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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Mar 04. 2022

이 폰트 저 폰트 다 쓰고 싶다면,
섞어짜기를!

섞어짜기 를 위한 기초 지식 - 한글, 영문, 숫자를 섞는 방법

좋은 폰트를 찾고 싶다고요? 텍스트를 더 잘 표현할 방법도요?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와 신민주 에디터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첫째주와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좋은 폰트 가이드입니다.


내가 만든 책을 열었을 때 ‘아, 부끄럽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쪽번호의 모양과 크기가 어쩐지 본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문 속에 얹혀 있는 알파벳이 어딘가 툭 튀어나와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밖에서 펼쳐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나만의 감성이오!’라고 외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든 건 아니었다. 좋아 보이는 줄 알았는데 뽑아보니 아니었던 거지.


해서 오늘은 그렇게 날 절망에 빠뜨렸던, 섞어쓰기를 다루려고 한다. 한글, 알파벳, 숫자와 같은 문자들을 다양한 폰트로 섞어보고 어색함을 느껴본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양한 폰트를 섞어 쓰는 방법, 섞어짜기


©오늘폰트

“다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요. 한글이랑 알파벳이랑 숫자를 섞어쓰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섞어짜기요?”

“아뇨, 그냥 섞어 쓰는 거요.”

“그러니까 섞어짜기를 말하는 거 같은데?”


영어는 타임즈로만으로 한글은 SM신신명조로 하겠다고 정하는 그 행위의 정식 명칭은 ‘섞어짜기’였다(정보를 찾을 때는 알맞은 검색키워드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짠다’는 건 조판을 짤 때 폰트를 섞어 쓰기 때문에 붙었다. 조판용 용어를 썼지만 꼭 책이 아니라, 디지털 상의 화면을 구성할 때도 섞어짜기를 고려해야 한다. 그냥 넓은 범주에서는 다양한 폰트를 한 시야 안에 들어오게 쓴다면, 섞어짜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가장 잘 섞어짜는 방법, 안 섞어짜기


“그래서, 섞어짜기는 어떻게 해야 안 어색할까요? 교수님은 어떻게 하세요?”

“저는 안 섞어짭니다.”

“??”


©오늘폰트

예를 들어서 한글 옆에 영문을 병기할 일이 생긴다고 치자. 어차피 한글과 알파벳의 모양은 다르다. 같은 크기로 써도 높이와 너비가 다르고, 대문자와 소문자의 크기도 다르다.


알파벳은 한글과 기준선도 다르다. 예를 들어서 영어에는 ‘x’처럼 작고 귀여운 문자도 있지만 ‘g’나 ‘y’ 처럼 아래로 빠지는 글자도 있고, ‘h’ 처럼 위로 솟은 글자도 있다. 그래서 머리/가슴/배로 구분되는 곤충처럼 생각하면 편하지만, 한글은 그런 체계가 아니다. 둘을 섞을 때는 기준선을 어디에 둘 건지 생각해야 한다. 만약 “지지지 ggg”같이 위치를 맞추기 힘든(한글은 g에 비해 위에 있고, g는 한글에 비해 밑에 있고) 글자들을 함께 써야 한다면, 기준선을 조정해 둘을 맞출 건지, 맞춘다면 얼마나 맞출 건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어느 하나로 맞춰도 되겠지만, 교수님은 그럴 때마다 최대한 섞어짤일이 없게 만들자고 설득하는 디자이너라고 밝혔다. 애초에 다르게 생긴 애들을 붙여놔야만 하는 큰 이유가 없다면 붙이지 말자고.


 

One Font for All Character, 하나의 폰트만 쓰시오.


