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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Feb 18. 2022

폰트 글자, 수정해서 써도 되나요?

마음 놓고 폰트를 수정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좋은 폰트를 찾고 싶다고요? 텍스트를 더 잘 표현할 방법도요?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와 신민주 에디터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첫째주와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좋은 폰트 가이드입니다.


'약은 약사에게, 폰트는 폰트 디자이너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폰트를 그대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독립출판도 해보고 다른 이의 책 작업도 몇 번 맡아본 지금은 안다. 폰트를 수정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는 걸. 그게 언제인지, 어느정도로 수정해도 좋은지, 적법한 일인지 잘 모를 뿐.


이제 고민을 해결할 때가 왔다. 약은 약사에게, 폰트 질문은 폰트 디자인을 가르쳐 주는 교수님께 물어보는 걸로. 여기서 얻은 내 답은 폰트의 사용범위와 수정범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거다(나도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경우를 보질 못했다!). 레귤러 폰트 밖에 없는 폰트를 더 굵게, 또는 크게 쓰고 싶다든가. 표현을 살짝 고쳐서 사용하고 싶다든가 할 때도, 무엇을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폰트 디자이너는 무엇을 살피고 고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유료로 폰트 라이센스를 구매한 경우에 한한다. 무료 라이센스는 사용범위를 확인할 것.
✳︎✳︎ 라이센스에 장평, 자간, 기울기, 테두리, 굵기 변형 금지 등이 써 있는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아직 유료폰트를 쓰면서 이런 라이센스 제한을 본 적은 없지만).



획 굵기를 더 줘도 괜찮다고요?


이야기를 꺼내며 어두운 색을 바탕에 깐 표지에 밝은 색으로 책 제목을 올리던 경험담을 들려드렸다.


“-폰트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글자 획을 조금 더 주고 싶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더라고요.”


그때 난 레귤러 굵기만 지원되는 그 폰트를 꼭 쓰고 싶었다. 획을 주면 모양이 달라지는데 이때 저작권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폰트 저작권을 속시원히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0.1pt 정도 획의 굵기를 더해 줬다. 그러나 그때의 내 고민이 무색하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그건, 폰트 수정의 문제를 떠나서 종종하는 일이에요.”


옵셋 인쇄의 특성 때문이다. 잉크가 밀려서 퍼지는만큼, 어두운 색이 바깥에서 밀려 들어올 수 있다고. 물론 인쇄술이 좋아진만큼 예전같진 않지만, 미세하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예 글자 테두리에 색을 줘서 인쇄를 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알았으면 내가 범법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고민하면서 책을 만들진 않았을텐데.



무턱대고 스트로크를 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와 수습 방법


공정상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획을 살짝 더해줘도 된다는 소리다. 살짝은 괜찮다. 하지만 글자를 크게쓰겠다며 확 키워버린 뒤에, 빈 공간이 횡하다고 획 굵기를 막무가내로 더하면 글자 모양이 변해버려서 보기 좋지 않다. 활자디자이너들은 폰트를 만들 때 작게 쓰기 좋은 본문폰트를 만들지, 크게 쓰는 제목용 폰트를 만들지를 정해두고 글자를 디자인한다. *크기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공간의 모양이 달라서다. 글자 안의 공간들이 무너지고, 무게중심이 틀어진다. 균형이 깨지면, 그 전에 폰트가 가진 매력은 다 잃고 어색한 모습으로 남는다.


*이전에 올렸던 좋은폰트 가이드 글 중에 [왜 내가 쓴 폰트는 안 예쁠까] 에서 '2. 글자크기를 너무 키우거나 줄이지 않았나'를 참고하면 그 이유를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다.

https://brunch.co.kr/@writing-minju/84


세리프(부리형, 대표적으로 명조) 글자체는 획에 굵기를 더해줬을 때 변형되는 정도가 더 심하다. 부리가 있는 글자들, 대표적으로 명조체는 애초에 일정한 굵기의 글자 획을 가지지 않았다. 가는 부분은 가늘어야 하고, 두꺼운 부분은 두껍게 만들어서 획의 대비를 명확하게 주는 게 특징이다. 이 특징을 이루는 표현들이 획 두께를 추가하는 순간 뭉게지면서 뭉툭한 인상을 준다. 날카롭지 않고 어벙벙해지는 것이다.

