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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Feb 04. 2022

무난하지 않으면서 가독성 좋은 폰트는 없을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없고 나는 글을 돋보이게 하고 싶다

좋은 폰트를 찾고 있나요? 텍스트를 더 잘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나요?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와 신민주 에디터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첫째주와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좋은 폰트 가이드입니다.


나는 독자로서 책과 대면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집중해서 책을 보면 페이지 속의 글자들이 어떤 목소리에 실려 들어올 때가 있다. 어떤 건 아주 단단하고 우렁찬데, 어떤 건 차분하고 느긋하게 다가온다. 책의 인상이 종이와 글자체와 문체 같은 것들을 통해 독자에게 뚜렷한 이미지를 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만들 때도 조금 더 다양한 것들을 조화롭게 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는 편이다. 이런 저런 폰트를 써보고 싶어하는 욕심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남들이 다 쓰는 폰트 말고 다른 걸 쓰면서 가독성이 좋기를 바라는 건 너무 욕심 아닐까?’ 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 가독성이라는 기본은 지키고 싶고, 멋 부리는 것처럼 보이긴 싫은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이번에도) 교수님께 물어봤다.


“무난하지 않으면서 가독성도 좋은 폰트를 찾고 싶어요. 근데 익숙해야 가독성이 좋잖아요. 아닌가요?”


가독성 ≠ 익숙함


‘익숙해야만 가독성이 좋은 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예를 들어서 손글씨체만 생각해도, 익숙하게 쓰이지만 엄밀히 말해 읽기에 편한 글자체는 아닌 것처럼, 익숙한 것과 읽기 편한 건 다르다고.


대신 교수님은 ‘가독성이 좋다’는 게 어떤 말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편안하게, 정확하게,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가. 그게 핵심이다. 그래서 지면의 크기, 글줄과 글자 크기, 내용의 양, 예상 독자가 독서할 때 처하게 될 외부적인 환경이나 내부적인 환경 등에 따라 읽기 좋은 텍스트의 조건은 달라진다. 이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절대 폰트란 없기 때문에, 그 기준에 부합하는 폰트를 찾고자 시도하는 건 매우 좋은 자세라는 얘기도 들었다(하하하).


“근데 민주씨가 말하는 무난한 폰트는 어떤 걸 얘기하는 건가요?”

“음… 뭐, 코펍? 노토산스?”

“혹시 코펍은 전자책 용으로 나온 폰트라는 걸 알고 있나요?”

“어? 나 그걸로 종이책 만든 적 있는데…”


나는 여기서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렇다. 나는 무난한 폰트가 뭔지도 몰랐던 거다. 이것이 디자인과를 전공하지 않고 알음알음 디자인을 배워 자기 마음대로 일한 자의 현실인가! 



출판사에서 무난하게 쓰는 본문폰트란?


애초에 남들 다 쓰는 건(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쓰기 싫다던 말이 부끄럽지만, 내가 몰랐던 건 몰랐던 거니까 ‘무난한 것’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오늘폰트

출판사에서 본문에 가장 많이 쓰는 폰트는 신신명조 계열이다. 과거 세로쓰기 시절에 나온 세명조, 중명조, 태명조, 견명조가 있고, 신신명조와 신명조는 중명조를 개량해서 나온 가로쓰기용 폰트다. 딱 10년 전만해도 출판에 쓰이던 건 신신명조였고, 그 뒤에 윤명조도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산돌명조네오와 본명조를 쓰는 경우도 많다.


이쯤되니 오히려 윤명조나 본명조는 써봤던 기억이 났다. 반면 신명조나 신신명조는 익숙치 않았고. 분명 신명조도 이곳저곳에 폰트 회사의 이름을 섞어 올려 두었을 텐데, 어떤 것을 사용해 보는 게 좋은지 궁금했다. 그런 내게 교수님은 SM 세명조, SM 중명조, SM 신신명조를 추천했다. 가장 정통성있게 만들어진 폰트라며.


사실 이 과정에서 교수님이 이것도 모를 줄은 몰랐다며, 어디까지 뻔뻔하게 알려달라고 할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의 강점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니, 그냥 질문 당해 주셨으면 한다.


근데 왜 고딕은 안 써요?


본문용 폰트 얘기를 듣다보니 고딕 얘기가 안 나와서 이상했다. 물론 나도 고딕을 책에 쓸 생각은 없는데, 나름 서체계의 양대산맥이 아닌가. 무엇보다 책 본문에 안 쓴다 뿐이지, 디지털 콘텐츠에도 본문은 필요하고, 그럴 때 쉽게 고딕체인데.


