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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23. 2020

에세이, 어떻게 끝내야 할까?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25편: 마무리

마무리란 무엇인가

글쓰기 수업을 할 때도 많은 분들이 마무리를 질문합니다. 그러게요. 저도 마무리는 늘 어렵습니다. 여전히 답을 모릅니다. 마무리는 무엇이라고 이런 저런 유형으로 할 수 있다고 도식화 해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고 덧붙이면 더 좋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9월, 글을 쓰고 원고를 싣는 마지막 달입니다.

이제 20일입니다. 10일이 남았고, 이번 달에는 5개의 원고를 썼습니다. 8월이 끝나갈 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젠장, 마지막 원고로 뭘 써야 하는 거지...?' 막막한 마음으로 9월을 맞이하고, 그런 가운데도 글을 쓰면서 이게 잘 끝나가는 건지 애매해졌습니다. 확 터트릴까. 사그라들까. 아니면 1년 사이 변화된 걸 쓸까.    


그러다가 알게 됐죠. 사실 이 전까지는 책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걸. [집:합]은 한 꼭지 원고로 참여하기도 했고, 서론 본론 결론이 뚜렷한 글이어서 걱정이 없었습니다. [94년산 박민주]는 과거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의 연대기식 고백 에세이였으므로 끝이 정해져 있었죠. [지난 민주 일기]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주제로 책을 엮어서 끊으면 끊는 거고 시작하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은 마무리를 고민하게 된 걸까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을 쓰게 된 시점에 답이 있었습니다.

이번 책을 기획하고 막연히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꽤 오래 됐지만, 작년 10월에 집필을 시작했던 디테일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집을 내놓으셨거든요. 15살 때 이 집으로 오기 전까지는 이사를 많이 해서 한 곳에 오래 살았던 적이 없었는데, 이 집을 떠나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많이 아쉽더라고요. 사람들은 경기도 산골짜기에 사는 저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저는 이 집을 그리 싫어하지도 않았고요. 이렇게 먼길에서 본 것들을 자랑도 하고 싶고, 남겨 놓고 싶은 마음에 팔릴 때까지 글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왜 1년이라고 했냐면, '적어도 그 안에는 팔리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이 때문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집은 팔리지 않았고, 심지어 부모님도 집을 전세로 내놓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1층은 우리가 쓰고, 2층을 공사해서 세를 준다고. 그렇게 되면서 끝이 애매해 진 거예요. 제가 집을 떠나면 끝일 수 밖에 없는 건데, 이러면 왜 끝을 내야 하는지 명분이 없어지는 거죠. 제가 정말 집을 떠날 때 책을 낸다면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요.


1년이라는 상징성을 믿고 끝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사진도 있고 돌아가는 계절감도 느껴지니, 1년 사이클로 쓴 게 '그냥 1년이면 충분히 쓴 것 같아서 끝냈슴다'같은 느낌이 나진 않더라고요. 원래 산문 자체도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은 옴니버스식 구성이고. 그러니까 9월에 끝나는 게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9월에 나올 이 마지막 원고는 무슨 내용이어야 할까?

고민 끝에 '지금 이 시점, 2020년의 가을을 느끼는 내가 가장 잘 보이는 글'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이 책의 장르를 정할 때 제가 우스갯소리처럼 [이동문학 단상집]이라는 말을 만들어 썼거든요. 근데 딱 그게 이 책의 정체성이더라고요.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마무리를 지어야 책을 닫았을 때 제목을 보고 여운이 남지 않을까? 그게 제 고민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마무리를 고민한다는 건 "내 책을 읽은 뒤 독자가 어떤 상태로 남길 바라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하, 마무리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처럼 참 막막한 것 같아요. 제작의 죽음은 유통의 시작이니 고민은 멈추지 않겠죠. 으흑... 하지만 저는 이 일을 좋아하니깐. 잘하고 싶습니다.


사실 브런치 글 하나도 마무리 하는 게 참 힘듭니다. 저는 매번 다음 주제를 언급하면서 끝내곤 하죠. 시리즈라면 이것도 방법이니까요. 그래서 내일 올라오는 주제는 서지정보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성출판물이 아닌 독립출판물의 서지정보는 어떠해야할지 고민한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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