©오늘폰트

반면 직선형에 가깝게 표현된 산세리프(민부리형 글자체들, 대표적으로 고딕)는 선에 두께를 줘도 면적이 늘어날 뿐 인상이 크게 변하진 않는다.


디지털 매체에서 글자를 쓴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두께를 더하지 않은 경우와 더한 경우를 비교해 보면 바로 보인다.

크기가 클 때는 어느정도 획이 두꺼워도 괜찮지만 크기가 줄어들면 답답함이 배가 된다  ©오늘폰트

컴퓨터 모니터와 모바일의 해상도가 다르고, 노출이 되는 미디어의 포맷에 따라서 글자의 크기가 줄었다가 늘었다가 할 때가 많아서다. 그때마다 두께를 더한 글자를 구성해 올리면...


“그럼 정말 난리가 나는 거예요.”
“저도 그 말 말고는 어떻게 표현 할 수 없겠어요.”


그럼 역시 글자 수정을  하는  제일 좋은 걸까? 교수님은 다른 글자를 쓰는  가장 좋지만, 그래도  글자로 해야겠다면 수정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지적한 문제들을 다시 보정해주면 된다고.


ㄱ. 글자 안의 간격이 뭉게질 때


©오늘폰트

예를 들어 시옷(ㅅ)이라는 글자는 두 개의 획이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다. 획과 획이 맞닿는 곳에서는 이 글자만의 공간감이 생긴다. 획이 다른 방향으로 떨어지면서 생기는 여백의 간격이 인상을 이루는 거다.


그런데 획을 균일하게 더하면 그 간격에 간섭이 시작된다. 같은 수치로 획이 더해져서 괜찮을 거 같지만 아니다. 기존 글자는 나름의 비율을 가지고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그곳에 일정 수치의 획을 덧입히면, 그 비율이 뭉게진다. ㅅ을 보면 맞붙은 곳이 더 답답하게 붙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럴 때는 살짝 파주기만 해도 글자가 좀 더 선명해 진다.


ㄴ. 글자의 균형이 무너질 때

글자에 두께를 줬을 때 답답함을 느끼기 딱 좋은 건 이응(ㅇ)이다. ㅇ 안의 속공간이 확 작아져서다. 그만큼 다른 글자들 보다 까맣고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면 그냥 안을 파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ㅅ의 막힌 곳을 뚫었던 것처럼요.”

“그것도 방법이지만,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오늘폰트

교수님은 예시를 들기 위해 ‘해’라는 글자를 썼다. ㅎ 안에 있는 ㅇ이 두꺼워지는 만큼, 그 위에 올라간 가로 획들(교수님께서는 이걸 덧줄기라고 불렀다)의 무게를 잡아주면 된다고. 특히, 가장 위의 획을.


“왜 이응 속에 차오른 공간을 빼서 속공간을 넓혀주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ㅎ의 옆에 있는 기둥(세로획)들도 같이 두꺼워졌으니까요. 반면 짧고 작은 덧줄기(ㅎ의 가장 윗 가로획)는 동일하게 획을 더 준 건데도 그 면적이 작아서 기둥만큼 두껍게 올라오지 않잖아요. 이럴 땐 일부러 무게를 올려서 힘을 맞춰주는 거예요.”


글자에서 ㅐ가 차지하는 비율이 결코 작지 않은데, 그곳에 힘이 많이 실린만큼 ㅎ의 짧은 가로 획에 더 힘을 실어 준 거다. 결국 빼는 방법과 더하는 방법을 다 알고, 전체적인 균형을 파악해서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ㄷ. 표현이 왜곡될 때

©오늘폰트

곡선을 많이 쓴 글자의 경우 세로 획의 뒤꿈치 부분들에서 그 인상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글자에 획을 주게 되면, 그 표현이 없어지거나 확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교수님은 ㅐ를 보정하면서 뒤꿈치의 뭉친 부분을 풀어주고 그 표현을 다시 살려주었다.



문제가 문제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수님이 말씀해 주시니까 ‘아, 저기가 저래서 문제였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걸 다 파악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런 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지금이라도 미대입시 준비해야 하나요?”

