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주 Sep 22. 2020

내 책에 쓸 종이를 찾는 여정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24편: 종이


어떤 욕심을 내든 목적에 맞는 선택을 하세요.


1년 전 쯤 다산북살롱에 자주 갔을 때 박은정 편집장님한테 들었던 말인데요. 그때 저는 '다음 책은 진짜 예쁘고, 후가공 빠방하게 들어가는 그런 것을 만들겠어!'하고 벼르고 있었죠. 그때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다산북살롱에서 미팅을 자주 해서 따라 다니다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수업도 들었답니다. 제 욕망이 계속 터져나오는 것을 본 편집장님이 '워- 워-' 하고 진정하란 말들을(ㅋㅋㅋㅋ) 많이 해주셨죠. 그때 들었던 말들이 모두 자산이 되었는데, 특히 저 말이 가장 깊게 남았던 것 같아요. 종이를 정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요.




내가 좋아했던 종이들

줄무늬 주름이 진 종이, 만졌을 때 도돌도돌 무늬가 있는 종이, 열에 의해 색이 변하는 종이, 어딘가 푹신한 느낌이 드는 종이, 사진을 뽑기 좋은 매끈한 종이 등등 제가 욕심낸 종이들은 참 많습니다. 책방에 가서 늘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그 촉감을 기억하고 싶어 했던 만큼, 종이에 대한 욕심이 클 수 밖에 없었죠. 종이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내 책의 종이를 정하기 전에는 책의 표지를 쓸어보면서 이 종이는 뭐였을까. 뒷장을 보고 어떤 코팅을 올린 걸까. 뭐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보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비싼 종이도 있고 싼 종이도 있지만, 가격이 '좋음'을 결정하진 않는다

그러면서 알게 됐죠. '아! 질감이 있는 종이는 비싸다. 푹신한 건 비싸다. 코팅은 무난한 종이를 변신시킬 수 있는데, 그 코팅이 비싸다! 그렇지만 돈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그 책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그냥 내가 아는 '뻔한' 용지를 썼다. 그것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애초에 표지 이미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질감있는 종이를 썼든 어떤 종이를 썼든 내가 좋아했던 건 그냥 표지 이미지가 예뻤다'는 것을. 종이에만 관심 가져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요리사가 음식보다 접시에 신경 쓴 거랄까...




그래서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은 어떻게 생겼나?

현타가 온 뒤로는 표지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 조금 더 신경을 썼고요. 최근까지도 많이 고쳤습니다.

그렇게 나온 목업인데. 사실 지난 7월인가 6월 즈음 찍은 사진이었죠. 처음 이 사진을 정했을 때, 이건 무조건 유광 코팅이고 매끈하게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질감이 있으면 코팅했을 때 기포가 차거든요. 근데 이건 사진으로 컨셉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살아야 했습니다. 무조건 매끈하게 보여주고 싶었죠.


제가 여태까지 유광코팅은 한 번도 안해봤어요. 레퍼런스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매끈하게 나온 책이 뭐가 있지?'하고 뒤적거리다가 제 책장에 꽂혀 있던 것중에 Axt에 눈이 맞았던 거죠.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다녔을 때가 아득하게 기억나기도 하고. 촉감도 매끈하면서 통통한 게 좋았던 것 같고. 그냥 여러가지로 인상과 느낌이 좋아서. 이 사양으로 결정했습니다.

들고 인쇄소에 갔습니다. 스노우인지 아트지인지 모르겠어서. 그랬더니 인쇄소에서는 아트지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더라고요. 평량은 예상한대로 였고. 그렇게 견적을 받으면서 돌아 다녔답니다.


사실 스노우에 해도 될 것 같은데, 아트지는 더 반사광이 많이 돌거든요. 그래서 스노우라고 말해도 아트지로 해볼까 생각하고 있긴 했습니다. 저는 좀 유리창 너머의 사진 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멀게 느껴졌으면 좋겠고, 진열장의 책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물론 이런 저의 의도는 독자들에게 안 닿으면 그만인 것이고, 닿기도 힘들겠지만).




내지도 많이 고민 했어요.

이런 사진이 들어간 건데. 옵셋으로 할 거란 말이죠. 애초에 쨍한 색감을 살릴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어떤 사진은 쨍하지 않거든요. 막 어디는 강하고! 어디는 부드럽고이러면 톤이 깨지잖아요. 약한 색감을 올리는 건 부자연 스러울 것 같으니까, 쨍한 색감을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죠. 제가 뭐 사진집을 내는 것도 아니고 하니...


그래서 그냥 전반적으로 사진은 자연스럽게 뽑히길 바랐습니다. 네, 결론은 미색모조지입니다. 이런 저런 걸 고려해 봤는데, 그게 가장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더라고요. 다만 감리를 꼭 봐야죠. 으흑흑.. 170페이지 다는 절대로 못보겠지만. 그래도 보러 가야죠. 사진이 들어가니까 안 볼 수가 없어요.


근데 모조지도 백모조가 있고 미색모조가 있잖아요. 음... 이거는 제가 최근까지도(심지어 견적볼 때도) 백모조로 생각했는데. 음... 면지 색도 고르고. 책이 점점 완성 되어 가기도 하고. 백색보다는 미색이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 분위기도 맞는 것 같다 싶더라고요. 좀 더 감성적인 느낌이랑 글자를 읽기 더 편한 느낌으로. 그런데 이 부분은 제가 샘플을 뽑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제작 사양을 거의 다 마쳤습니다. 9월도 거의 다 가고 있네요. 편집도 거의 마무리 되어 갑니다. 마무리를 고민할 때죠. 내일은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맺음은 늘 고민스러우니까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출판물이라면 종이는 내 맘대로!’ 라는 착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