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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24. 2020

누구나 발품파는 건 어렵다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26편: 발품팔기

너가 직접 뛰어봐야 아는 거지.
그걸 어떻게 다 알려주겠어? 좀 돌아다녀봐.


발품팔라는 말. 독립출판을 시작할 때 많이 듣는 말이죠. 특히 인쇄소를 알아볼때. 내 마음에 드는 굿즈를 만들고 싶을 때.




하지만 우리는 발품파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우리는 발품파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학때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시장조사를 해 본 적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처음보는 사람한테 질문을 하라니?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요?


제가 처음 독립출판을 시작했을 때 얘기를 드려볼게요. 저는 일단 ‘을지로 인쇄소’란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독립출판 후기를 찾아 보기도 했죠. 인쇄소 아저씨가 의외로 친절하셨다는 말은 있지만, 상호명은 늘 없습니다. 귀찮아 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그렇게 적은 부수는 안 뽑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서 걱정이 늘어갑니다.


그래도 좀 유명해 보이는 몇 군데를 찾았습니다.

직접 찾아가보자 마음을 먹었죠. ‘쭈뼛쭈뼛 거리면 혹시 나한테 비싸게 값을 부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겁도 났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A인쇄소.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제가 표지를 랑데뷰로 뽑을지 몽블랑으로 뽑을 지 고민할 때 둘 다 뽑아서 비교하게 해 줬습니다. 값 안 받고.


그래서 그냥 거기서 샘플 인쇄를 했습니다. 세 권인가 뽑았는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세 권 다 집에서 뜯어보니 불량률이 100%더라고요(직접 가서 받았는데 왜 집에서 뜯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거기서는 다시는 안해야지 생각했어요.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작가님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는데, 동시에 그 A인쇄소에서 몇년간 계속 책을 잘 뽑고 있는 작가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나의 인쇄소에서도 퀄리티가 제각각으로 나올 수가 있느냐?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막 여기가 좋다더라 하고 가도, 음... 그 결과가 각기 다른 겁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가 해봐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죠. 그냥 ‘어느 인쇄소가 좋다!’는 말만 믿고 인쇄를 하면 낭패를 볼 수 있어요. 이러나 저러나 깨지면서 배우는 즐거운 독립출판이랄까..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운이 좋게 인쇄소에서도 일 잘하고 착하고 친절한 담당자를 추천받은 경우죠.


아무튼 그런 귀인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무엇을 질문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내 요구가 가능한 건지도 모른채 그냥 가서 여쭤봅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지만. 물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까 용기를 내는 거죠.


용기를 내는 건 처음에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쉽습니다. 물어보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희열이 느껴져요. 내게 차갑던 사람들의 얼굴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분들을 만나면 ‘아, 이래서 다들 돌아다니는 거구나...’ 알게 돼요.


제가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많은 분들이 발품 파는 걸 망설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쉬워서 처음부터 발품파는 사람은 없거든요. 다 쭈뼛쭈뼛하는 거죠. 그러니까 엄청난 마법처럼 책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내 책을 만드는 길을 머뭇거리면서도 걸어서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일단은 질문이 생기면 질문을 하세요.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답해주는 분들이 내게 도움을 주실 수 있도록. 도움을 끌어당기려면, 당당해 지세요.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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