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9편: 원고 피드백 받기
-라고 말하는 작가님들의 인터뷰를 참 많이 읽었습니다. 말이 쉽다고 생각했죠. 원고를 보여준다니, 나의 이 불완전한 원고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누구한테 보여줘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만 하다가 첫 책은 딱 한 분께만 보여드리고 안 보여줬습니다.
많은 분께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상태로 쓴 글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출판하고 나니까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독자를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싶었죠. 결국엔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책부터는 작업 중이던 원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언론고시반에 있을 때 작문스터디 하던 게 참 많이 생각났어요. 교수님 앞의 비련한 기자지망생 같았던 나와 동기들이 그려졌죠. 교수님이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너보다 잘 쓰겠다!"라고 어흥! 하시면 우리는 그 앞에서 덜덜덜 떨고 그랬습니다. 가끔 종이를 집어 던지셨던 적도 있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욕먹던 시절로 내 발로 걸어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란... 아아아.
결국엔 익숙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모션을 덧붙이거나, 비꼬거나, 이름, 나이, 성별 등등으로 깎아내리더라도 그냥 그건 방식일 뿐이고 '당신이 날 지적하는 이유, 나의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됐었죠. 여담이지만 견디는데 도가 튼 우리들은 '그래도 교수님 말씀에 틀린 건 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어느 언론사에 가더라도 우리 정신은 가루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수련이 제가 불완전한 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기의 토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결과물이 그렇다고 그 교육방식을 비호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원고 보여주기가 익숙해지고 나니까 세 번째 책부터는 뻔뻔하게 보여줬습니다. '이거 불완전한 거야', '앞뒤 맥락은 이러니까 그걸 감안하고 들어줘' 같은 부연설명도 잘 안 했어요. 서점에서 책을 짚는 분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을지 알 수 없잖아요. 부연설명 같은 게 필요한 원고라면 보여주지 않고, 싣지도 말아야죠. 그러다가 문득 그냥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서 내 글의 피드백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사람들 말고요.
독립서점 오키로북스엔 제 책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지만(정중한 방식으로 다음 기회에 입고할 것을 추천받았습니다), 오키로북스에서 여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는 참여했습니다. '책을 만들고 싶은데 원고가 없는 분들'과 '매주 글 한 편을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저는 오직원원정대의 방식 '내가 쓴 글 피드백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본다'는 게 마음에 쏙 들어서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때가 지난 1월 말이었고, 집필의 방향을 어떻게 더 분명하게 잡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미리 지정해 둔 방향들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요. 내가 쓰는 문체, 각 원고의 제목, 길이,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혹시나 독자에게 '내 세계를 인정해라 독자들이여! 캬캬캬!' 같이 느껴질까 봐 걱정을 좀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전에 낸 책들은 얼핏 그런 점들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게 독립출판의 매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를 했으므로 고치고 싶었죠.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으레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면 좋은 말들만 가득하긴 합니다만, 그것도 충분히 좋은 데이터를 줄 수 있거든요. '내 글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 오직원님께서 피드백을 달아주기 때문에 개선점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목이 조금 난해하진 않은지. 글에서 덜어내면 더 좋았을 부분은 어딘지도 알 수 있죠. 다른 작가님들도 혹시 '아, 주변 사람들한테 원고를 보여줘야 한다니 ㅠㅠ 너무 부끄러워'라고 느끼신다면 이런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이용하는 걸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작가의 상태나 집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자기한테 편한 방식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제 첫 번째 책은 피드백을 거의 안 받는 게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는 생각하거든요. 안 그랬으면 밖에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의 트라우마를 다뤘기 때문이죠.
불안한 마음으로 '누가 피드백 많이 받으면 좋댔어...'하고 그냥 따르다가는 '으앙. 안 해! 안 해 먹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한 분한테만 피드백을 받아봤다고 했잖아요. 그때 제 마음이 그랬어요. 크게 지적을 한 것도 아닌데, 통째로 갈아엎었거든요. 그리고는 '아, 난 지금 너무나 쫄보라서 피드백을 많이 받으면 계속 고치다가 절대로 책을 못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러므로 저마다의 방식에 맞는 집필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요만큼이라도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두렵더라도 한 번은 도전해 보시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두려움의 기간은 짧고 얻어가는 것은 많을 것이기에.
다음 편부터는 집필에서 편집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글 편집을 하려면 일단 목차를 짜야 하거든요.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사실 지금도 계속 집필과 글 편집을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인데, 편집이 특히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글 편집만 있나요. 디자인 편집도 있는걸요. 하하하. 그럼 기대해주세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