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글자를 잘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용...
나는 글자가 가장 강력한 그래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독립출판을 하다보니, 좋은 글자, 좋은 폰트를 찾으려고 기웃거리게 됐고,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폰트를 몇 개 사보다가, 직접 그려보면 더 알게 되는게 많지 않을까 싶어서 레터링 수업도 들었다. 그러던 와중 익히 듣던 이름이 있다. 활자공간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폰트가 자주 나오던 곳이다. 그곳을 운영하던 이용제 교수님이 새로 열었던 펀딩이 눈에 띄었다.
‘달마다 줌을 해 준다고?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도움 되는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글자에 대한 글도 많이 보내준다니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래서 펀딩에 참여했고, 꽤 기다리다가 잊어버렸다. 레터링 수업을 등록하고 나서 따라가기만도 벅차더라고. 그러다 문득 생각나 줌에 들어갔고,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교수님이 내 책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뭐, 일하는 곳 근처이기도 해서 교수님과 만날 약속을 잡게 됐다.
약속에 나가보니 교수님은 사람이 필요하셨더라. 내용과 기술을 콘텐츠로 보여주고 싶은데, 주변에는 활자 디자이너만 가득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랄까. 정리는 하고 싶고. 근데 그냥 보여주면 이해가 안 된다고 하고. 다른 시선은 필요한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고. 완전히 문외한인 사람한테 다 알려주고 정리해 달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 중에서도 일단 새로 오픈하는 홈페이지 작업이 시급했고(가치는 알겠지만, 살 사람들에게 그게 중요한 일인지, 중요하다면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 무엇을 어떻게 하시면 좋겠다 말씀은 드렸지만, 선뜻 이 일을 맡아도 될까 고민이 되더라. 그래도 디자이너도 붙어서 함께 한다면 기획이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문제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었는데, 그 중에 큰 건이 어찌저찌 일단락이 되어 일을 맡기로 했다. 물론 급여 얘기도 하고. 나름 내가 해드릴 수 있는 만큼을 불렀고, 오케이 하셔서 일주일에 미팅하면서 정리하고 결과물을 내기로 했다.
오늘은 같이 일하기로 정한 뒤 처음으로 진행했던 미팅을 끝냈다.
대표님들은 늘 옆에 이렇게 크리틱을 해 줄 외부인이 필요한 걸까. 직원분도 본인이 해드리지 못한 피드백을 해줘서 시원하다는 눈치고(심지어 갈 때 감사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잘못들었나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옆에서 얘기를 들으면서 끄덕끄덕 하시던 것도 기억나고. 내 의견에 동조하면서 일하는 우리가 힘들었다는 느낌의 말도 꺼내주셨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한 거 같다). 나도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걸 볼 수 있어서 좋고. 잘 하는 일 하면서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일이 있나 싶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어떤 내용을 넣을까 고르려면 나도 정보가 필요해서 계속 자료를 받게 된다. 아, 뭐 정보는 정보고 아무튼 너무 예쁘다. 늘 생각하지만 글자가 참 예뻐.
근데 나는 좀 뭐랄까, 어차피 이렇게 타자의 시각과 접근이 필요해서 얘기를 해 주시는 거니... 나도 그냥 솔직하게 '쌤, 그렇게 하면 그냥 백과사전이에요. 이렇게 보여주셔야 해요. 다 뜯어고치지 마시고 제목부터 달아주세요. 그 굿즈는 너무 덕후같아요. 덕후가 나쁜 건 아닌데 수요가 적을 것 같아요.' 이런걸 그냥 대 놓고 말씀드리는 편인데. 그게 또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좀 직설적인가 싶기도 하다.
또 너무 먹기 좋게 정보를 가공하다보면 많은 정보를 생략하게 될 수 있다. 아니, 필연적으로 그럴 거다. 선생님은 알리는 것만큼이나 정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던 만큼, 어디에는 정보를 많이 넣어서 정리의 의의를 다 하고, 어디에는 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기 쉽게 할지 그 선을 정해서 말씀을 드릴 필요도 있겠다. 안 그러면 당신께서 '어,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정리를 하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하다가 힘들어하실지도.
그렇지만 갑자기 기획자라니…
하긴 내가 프리랜서 시작할 때 처음부터 같이 일했던 쌤도, 나한테 컨텐츠 기획사 같은거 차리면 좋겠다고 조언하신 적이 있었다. 출판사만 생각하지 말라구. 곧 출판사 낼 생각인데…. 사업자는 다르게 내야하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종종 기획하는 얘기를 올리도록 하겠다. 어쩌다 기획…?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