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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30. 2020

독립출판작가에게  서지정보 페이지란...?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28편: 서지정보

독립출판을 배우기 전에 저는 신문방송학과를 재학중인 학생이었습니다. 언론정보에 대한 아주 얄팍한 지식을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때 정보리터러시인가, 뭐 그런 수업을 들으면서 서지정보에 대해 배웠던 것 같은데... 그건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분명 A+을 받았는데, 제 인생에 도서관이나 책은 굉장히 먼 존재일 것 같아서 시험이 끝나자 마자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러나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대학을 나오자 마자 돈을 벌어서 독립출판을 하는 법을 배웠으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 때 제가 처음 들었던 독립출판 수업 이름이 바로 "인스턴트 퍼블리싱"이었습니다. 바로, 지금을 개인의 특수한 시선으로 기록하는(기록할 수 있는) 독립출판에 대해 배웠죠. 그리고 책을 내면서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굳이 독립출판 도서 내지에 서지정보 페이지를 넣어야 할까?

도망친 곳에서 만난 소설 | 임발 | @room_of_imbal

제가 얘기하는 서지정보가 논문의 그것이 아니라는 건 아실 거예요. 책의 마지막 장(혹은 표제지 뒷면)에 "0판 0쇄 발행 0000년 00월 00일" 이런게 써 있는 그것을 말합니다.  


근데 그 서지정보를 왜 기록할까요? 저도 학술적인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안나지만(다시 말하지만 주입식 교육은 다 필요 없습니다 진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독자가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쉽게 원하는 도서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래서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라는 것도 있는 거고요. 그걸 받으려면(출판사업자도 있어야 하지만) 누가 썼는지, 어디서 냈는지, 언제 찍었는지 이런 정보들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책의 마지막 장에 서지정보로 들어가는 거죠. 그럼 사람들은 자기가 산 책이 개정판인지. 몇 쇄인지도 알 수 있고, 누가 이 고마운 책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표제지 뒤보다 맨 마지막 장에 넣는 걸 좋아하는데. 꼭 엔딩 크레딧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입니다.



독립출판물도 서지정보는 필요합니다.

ISBN을 박지 않은 독립출판물에도(ISBN은 독립출판물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서지정보가 필요합니다. 독립서점에 넣을 때 서점 사장님들이 말씀하시죠. 기본적인 서지정보와 책 소개를 좀 보내달라고. 책을 관리해야 하니까요.


다만 그렇게 메일, 워드, 구글시트 등으로 서지정보를 드리다보니 책 속에 서지정보 페이지를 길게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테디 셀러보다는 원타임 베스트 셀러가 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1쇄 인쇄로 그치는 경우도 많고요. 실제로 많은 독립출판물을 구경해 보면 서지정보가 매우 단촐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없는 경우도 있고, 작가 이름만 써 있는 경우나 인스타그램 주소만 써 있는 경우도 종종 봤습니다. 저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여러명이 만든 것도 아니고 본인이 다 했다면. 그리고 지금의 인스턴트한 기록을 개인의 특수한 시선으로 그린 것이 독립출판의 매력이(기도 하다)라고 생각해서죠.



저도 서지정보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용하진 않습니다.

좌 『지난 민주 일기』, 우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일단 인쇄와 발행 시기는 기록해 둡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저도 까먹기 때문이죠. 두번째는 작업중인 제게 마감기한이 되거든요. 심지어 예전에는 책을 만들기 시작할 때 바로 서지정보부터 쓴 적이 있어요. 그 기한을 지키고 싶어서.


아래에 누가 이 책을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웬만하면 제 작가적 정체성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거나, 컨셉을 보여주는데 사용하는 편입니다. 『지난 민주 일기』에서는 재치를 부려보았고,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에서는 성을 그냥 다 떼어버렸습니다. 성이 무엇이든 그게 뭐시 중하냐! 나는 그냥 민주다(이런 느낌이지만, 저만 알아도 괜찮습니다... 뭐, 제 의도야 알아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면 아닌거죠).


그리고 펴낸곳에는 '길거리'를 써 버렸어요. 실제로 이 책을 길에서 썼고, 사람들도 길에서 볼 테니까, 이 책이 존재하게 하는 곳은 길거리겠지. 뭐 그런 바람을 담은 짓이었는데. 사실 저는 이런 짓을 해 볼 수 있는 독립출판이 너무 좋답니다(킥킥킥). 기성 출판사 편집자 분들은 이런 제가 좀... 이상하게, 약간 소꿉장난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이게 독립출판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서점에서 독자분들이 제 서지정보에 꽂혀서 저도 매우 놀란 적이 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독립출판을 하는 동안은 이 권리(?)를 누리려고 합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민주 책에는 민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꽉 차있어서 너무 좋아"라고. 그런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갑자기 독립출판 찬양이 되네요. 흠흠. 그럼 내일은 입고문의에 대한 글을 써 보겠습니다.



| 작업기를 읽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익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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