“...그럴리가.”


결론은 활자디자인 수업을 들어봐라(수업 광고 아님), 글자를 직접 그려봐라 였다. 수업이 여기저기 많고 교수님도 열고 있는데, 딱히 ‘활자 디자이너를 만들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글자의 형태를 감지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게 목적이라고 하셨다. 글자는 원래 이렇게 생겼고, 기울이거나 두껍게 하거나 가늘게 했을 때 생기는 형태의 왜곡을 짚어내고, 고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능력이 있다면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굉장한 강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그러니까, 글자 그리는 수업을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는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꼭 넣어드릴게요.”



자기 취향과 고집에 맞게 수정하고 싶다면,
그건 안 되는 일일까?


일부러 붙은 글자, 무게 중심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두는 글자를 쓰고 싶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가끔 충동이 든다). 고쳐보니, 누군가는 고치기 전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럴 때 ‘이게 내 취향이야. 이건 내 작품이야. 그냥 내 마음이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교수님은 취향에 대해선 존중하고 싶다고 하셨다. 단순히 일그러진 못생긴 형태를 쓰라 쓰지 말라고 하고 싶진 않다고. 하지만 기준이 없는 건 아니다. 의도를 가지고 추한 것을 추구한 건지, 아니면 추한지 모르고 쓴 건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좋은지 나쁜지 모르고 눈에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쓴다면, 존재감이 있는 디자이너가 되긴 어려울 거예요.”


사람들이 안 쓰는 형태를 일부러 잘 사용한 대표적인 예시가 있다. 궁서체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워 좀처럼 사용하지 않게 된 궁서체를, 일부러 그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방식으로 오히려 의도를 전할 수 있다면,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수정한 폰트를 쓰는 방법


“그럼 제가 만약 폰트를 수정해서 썼다면,”

“결제해서 사용 권한을 인정 받은 폰트를요.”

“네, 그 폰트를 수정하면 그걸로 어디까지 사용해도 되나요?”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수정된 폰트의 사용 범위. 일단 사용범위에 맞게 구매했다면(라이센스를 하나만 사서 여기저기 다 쓸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영상에 쓸 거면 영상용 라이센스, 책에 쓸 거면 출판용 라이센스를 따로 사야 할 때도 있음) 그걸 책에 써도 되고, 굿즈를 만들 때 써도 된다. 하지만 폰트로 만들어서 파일로 파는 것은 안 된다. 물론 **폰트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 되진 않는다고 한다. 그냥 업계에서 욕을 먹을 뿐이다.


**폰트 저작권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참고!

폰트 저작권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해온 과정 - 글자꼴 저작권

폰트 저작권을 인정받기 힘든 이유 - 글자꼴 신규성 판단 기준 


“예전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요즘엔 다 연결되어 있잖아요. 다 알아요. 알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하니 있는 폰트를 수정해 파는 것은 하지 말 것. 그리고 폰트를 수정해서 썼다면, 어떤 폰트를 썼는지 명시하는 걸 추천한다. 실제로 이름 있는 어떤 기업에서 폰트를 수정해 썼는데, 그걸 교수님 지인분이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교수님께 알려준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너네 폰트를 변형해서 팔고 있는 것 같다고. 알고보니 그 회사에서 폰트를 구매해 자체적으로 수정해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출처를 명기할 공간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기회가 있을 땐 밝혀주는 게 서로 속편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제를 다루면서는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평소에 궁금하던 사안이었던 만큼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다. 물론 모든 활자디자이너들이 다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글자체에 저작권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 약점이 있으니까 막 쓰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법이 지켜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창작자가 만든 폰트를 잘 사용하고, 폰트 시장에 더욱 다채로운 글자들이 나올 수 있게 사용자로서(동시에 그 폰트를 사용하는 창작자로서)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활자공간에 문의하거나 댓글로 남겨도 좋다. 아리송하고 애매할 땐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니까.


인터뷰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

정리 신민주 에디터

디자인 김민기 그래픽 디자이너


폰트를 커스터마이징하는 눈을 가지고 싶다면 좋은 폰트를 뜯고 고치고 써보는 게 도움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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