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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02. 2021

전자책과 종이책 디자인은 달라요

이 두마리 토끼는 제발 따로 잡으세요

'전자책 시장이 뜨고 있다'는 말이 이젠 너무 익숙해서 '아직도 뜨고 있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근 1년. 제게도 PDF 제작 요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한 서너 건 이상은 작업 한 거 같네요. 종이책도 다섯권 정도 만들고. 어쩌다 편집디자인을 많이 하는, 콘텐츠에디터가 되었는지...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한 번에 전자책과 종이책을 다 만들고 싶다고 요청하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둘은 다른 형태의 결과물로 나와야 한다고 말씀 드려요. 하지만 말씀을 드려도 계속 같은 요청을 반복하거나, 이미 머릿속에서는 '종이책 인쇄 전에 PDF를 줄테니까 그걸 그냥 전자책으로 올리면 되잖아?'라고 결론을 내는 분들을 자주 뵙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 설명이 부족하여, 비슷한 작업을 두 번하고 돈을 더 받으려는 심산처럼 읽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가 다르다든가. 목적에 따라서 디자인은 달라야 한다든가. 독자가 전자기기를 읽을 때 두는 시선과 책을 볼 때 두는 시선이 다르다. 뭐 이런 말들은 어차피 클라이언트들에겐 와닿지 않을테니, 그런 거 다 빼고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원고로 전자책을 만들었을 때, 50장을 넘길 수 있나요?"

전자책은 보통 플랫폼을 통해 판매됩니다. 대표적으로 크몽과 탈잉이 있죠. 최근 크몽은 전자책의 최소 페이지 수를 50장으로 늘렸습니다. '목차와 표지를 뺀' 것이 50장이어야 한다는 건데, 결국엔 내용만으로 50장 채울 수 있는지 보겠다는 소리죠. 그리고 이 기준을 원래 가지고 있던 게 탈잉이에요. 그러니까 전자책을 만들겠다면 기본적으로 그정도 분량의 원고는 갖춰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종이책은? 그것보다 적어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30~40페이지 쯤 나올만한 분량의 원고로 '종이책을 만드는 겸에 전자책도 만들어야지.' 라는 마음을 먹어도, 현실적으로 올릴 수 있는 곳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는 걸 알아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단, 글자 크기는 12포인트에 행간 1.15pt로 맞춰서요."

역시 플랫폼에서 내건 조건이에요. 원고를 쓰는 분들에겐 '앗, 12포인트! 10포인트보다 크다!'라면서 부담을 좀 줄여주는 이야기겠지만, 이 부분도 종이책 인쇄를 위해 만드는 PDF를 전자책으로 쓸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종이책에 12포인트를 쓰면 글자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보통 우리가 종이책에서 보는 본문 글자는 끽해봐야 10포인트고 대부분 그 아래입니다. 글자가 큰 종이책을 만들면 되지 않냐고요? 초등학교 저학년때 보던 교과서 같은 느낌을 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요청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만들어 드려도 분명 다시 작업해 달라고 할 겁니다.


물론 종이책을 만들기 전에 애초에 전자책을 만들걸 유념하고 판형과 글자 크기 그리고 레이아웃을 정하면 얼추 맞출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일단 종이책 판형도 제한된다는 단점을 안고 가야해요. 제가 최근 맡은 작업에서는 운좋게 잘 맞았는지 반려는 안 됐는데, 모르죠. 담당자가 까다로우면 조건이 맞지 않다고 반려 당할 수 있는 거니까요. 반려 당하면 그때 다시 글자 크기를 맞추면 되지 않냐고 한 경우도 있는데 만약 워드로 작업해서 PDF를 만드는 경우면 정말 쉽게 할 수 있겠죠(애초에 그런 경우라면 저한테 의뢰가 안 왔겠지만). 


그런데 인디자인이라면? 그건 재앙이이에요. 그리고 대부분의 종이책 편집 작업은 인디자인으로 합니다. 글자만 있으면 좀 쉽겠지만, 전자책은 멀티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콘텐츠인데, 사진 하나 안 넣었을리가 없죠. 그럼 레이아웃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싹 다 손 봐야 합니다. 작업을 맡기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괜히 더 드는 일이고, 작업을 맡은 입장에서는 .... "#$@#@%@$@#@#%!#@$!!@#"


그러니까 종이책을 제작할 것도 아니고, 돈이 아주 많거나, 디자인 욕심을 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자책 작업은 워드로 집에서 하시는 것이 효율적이고 간편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제밥그릇 걷어차는 말이긴 하지만, 저도 좀 욕심이 많은 분과 작업을 해야 동기가 샘솟는 편이라서...


왜 플랫폼에선 이런 조건을 내걸었을까요?

50페이지 이상을 쓰라는 건 전자책의 질 때문에 그런 것 같지만, 행간과 글자크기를 기준으로 주는 건 기본적으로 독자가 책을 읽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전자책은 말그대로 전자기기로 봅니다. 종이책은 빛을 반사해서 읽는 거지만, 전자책을 보려면 빛을 발하는 물체를 우리 눈이 계속 보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글자가 종이책만큼 작으면? 종이책을 보는 것 처럼 오래 집중하기 어려워요. 심지어 둘은 판형도 다릅니다. 여백도 달라요. 정말 영어랑 한글만큼 달라요.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는 것 빼고 다 달라요.


하나의 원고로 서로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One source multi use라는 말을 몇년 전에 대학에서 들었을 땐, 참으로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하나의 틀을 가지고 여러번 찍어 다양한 곳에 노출시킬 수 있다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전략을 이젠 다 알아요. 이 사람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의미있는 말을 적재적소로 큐레이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다 안다구요. 그 둘을 가르는 질문은 '맥락에 맞게 정보를 담고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클라이언트에게 좀 당돌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때가 있어요. 


왜 종이책을 만들고 싶으세요? 왜 전자책을 만들고 싶으세요?

그냥 단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점은 이래요. 종이책은 밑줄을 그을 수 있어요. 태그를 달며 공부하듯이 읽고 눈에 보이는 곳에 보관할 수 있어요. 전자책은 다양한 소스를 첨부할 수 있어요. 공유도 쉽죠. 가볍게 읽기 좋아요. 만약 정보를 전달하는 용이라면 텍스트를 따서 정리하기도 좋은 것 같아요. 만들고 싶은 책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원고를 쓸 때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사람들이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결론입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그 책을 고르는 독자들의 목적과 읽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에 따라 디자인도 다른 형태를 띄어야 합니다. 만약 둘이 같다면, 돈과 시간을 들였는데도 원하는 결과물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까 돈 써서 이상한 거 만들지 마시고, 둘을 만들려고 하시거든 기획부터 따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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