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30편: 인쇄감리
사실 감리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이전에는 제 책이 아니라 다른 분의 책을 감리해 드리러 갔었어요. 서로 다른 인쇄소여서 이번엔 또 어떨까, 윤전기 기장님이 막 뿔이 나 계시면 어쩌나 여러가지 걱정과 근심을 안고 있긴 했습니다.
파주 찾아 갈 필요 없네! 그냥 여기서 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만큼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 했습니다. 이전에 한 곳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집에 오는 길이 너무 가벼워서 사진도 찍고 그랬습니다.
인쇄 현장에서 색을 조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인쇄감리는 옵셋 인쇄를 할 때 주로 봅니다. 디지털 인쇄(인디고라고 보통 부르는)를 할 때는 표지 감리를 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요, 저는 안 해 봐서 잘 모르겠고 보통은 옵셋을 할 때 감리를 봅니다. 그냥 1도로 먹만 올릴 때는 잘 안 보지만 4도로 컬러를 올릴때는 보는 게 좋죠.
왜 컬러로 옵셋을 찍을 때 감리를 보냐면 말이죠...
옵셋 기계는 CMYK라는 4가지 색을 사용합니다. 이 네 가지로 정말 많은 색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네온빛이랄까 형광빛은 못 만듭니다. 아무리 디지털 상에서 RGB가 아니라 CMYK로 작업을 해도, 모니터 상으로 표현되는 그 쨍함을 인쇄기기가 따라가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옵셋으로 인쇄하면 톤이 다운된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감리를 볼 때는 이렇게 색의 차이가 생기는 부분을 조금 더 보정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청을 올려달라든가, 적을 올려달라든가... 할 수 있죠. 덧붙여서 인디고는 디지털인쇄이기 때문에, 형광색도 잘 표현됩니다.
그럼 인디고로 뽑으면 되지 않겠냐구요?
인디고는 200부 아래로 빨리 뽑을 때 가성비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부터는 값이 비싸져요.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없달까.... 근데 옵셋은 아닙니다. 옵셋은 300부 아래로...는 경제적이지 않고요. 그 이상부터는 많이 뽑을 수록 권당 제작단가가 줄어듭니다. 생각보다 많이요.
저는 그래서 음... 많이 뽑았습니다. 열심히 홍보할 일이 남았죠. 하하하하.
감리를 볼때 감사하게도 인쇄소 담당자분이 같이 계셔 주었어요. 뭔가 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챙겨주시는 건 아니었지만, 존재만으로 굉장히 든든했답니다. 사실 이렇게 해주시는 인쇄소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나중에 얘기를 들은 건데, 제가 감리를 해봐서 기장님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크게 무리가 없어보여 딱히 나서지 않았던 거라고 합니다. 감리를 처음 하면 가끔 왜 내가 작업한 색과 뽑은 색이 이렇게 다른지 납득을 못하시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그걸 기장님이 설명을 해 주셔도 아무래도 쓰는 용어도 다르고 해서 잘 이야기가 안 되고요.
근데 제 입장에서는 윤전기 기장님이 일을 굉장히 잘해주셔서 오히려 ‘나 감리 왜 온 거지?’싶었어요. 가끔 값을 조정해달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그 조정을 할 때마다 ‘아, 그래도 감리의 의의를 다하고 간다.’ 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일 오래걸렸던 게 표지였습니다. 청록을 살리자니 사진에 영향을 주고, 사진을 살리자니 청록색 뒷표지가 영향을 받더라고요. 저는 샘플책을 가져갔는데 샘플의 저 느낌은 도저히 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살짝 아쉽긴 했습니다. 근데 어차피 유광에서 무광으로 코팅 방법도 바꿨으니 지금의 표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긴 해요.
감리는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말리는 시간 빼면 168페이지를 감리하는데 4시간 좀 덜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것도 많았고. 인쇄소 사장님부터 직원분들이 옆에 계셔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으니 더 좋았고요. 인쇄하러 왔다가 인쇄 배우고(+영업당하고) 집에 들어갔답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즐거운 경험이었고요(감리가 즐거운 경험이 될 확률이 마냥 높진 않은데, 음...). 내일은 입고문의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