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주 Aug 18. 2020

불완전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9편: 원고 피드백 받기

"주위 분들에게 원고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작가님들의 인터뷰를 참 많이 읽었습니다. 말이 쉽다고 생각했죠. 원고를 보여준다니, 나의 이 불완전한 원고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누구한테 보여줘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만 하다가 첫 책은 딱 한 분께만 보여드리고 안 보여줬습니다. 


많은 분께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상태로 쓴 글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출판하고 나니까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독자를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싶었죠. 결국엔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깨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고칠 수 있을 때 깨지는 게 낫기에...

두 번째 책부터는 작업 중이던 원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언론고시반에 있을 때 작문스터디 하던 게 참 많이 생각났어요. 교수님 앞의 비련한 기자지망생 같았던 나와 동기들이 그려졌죠. 교수님이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너보다 잘 쓰겠다!"라고 어흥! 하시면 우리는 그 앞에서 덜덜덜 떨고 그랬습니다. 가끔 종이를 집어 던지셨던 적도 있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욕먹던 시절로 내 발로 걸어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란... 아아아.


결국엔 익숙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모션을 덧붙이거나, 비꼬거나, 이름, 나이, 성별 등등으로 깎아내리더라도 그냥 그건 방식일 뿐이고 '당신이 날 지적하는 이유, 나의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됐었죠. 여담이지만 견디는데 도가 튼 우리들은 '그래도 교수님 말씀에 틀린 건 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어느 언론사에 가더라도 우리 정신은 가루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수련이 제가 불완전한 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기의 토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결과물이 그렇다고 그 교육방식을 비호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원고 보여주기가 익숙해지고 나니까 세 번째 책부터는 뻔뻔하게 보여줬습니다. '이거 불완전한 거야', '앞뒤 맥락은 이러니까 그걸 감안하고 들어줘' 같은 부연설명도 잘 안 했어요. 서점에서 책을 짚는 분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을지 알 수 없잖아요. 부연설명 같은 게 필요한 원고라면 보여주지 않고, 싣지도 말아야죠. 그러다가 문득 그냥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서 내 글의 피드백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사람들 말고요.


오직원원정대를 아시나요?

독립서점 오키로북스엔 제 책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지만(정중한 방식으로 다음 기회에 입고할 것을 추천받았습니다), 오키로북스에서 여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는 참여했습니다. '책을 만들고 싶은데 원고가 없는 분들'과 '매주 글 한 편을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저는 오직원원정대의 방식 '내가 쓴 글 피드백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본다'는 게 마음에 쏙 들어서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때가 지난 1월 말이었고, 집필의 방향을 어떻게 더 분명하게 잡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미리 지정해 둔 방향들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요. 내가 쓰는 문체, 각 원고의 제목, 길이,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혹시나 독자에게 '내 세계를 인정해라 독자들이여! 캬캬캬!' 같이 느껴질까 봐 걱정을 좀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전에 낸 책들은 얼핏 그런 점들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게 독립출판의 매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를 했으므로 고치고 싶었죠.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으레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면 좋은 말들만 가득하긴 합니다만, 그것도 충분히 좋은 데이터를 줄 수 있거든요. '내 글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 오직원님께서 피드백을 달아주기 때문에 개선점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목이 조금 난해하진 않은지. 글에서 덜어내면 더 좋았을 부분은 어딘지도 알 수 있죠. 다른 작가님들도 혹시 '아, 주변 사람들한테 원고를 보여줘야 한다니 ㅠㅠ 너무 부끄러워'라고 느끼신다면 이런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이용하는 걸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물론 피드백을 많이 받는 게 꼭 좋다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작가의 상태나 집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자기한테 편한 방식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제 첫 번째 책은 피드백을 거의 안 받는 게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는 생각하거든요. 안 그랬으면 밖에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의 트라우마를 다뤘기 때문이죠. 


불안한 마음으로 '누가 피드백 많이 받으면 좋댔어...'하고 그냥 따르다가는 '으앙. 안 해! 안 해 먹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한 분한테만 피드백을 받아봤다고 했잖아요. 그때 제 마음이 그랬어요. 크게 지적을 한 것도 아닌데, 통째로 갈아엎었거든요. 그리고는 '아, 난 지금 너무나 쫄보라서 피드백을 많이 받으면 계속 고치다가 절대로 책을 못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러므로 저마다의 방식에 맞는 집필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요만큼이라도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두렵더라도 한 번은 도전해 보시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두려움의 기간은 짧고 얻어가는 것은 많을 것이기에.




다음 편부터는 집필에서 편집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글 편집을 하려면 일단 목차를 짜야 하거든요.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사실 지금도 계속 집필과 글 편집을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인데, 편집이 특히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글 편집만 있나요. 디자인 편집도 있는걸요. 하하하. 그럼 기대해주세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