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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10. 2020

교정과 교열과 윤문의 이름으로 널 고쳐 버리겠다!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_20편: 1교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다

교정, 교열, 윤문은 책을 만들기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정은 틀린 문자를 고치는 겁니다. 교열은 틀린 문장을 고치는 것이고요. 윤문은 같은 말도 더 읽기 좋게 만드는 거죠. 뭐, 정확히 정의한 사람은 없지만 대략 이런 맥락인 건 맞습니다. 분명한 점은 결국 고치라는 말이니까, "교정과 교열과 윤문을 해야 해"라는 말은 이런 의미라고 생각해요.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세요."


제가 어제 말했지만 고칠 때는 입으로 읽어보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탁탁 걸리는 부분들을 알 수 있거든요. 문제는 왜 걸렸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걸 알기 위해서 여태까지 글쓰기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문제의 양상은 크게 둘로 나눠집니다.

뺄 것을 빼지 않았고, 더할 것을 더하지 않았던 거죠.

어떤 단어가 툭하고 걸릴 때 그 단어가 없어도 말이 된다면 지우면 됩니다. 문장이 어색하면 빼면 됩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면 문단을 빼기도 합니다. 그런데 빼 봐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 더합니다. 방향은 맞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면 하고 싶은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뭔가를 빠뜨린 건 아닌지. 그러다 보면 알게 됩니다. 무엇을 더해야 할지 말이죠.


나를 동네 밖으로 운반해주는 초록색 버스 안이다.

이 문장을 도입부로 쓴 원고가 있습니다. 바로 걸리더라고요.


첫째, '나'

쓰는 주체는 나인데 굳이 '나를'이라는 표현을 썼어야 했나. 생략하면 부자연스러운가? "동네 밖으로 운반해주는 초록색 버스 안이다." 안 이상하죠? '나를'은 뺍니다.


둘째, '운반'

운반은 물체에 쓰는 표현입니다. 사람에 쓰는 표현이 아니죠. 저도 압니다. 그래도 이 표현을 쓴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단순히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는 길이다."라는 말을 표현하려는 게 아닌 거죠. 이동 과정 자체를 강조하고 싶은 겁니다. 잘 안 쓰는 표현을 쓰면서 말이죠.


하지만 운반은 물체에 쓰이는 말이니, 제가 물체와 같이 딱딱한 상태임을 강조할 생각이 없다면 고치는 게 좋습니다. 데려다 준다고 고쳐보는 건 어떨까요? 버스가 사람들을 '데려다 준다'는 말은 잘 쓰지 않지만 어쩐지 상냥한 인격체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수고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죠.


셋째, '초록색 버스'

초록색 버스는 마을버스입니다. 초록색이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마을버스가 더 익숙하고 이해도 잘 됩니다. 고쳐주는 게 좋겠죠.


고치면 "동네 밖으로 데려다주는 마을버스 안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상하죠? 데려다 준다는 표현은 누가 누구를 데려다 주었다 라고 말하지 않으면 부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나를'을 다시 넣어줍니다.


"나를 동네 밖으로 데려다주는 마을버스 안이다." 말이 되죠? 하지만 정말 이걸로 좋은 걸까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럴땐 아예 빼보기도 하고 더 단순하게 만들어 보기도 하죠. "마을 버스 안이다. 동네 밖으로 향한다." 이렇게 바꾸면 담백해 지는 것 같네요. 의미도 통합니다. '데려다 주는'이 빠졌지만 욕심을 버리겠습니다.


뒷 문장을 붙여 볼게요.

마을 버스 안이다. 동네 밖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다닌지도 12년이 넘었다. 경기도의, 누구나 언젠가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지만 굳이 찾아가지 않을 곳에 산다.


이 문단이 말하는 바는 굉장히 먼곳에 제가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 의미를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넣어보겠습니다.

"마을 버스 안이다. 가을에 물드는 산을 넘어 동네 밖으로 향한다. 이 버스를 타고 다닌지도 12년이 넘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이 마을버스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넙니다, 이 글을 쓴 시점은 가을입니다)


원고의 옆에는 당시 제가 버스에서 찍었던 빈 좌석들의 사진이 어딘가 감성적인 느낌으로 들어갑니다. 현장감이 좀 더 느껴지게 덧붙여 봅니다.


마을 버스 안에서 쓴다. 가을에 물든 산을 넘어 동네 밖으로 향한다. 이 버스를 타고 다닌지도 12년이 넘었다...


이런 식으로 빼고 더하는 쪼개고 합치는 일을 몇 번씩 반복합니다. 윤이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이죠. 간결한 건 좋지만 기사글만큼 색을 뺄 필요는 없으므로 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손을 대면 댈 수록 효과가 있기 때문에(어느 정도 까지는) 몇 교씩 하는 거죠. 저는 아직도 1교를 보고 있는데, 원래 처음 교정 볼 때는 좀 오래 걸리더라고요. 읽으면서 교정하는 중이니 목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조절해 가면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음회 예고: 슬슬 굿즈를 만들고 있습니다.

'굿즈는 책 볼 때 실용성 있는게 최고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책갈피만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는 제가 오래오래 쓸 수 있는 예쁜 책갈피를 많이 만들 것입니다. 후후... 그 이야기를 다음주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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