 써야지'라는 목표 아래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고 싶었습니다만... 저도 사람인지라 의식없이 흘려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각을 딱 잡고 글을 쓸 때가 꽤 많았어요. 미어캣처럼 내가 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펴보는 거죠. 작은 변화에도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 하려고 안테나를 빳빳하게 세우고요. 그렇게 어딘가에 글 쓸 거리가 있을거야 하고 살펴보다가 '이거다!'싶으면 파바박 써내려갔죠.


"그냥 이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기록하고 싶을만큼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들을 놓아주는 경험도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풍경이나 심상들은 기록되었을 때 그 아름다움이 희미해 지기도 하니까요. 카메라를 들거나 그 순간을 기록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사람'에서 '기록하는 사람'으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데 그 시간도 아깝고요.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축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고 싶은거죠. 만약 내가 느낀 아름다움이 내 손으로 꼭 기록되어야 한다면 다시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소재는 발견되는 걸까? 발명되는 걸까? 발명해도 될까?

그렇게 글을 쓰다보면 뭐, 소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진 않았지만, 이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작위적인 노력에 의한 산출물 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싶기도 하고요. 내 삶의 조각같은 원고를 만들고 싶었고 책을 엮기 위한 원고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진심이냐고. 이 글귀는 모두 내 마음인 것이 맞냐고 물으면서 썼습니다. 자연스럽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제 고집이 더 많이 투영 됐던 것 같아요. 독립출판하면서 이 점이 너무 고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누가 그러더라고요.


결국엔 결과론적인 거 아닌가 싶어요.

범죄만 아니면, 어디서 누가 쓴 거 가져다가 대놓고 베끼거나 하는 게 아니면, 그 방법이 어떻게 되었든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미겠죠. 어차피 내가 어떤 의도로 썼든 독자들은 거기까지는 신경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그냥 공감이 되는 이야기는 공감을 할 것이고. 공감이 안 되는 이야기는 공감을 안 하겠죠.


생각해보면 '내 글쓰기는 자연스러웠으면 한다'는 건 나의 만족을 위한 제 고집입니다. 독자를 생각한 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하면서 부리는 고집이면 모르겠는데, 저는 그 고집까지 제 작품의 일부로 다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가 어디에 공감하지?'를 생각해 보니까, 그냥 내 아집이었구나 싶었어요. 이 앞 뒤도 안 맞고 이루기도 쉽지 않은 고집은 적당히 꺾기로 마음먹고 최소의 기준선 하나만 분명히 잡기로 마음을 먹었죠.


'우리 집이 멀어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소재인지'만 생각하자.


이게 지난 1월에서 2월 넘어갈 쯤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집필에 대해서는 지난 겨울에서 이번 봄까지 참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혼자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좋은 원고를 쓰고 싶어서 오키로북스에서 하는 오직원 원정대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매주마다 쓰고 그에대한 피드백을 참여자분들과 오키로북스 직원분으로부터 받는 식의 프로그램이었죠. 그 내용을 다음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자신의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의 현장감이 곧 퀄리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