(위) 영문과 한글을 함께 쓴 글 (아래) 위에 있는 글을 덩어리로 묶어 시각화 ©오늘폰트

우린 폰트를 글자의 모양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좀 더 디테일하게 보면, 그 모양을 이루기 위한 글자 체계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거 같다. 어떤 폰트는 오밀조밀한 간격으로 글자를 표현할 수 있고, 어떤 건 그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간격으로 글자를 표현하기도 한다. 둘의 낱자가 비슷하게 생겼을 순 있어도, 그 간격이 달라지면 글 속의 고르게 흐르던 속도가 달라진다. 해서 교수님께선 한글 폰트는 마음에 드는데 숫자나 영문이 마음에 안 든다면, 바꾸지 말고 그냥 하나의 폰트를 쓰라고 권하셨다. 하나의 지면에서 글자가 여유롭게 진행되다가, 확 빨라지면서 흐름이 방해받는 것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폰트간의 조화를 결정하는 요소는 뭔가요?


주의사항은 알겠고, 나는 여전히 섞어짜보고 싶다. 결국엔 안 섞어짜기의 길을 가게 되더라도. 교수님은 두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분명한 대비가 느껴지게 섞거나, 아니면 하나의 폰트였던 것처럼 잘 어울리게 섞는다고. 그렇다면 결국 의도에 따라 어떤 조화를 이루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폰트간의 조화를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 크기, 위치, 모양으로 분류할 수 있다.


ㄱ. 크기


크기가 다른 사진들이 제각각의 위치에 주르륵 나열 되어 있으면 보는 사람은 불안해진다. 해서 사진의 크기를 고려해 아래, 위, 혹은 중앙 등 그에 맞는 기준선을 잡아 배치를 하게 된다. 글자도 똑같다.


(위) 절대적인 크기 (아래) 공간의 크기 ©오늘폰트

글자의 크기는 두가지 측면에서 고려하면 된다. 하나는 절대적인 글자체의 면적이다. 같은 크기로 영어와 한글을 늘어놓으면, 물리적으로는 영어가 한글보다 대체로 작다. 그래서 면적을 기준으로 맞출경우엔 영어를 한글에 맞춰 키워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공간의 크기다. 글자 안에 있는 속공간의 크기를 보자는 건데, 영어는 한글에 비해 속공간이 크다. 한글은 전각이라고 하는 가상의 네모틀에 음절을 모두 넣어 쓰는 글자인 반면, 영어는 글자를 알파벳 단위로 나열해서 쓰기 때문이다. 가령 공간이라는 한글을 영어처럼 쓴다면, ㄱㅗㅇㄱㅏㄴ 이렇게 되겠지. 반대로 SPACE를 한글처럼 쓰면 아래의 그림같이 된다.


©오늘폰트

물론 이 것은 예시다. 꼭 저렇게 되리란 법은 없다. 다만 알파벳을 한글 처럼 모아쓰면 공간이 작아질 수 밖에 없단 뜻이다. 때문에 영어와 한글을 병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물리적인 크기차이 때문에 영어가 한글보다 작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속공간을 보고 영어가 조금 더 시원하고 큼직하게 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교수님 그러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잖아요. 어떻게 하라는 거죠?”

“섞어짜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중요하죠. 둘 중 더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세요. 보이지 않는 것을 고칠 수는 없는 거니까. 두가지 측면이 다 보인다면, 둘을 고려해 보고 가장 안정감이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면 되고요.”  


자, 이제 여러분의 몫이다. 여러분은 어떤 면적 고려해 섞어짜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참고로 위의 이미지에 들어간 한글과 영어는 같은 포인트 값으로 나열한 것이다.


ㄴ. 위치


앞서 언급했듯 폰트를 섞을 땐 기준선이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당연히 영어와 한글의 조합에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일 거고, 두 개의 서로 다른 한글 폰트를 섞어 쓸 때도 생각해 보는 게 좋다. 명조를 쓰다가 고딕을 쓰는 일도 꽤 자주 생김 종종 보니까.


ㄷ. 모양


©오늘폰트

모양은 이를테면 굵기, 획대비, 세리프 유무 같이 그 글자체가 가지고 있는 표현에서 읽혀지는 인상을 생각하면 된다. 글자체의 모습이 저마다 다른만큼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각에 따라서 인지하는 양상도 달라질 테니, 이것은 각각의 센스에 맡기는 게 좋을 거 같다.



