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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19. 2020

목차에서 드러나는 책의 리듬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10편: 목차를 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추운 겨울이 왔다가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삶을 사니까

지난 독립출판 작업기 6편에서 말했습니다.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변주가 잦으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이 되어버리니까, 갑자기 톤을 휙휙틀지 않기로 했다고. 한 편의 원고를 집필할 때 내 상황의 변화와 그로인한 감정을 그저 '퉤!'하고 뱉지 않겠다는, 적어도 '퉤!'하고 뱉으면 추후 왜 그렇게 감정을 내팽게치듯 서술했는지 설명해주겠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원고를 편집할 때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심하게 진지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그냥 다 귀찮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아주 사랑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이 연이어서 있을 수도 있지만, 심지어 하루에 그런 감정의 기복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하루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분위기의 글을 쓴 경우도 종종 있었죠.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이걸 그냥 순서대로 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네, 저는 결국 원고의 순서를 바꿔서 목차를 짜기로 했습니다.


순서를 배치할 때 고려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길이

책의 한 면 안에 사진과 글이 배치되는 원고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두 면에 걸쳐서 서사가 이어지는 원고도 간간히 나오죠. 저는 웬만하면 긴 원고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게 했습니다. 글을 빠르게 읽고 본인의 생각을 여백에 많이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만약 그럴 경우 짧아도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글귀가 있을 것이고 간간이 체류 시간을 꽤 늘리는 저의 이야기 보따리 풀기 시간도 있겠죠. 호흡이 계속 길면 자칫 루즈해질 수 있으니까요.


한 번 길게 가면 짧게 쳐주고 다시 두세 문단 짜리 글을 쓰다가 또 길어지면 짧은 글을 넣어줍니다.


2. 분위기

이건 톤 얘기할 때 했던 말이랑 비슷해요. 그냥 개연성있는 흐름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따라오기가 좋을 것 같아서 감정선의 흐름을 좀 맞춰서 배열했습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글이 있으면. 바닥을 찍는 글도 있으니까. 그 사이에 썼을 법한 글들을 묶어서 유기적으로 배치하죠.


3. 주접 유무

개인적으로 언젠가 '주접주접 민주접'이라는 책을 내거나 저런 활동명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제 안에는 주접끼가 있는데요. 이 주접을 감성적인 분위기와 섞기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와 섞어서 쓰기도 했어요. '아, 그래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이런 주접을 부릴 여유는 있거든요...'라는 의미로.


문제는 여운을 남겨야 하는 경우더라고요. 여운과 주접은 잘 안맞달까. 제가 아직 그 경지는 아닌 거 같아요. 제 주접의 목적은 내적피식에 있거든요. 가볍게 무게를 쳐내는 거죠. '뭐래?'하고 갈 수 있게. 근데 여운은 '아... 머무르고 싶다. 이 페이지에 대해 좀 더 오래 생각하고 싶다'라서... 둘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웬만하면 둘의 거리는 띄우고 있습니다.


4. 계절감

일단 나머지 조건에 따라서 배치를 합니다. 그러고 났더니 어라? 계절감이 너무 달라요.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심지어 원고 쓸 때 찍은 사진도 올리는데. 그래서 계절감에 따라서 재배치를 합니다.


5. 마무리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고 싶은 경우, 담백하게 끝을 낼 수 있는 경우, 또는 다음 장의 주제를 암시하는 경우 생각해 뒀다가 각 장의 마무리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흐름에 집착하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지난민주일기를 만들때 제가 날짜 순서대로 실었기 때문이죠. 이 페이지에선 너무 밝고 그다음 장에서는 너무 진지하고 어느날은 너무 막 자책하고 그러다가 막 웃기고 앉아있고. 그래서 나중에 읽어보니까 민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제 일기장인데도, '어우... 야... 너무... 좀 종잡을 수가 없다. 캐릭터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목적을 가지고 흐름을 좀 만들어내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집필할 때는 '차분하게' '가볍게', '감성'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했고. 원고를 배열하는 과정에서도 그 부분이 전달될 수 있게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물론, 내 삶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싣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책을 읽는 순간을 생각해보니까 내가 책에 맞추려고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내 삶에 맞추려고 읽더라고요. 그게 잘 될 때 '아, 너무 좋아.'라고 하면서 책을 끌어안게 되는 것이고. 보통 그짓을 버스에서 해서 모션으로까지 정말하진 않았지만. 저는 누군가가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게 책과 교감하는(?), 작가와 함께 호흡하는 것 같은 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어느정도 시간의 조정을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챕터 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럼 다음편에서 뵈어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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