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주 Aug 19. 2020

목차에서 드러나는 책의 리듬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10편: 목차를 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추운 겨울이 왔다가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삶을 사니까

지난 독립출판 작업기 6편에서 말했습니다.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변주가 잦으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이 되어버리니까, 갑자기 톤을 휙휙틀지 않기로 했다고. 한 편의 원고를 집필할 때 내 상황의 변화와 그로인한 감정을 그저 '퉤!'하고 뱉지 않겠다는, 적어도 '퉤!'하고 뱉으면 추후 왜 그렇게 감정을 내팽게치듯 서술했는지 설명해주겠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원고를 편집할 때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심하게 진지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그냥 다 귀찮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아주 사랑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이 연이어서 있을 수도 있지만, 심지어 하루에 그런 감정의 기복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하루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분위기의 글을 쓴 경우도 종종 있었죠.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이걸 그냥 순서대로 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네, 저는 결국 원고의 순서를 바꿔서 목차를 짜기로 했습니다.


순서를 배치할 때 고려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길이

책의 한 면 안에 사진과 글이 배치되는 원고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두 면에 걸쳐서 서사가 이어지는 원고도 간간히 나오죠. 저는 웬만하면 긴 원고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게 했습니다. 글을 빠르게 읽고 본인의 생각을 여백에 많이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만약 그럴 경우 짧아도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글귀가 있을 것이고 간간이 체류 시간을 꽤 늘리는 저의 이야기 보따리 풀기 시간도 있겠죠. 호흡이 계속 길면 자칫 루즈해질 수 있으니까요.


한 번 길게 가면 짧게 쳐주고 다시 두세 문단 짜리 글을 쓰다가 또 길어지면 짧은 글을 넣어줍니다.


2. 분위기

이건 톤 얘기할 때 했던 말이랑 비슷해요. 그냥 개연성있는 흐름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따라오기가 좋을 것 같아서 감정선의 흐름을 좀 맞춰서 배열했습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글이 있으면. 바닥을 찍는 글도 있으니까. 그 사이에 썼을 법한 글들을 묶어서 유기적으로 배치하죠.


3. 주접 유무

개인적으로 언젠가 '주접주접 민주접'이라는 책을 내거나 저런 활동명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제 안에는 주접끼가 있는데요. 이 주접을 감성적인 분위기와 섞기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와 섞어서 쓰기도 했어요. '아, 그래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이런 주접을 부릴 여유는 있거든요...'라는 의미로.


문제는 여운을 남겨야 하는 경우더라고요. 여운과 주접은 잘 안맞달까. 제가 아직 그 경지는 아닌 거 같아요. 제 주접의 목적은 내적피식에 있거든요. 가볍게 무게를 쳐내는 거죠. '뭐래?'하고 갈 수 있게. 근데 여운은 '아... 머무르고 싶다. 이 페이지에 대해 좀 더 오래 생각하고 싶다'라서... 둘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웬만하면 둘의 거리는 띄우고 있습니다.


4. 계절감

일단 나머지 조건에 따라서 배치를 합니다. 그러고 났더니 어라? 계절감이 너무 달라요.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심지어 원고 쓸 때 찍은 사진도 올리는데. 그래서 계절감에 따라서 재배치를 합니다.


5. 마무리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고 싶은 경우, 담백하게 끝을 낼 수 있는 경우, 또는 다음 장의 주제를 암시하는 경우 생각해 뒀다가 각 장의 마무리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흐름에 집착하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지난민주일기를 만들때 제가 날짜 순서대로 실었기 때문이죠. 이 페이지에선 너무 밝고 그다음 장에서는 너무 진지하고 어느날은 너무 막 자책하고 그러다가 막 웃기고 앉아있고. 그래서 나중에 읽어보니까 민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제 일기장인데도, '어우... 야... 너무... 좀 종잡을 수가 없다. 캐릭터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목적을 가지고 흐름을 좀 만들어내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집필할 때는 '차분하게' '가볍게', '감성'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했고. 원고를 배열하는 과정에서도 그 부분이 전달될 수 있게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물론, 내 삶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싣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책을 읽는 순간을 생각해보니까 내가 책에 맞추려고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내 삶에 맞추려고 읽더라고요. 그게 잘 될 때 '아, 너무 좋아.'라고 하면서 책을 끌어안게 되는 것이고. 보통 그짓을 버스에서 해서 모션으로까지 정말하진 않았지만. 저는 누군가가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게 책과 교감하는(?), 작가와 함께 호흡하는 것 같은 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어느정도 시간의 조정을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챕터 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럼 다음편에서 뵈어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완전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