대비가 느껴지는 섞어짜기


‘다름!’이 느껴지는 섞어짜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크기, 위치, 모양의 측면에서 글자체를 선택하고 글자를 올리면 되겠다. 애초에 다르게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색도 다르게 주는 것도 좋겠지? 물론 인쇄사고를 의도한 게 아니면 작은 글자에 밝은 색을 올리는 걸 지양하길 바란다고 교수님이 꼭꼭 전해달라고 했다.



(좌) 단을 분리한 것 - 에릭 슈피커만,『타이포그래피 에세이』, 안그라픽스 (우) 글자 위로 표기하는 방법과 글자 옆에 표기하는 방법 - 문장현 외,『섞어짜기』, 활자공간

레이아웃으로 분리를 하는 것도 좋다. 아예 본문의 옆에 따로 칸을 뺀다거나, 단을 분리해서 두 폰트가 한 줄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거다. 혹은 어깨 위로 작게 올리거나, 루비처럼 글자 위에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섞어짜기


같은 모양이 아닌 이상 어떻게 섞은 줄 모르겠냐만은 그래도 자연스럽게, 위화감 없이 서로 어울리는 섞어짜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영문을 병기할 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글만 사용해서 화면을 구성하거나, 조판을 할 때 주로 이 생각을 하게 된다. 다다음주에 발행하는 글에서 이 부분을 좀 더 세심하게 다뤄보기로 하겠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니까.



숫자를 섞어 쓸 땐 어떻게 하면 될까?

©오늘폰트

두가지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나, 숫자의 서체 양식은 크게 두가지로 올드스타일과 모던스타일이 있다. 다만 올드스타일은 영문처럼 아래로 갔다가 위로갔다가 하기 때문에 한글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해서 한글과 함께 쓴다면 모던스타일로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둘, 숫자는 쪽번호가 아닌 다음에야 대체로 본문에 주로 쓰는 폰트를 그대로 쓰는 게 좋다. 특히 한글을 올릴 책이라면 굳이 영문 폰트의 숫자가 생김새가 예뻐보인다고 쓰지 않는 게 좋다.


“각 언어마다 ‘좋다’고 생각하는 미감이 달라요. 한글 책을 만들 땐 한글 폰트 디자이너가 만든 숫자를 쓰는 게 가장 잘 어울립니다.”


본문이 아닌 제목은?


로고나 광고용 문구에서 쓰는 한 단어 혹은 문장은 자유롭게 섞어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그것들은 괜찮은 걸까? 책에서도 제목, 소제목을 다르게 쓰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럴 때도 섞어짜기의 법칙들을 하나하나 다 적용한 걸까?


교수님의 대답은 ‘아니다’ 였다. 모양을 위주로 생각해도 좋다고. 기준선이나, 글자간의 흐름 같은 걸 고려할만큼의 길이가 아니니까. 길게 읽히기 위해 편안함을 고려하기 보다는 한 번 각인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결국 그 부분은 각자의 센스에 맡기는 거다. 결국 우린 좋은 걸 많이 보고 레퍼런스를 잘 찾는 수 밖에...


*섞어짜기에 대해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용제, 한글타이포그래피 읽기 중 서로 다른 문자의 조화  




섞어짜기의 심오한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섞어짜기 역시 내게 말 해 주는 것 같다.

“어렵지? 그냥 섞지 마. 그게 제일 예뻐. 마음도 편하고.” -라고.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진 안목 내에서 가장 예쁜 섞어짜기를 해 보고 싶다. 원래 고수는 다 겪고 나야 되는 거라고, 나는 쪼렙이니까 쪼렙답게 시행착오를 거치겠다며 섞어짜기에 머리를 부딪혀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사실, 들어온 일 중에 어차피 섞어짜야만 하는 게 있다. 어찌보면 숙명적인 정보 습득이었는데,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이 정보가 유의미하길 바라본다. 우린 할 수 있어! 고수가 아니니까! 우리 쪼렙 화이팅!


인터뷰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

정리 신민주 에디터

디자인 김민기 그래픽 디자이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안 섞어짜도 될 만큼 공들여 만든 폰트 찾아요?
여기있어요! ☞ 오늘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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