“고딕은 튀라고 만든 글자체니까 책 본문에 길게 쓰기엔 어울리지 않죠.”


고딕이 책에 많이 쓰였다면 그건 아마 잡지일 거라고 교수님은 이야기했다. 그건 다 (보편적인) 고딕체가 가진 공간 때문이다. 글자의 면적을 동일하게 만들었고, 글자 면적도 크게 잡았고, 그 만큼 글자 바깥의 공간은 줄어들었다. 책 안에 쓰면 서체가 꽉 들어차 한 글자 한 글자가 보이기 보다는 문단 덩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오늘폰트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때는 대부분의 고딕체가 가진 공간감 때문에 읽기 편하지 않다는 거죠? 근데 그렇게 문제가 있는 고딕체를 왜 디지털 상에서는 숱하게 볼 수 있는 거죠?”


교수님은 크게 두가지의 이유를 꼽았다. 첫번째는 조화로움이다. 디지털 상에는 다양한 문자와 기호들이 우리가 책에서 보는 것보다 더 많이 섞여서 사용된다. 부리가 없는 경우(산세리프)에는 서체들의 위치와 굵기만 맞으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 처럼 보이지만, 부리와 곡선 표현이 되어 있는 명조는 다른 요소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디지털 상에서 고딕이 명조보다 유리한 건 매체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높은 해상도의 디지털 화면을 볼 수 있지만, 아직도 픽셀기반의 화면을 보는 독자가 더 많을 거다(지금 이 글도 픽셀의 입자가 느껴지는 스크린을 보며 쓰고 있는데 심지어 고딕도 살짝 뭉게진다). 획마다 굵기가 다른, 심지어는 하나의 획에서도 굵기가 가늘어 졌다가 굵어지는 명조는 제한된 픽셀 위에서 그 표현을 다 전하기 어렵다. 명조에 비해 고딕은 네모 반듯한 편이니까, 그보다 픽셀에서 덜 깨지는 것이고. 


매체에 따라서 이렇게나 생각해야 할 게 많은 줄은 몰랐다. 페이지 작업을 하다가 글을 많이 올려야 할 때가 고민이었는데, 플랫폼 안의 레이아웃과 글자체들과 조화를 살펴서, 컨셉을 살리면서도 너무 읽기 어렵지 않은 글자를 선택해야겠다.


새로운 글자를 써보고 싶을 땐 뭘 어떻게 확인해 보면 좋을까요?


무난한 것도 알겠고 디지털도 알겠으니 다시 묻고 싶었던 것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본문 폰트를 찾고 싶을 땐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오늘폰트

첫 단계는 글을 보고 본문용으로 좋겠다(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글자체를 모아보는 거였다. 예를 들어 중명조를 생각했으면 신명조나 신신명조도 가져오고, 조금 가늘어도 되면 세명조나 그와 비슷한 굵기의 명조체를 늘어놔 보는 거다. 그렇게 10개 정도가 모이면 똑같은 글을 출력해 보고 체크해야 한다. 까맣게 뭉치는 건 없는지, 글자 사이가 정상적으로 보이는지, 글자가 글줄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시선의 흐름을 흩트러뜨리진 않는지를.


©오늘폰트

물론 같은 폰트로 200쪽을 넘길 정도로 쓴다면, 더 깐깐하게 살펴서 눈에 잘 읽히는 것으로 써야한다. 안 그러면 읽는 사람이 피로해질 테니까.


“좀 더 가지런학고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야 장시간 독서했을 때 피로도가 낮은 건 사실이에요. 많은 본문용 폰트들이 그런 이유로 정제하고 정제하다보니 참 맹해졌어요.”




결국엔 선택인 것 같다. 호불호가 있어도 개성을 살린 폰트를 택할 건지, 맹맹해서 어떤 것이든 잘 올라가는 폰트를 택할 건지. 흠, 만약 폰트가 설렁탕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밍밍하다 싶으면 간에 맞게 소금도 치고, 깍두기 국물도 넣어서 먹으면 좋을텐데. 하긴 무난한 게 뭔지도 몰랐던 내가 할 말은 아니다.


교수님은 어쨌든 다양한 폰트를 시도하는 자세는 좋다고 했다. 시도는 결국 돈과 시간을 들여 사는 경험이니까. 뭘 하든 결국 경험이 남는 것 같다. 일단 SM 명조를 써보러 가겠다. 사실 내가 아는 그 모양일 거 같긴 한데, 이름을 아는 건 중요하니까. 나쁠 건 없겠지?


인터뷰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

정리 신민주 에디터

디자인 김민기 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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