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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May 19. 2016

매년 5월이면 생각나는, <푸르른 날에>

연극] 생생함, 충격 그리고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전이 있는 극은 아닐지라도, 아예 정보 없이 간다면 공연장을 나설 때, 한발한발 발을 뗄 때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쿵.쿵.하고 심장박동이 울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더군요. 사전정보를 접하고 가더라도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뭔지도 모르고 갔을 때, 그 때 느낌이 굉장히 충격적이고 마음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포스터는 2014년도 공연 포스터. 초연배우들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했다.)


2013년 5월 혼자, 그리고 2014년 5월 동생과 함께.


5월이면 이 공연이 생각난다.


ㄱ. 한 친구의 추천, "이 작품은 꼭 봐, 알았지? 꼭 봐야해!"

공연/축제에 대해 처음에는 같은 방향의 꿈을 꾸던-점점 서로 꿈꾸는 방향이 조금씩 변화했지만- 내가 '공연을 만들기를 주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게 영감을 주고, 믿음을 주는 한 친구가 있다. 이 공연은 그 친구가 내게 "꼭 봐!"라고 힘주어 권했던 공연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 친구가 내게 이 공연을 권했던 이유는 당시(2013년)에 서로 안부를 전하다가 내가 '나 요즘 브레히트 서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어. 흥미로워.'라고 했더니, 본인이 아는 '브레히트 서사극 유형의 공연'을 추천해준 것이 바로 이 <푸르른 날에>였던 것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물으니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내용이라고 했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를 브레히트 서사극 스타일로 풀어낸 연극.

나는 딱 이만큼의 정보만 갖고, 공연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했다.



ㄴ. 처음 가본 공연장, 생소한 형식(브레히트 서사극 형식)의 공연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이 올라갔는데, 생전 처음 가보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정말 들떴다.

명동 가까이에 있는, 살짝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공연장은 외관으로 보기엔 공연장이 내가 가본 다른 공연장들에 비해 '매우 작아'보였다. '엄청 째꼬만~하네?'하는 생각을 하며 매표소에 줄을 섰는데, 줄 선 사람들, 표를 받고 공연장 내부로 향하는 사람들중 다수가 '나는 연영과요'하고 외치는 듯한 티셔츠(대학의 과 티셔츠)를 입고 선후배가 서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혼자 관람하러 갔던', 이 공연과의 첫 대면 날에는 일반 관객들보다 연극-공연에 관련된 관객들이 더 많이 객석을 점했다.


공연장 안에 들어서니 정말 좁은 로비가 있고, 양 옆으로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로비도 작으니 객석은 얼마나 작을까 했지만, 무대와 객석은 널찍했다. 그리고 프로시니엄(액자식) 무대가 아닌, 톡 튀어나온 무대. 반원형이 아닌, 사각형인데 톡 튀어나와 삼면이 객석과 접하고 있는 무대모습이었고, 들어서자마자 한 승려가 거듭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시에 공연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공연 속으로 들어간 느낌, 색달랐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시작 전의 그 모습 외에도 공연 내내 '이것은 공연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했다. 행동으로든지, 말로든지 (ex '이 연극을 도와줄 아이입니다'하는 말). 그리고, 어투도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어투였다. 처음 몇 분동안에는 문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교과서를 읽는 듯한 톤으로 연기를 하시는 배우들의 모습이 정말 어색하고 이상해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는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연극 속에 빠져들었다.



ㄷ.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장면들: 내게 & 동생에게.

이 공연은 거의 정보 없이 혼자 관람을 갔다가 벙~쪄서 돌아온 기억을 남겨준 공연이기도 하고, 내가 동생에게 보여준 공연들 중 단연 '가장 의미있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첫 관람 이후, 언젠가 동생과 함께 다시 관람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이 공연 대목 중에서 내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이 바로 '누나와 동생'에 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상세히 묘사를 해보자면, 이렇다.

'동생을 잃은 누나가, 죽은 동생의 환영 혹은 영혼이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울부짖으며 실신하는 장면.'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로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 공감하기 싫은 공감을 했다. 혼자 관람할 때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울먹울먹거렸고, 동생과 관람할 때도 울지 않으려 애썼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이상했다.

내 동생은 옆에 앉아 있지만, 마음이 아픈 느낌. 내 동생이 내 옆에 있는 걸 알지만 그래도 정말 슬픈 감정.

공연 관람 후, 언제라도 이 공연을 떠올리며 이 장면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엉엉 운 적도 있다.


한편, 공연장을 나서며 동생에게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냐?"고 물으니, 동생은 "다같이 어떤 시를 읽으며 점점 분노하던 장면"이라고 했다. 그 대목은 시청에 들어가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민들이 다같이 '학살 2' 글을 읽으며 점점 분노를 올려가는 대목이었는데, 이렇게 글로 묘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고 있다. 마침, 검색을 해보니 이 장면은 영상 클립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첨부해본다.

직접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분노가 차오르는 느낌, '아 이건 정말 잘못 된 일이다!'하는 생각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그 경험을 조금이나마 공유해볼 수 있기를 바라며.

https://youtu.be/QnB68CxOxQg

내게도 이 부분 역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무리 학교에서 열심히 관련 학습을 하고,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들을 읽는대도 이 느낌을 받진 못할 것 같아'하는 떨림을 느꼈다.



ㄹ. 같은 소재, 다른 느낌.

같은 소재를 다룬 다양한 콘텐츠들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접할 수 있다. 내가 접해본 만화'26년'과 영화'화려한 휴가'에서도 이 연극과 같이 '사건과 연관된 개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이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사실, 이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는 '26년'과 '화려한 휴가'에서보다 굉~장히 짧게 5.18민주화운동 내용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왜 내게 '5.18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콘텐츠'로 남아있는 걸까?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그건 '콘텐츠를 표현한 방식/틀의 특성 덕'인 듯 하다. 지면 혹은 인터넷 화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접하는 것보다 현장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공연의 특성'덕분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창작 판소리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 역시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짧게 그 내용을 등장시키지만, 같은 틀(공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1인 극의 한계(제한된 시간 안에 한 사람이 한 인물을 연기 하면서 모든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는 한계. 전통판소리에서는 1인 다역이지만, 이 공연에서는 거의 1인 1역인 셈이었다. 배달을 하는 주인공 역할.  그 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이자 극 초반부터 너무 '희극적 요소'를 주로 삼다가 말미에 갑자기 비극적으로 접어들어 어색했던 것도 그 원인같다.



ㅁ. 비극적 역사 소재를 상업콘텐츠로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포화 속으로'라는 영화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몇몇은 그 영화 속 학도병들에 몰입하며, 어떤 친구들은 영화 속 스타의 모습에 매료되며, 각각의 방식으로 관람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영화 관람은 안 하고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당시 스크린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영화 줄거리며 등장인물도 하나도 기억에 없었다. 이후에 따로 관람한 뒤에 영화 전반에 관해 알 수 있었다.)

"과연 이런 아픈 역사로 영화를/공연을/책을 만들어다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픈 역사는 역사 자체로만 기억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야기를 퍼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퍼뜨려서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영화든, 공연이든 아니면 책이나 사진 등 어떤 컨텐츠로 다루던지, 그렇게 컨텐츠로 만들어내는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히 '사욕 추구'가 아닌, '이 이야기를 기억되게 하기'라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고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궁극적 목적이 무엇을/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그게 중요하다.


+'돈을 번다'는 것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의식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분석해보려고도 노력한다.

'과연 이 사업/비즈니스는 어떤 목적을 궁극적으로 갖고 있는걸까? 단순히 사욕추구(사익과 사욕은 다릅니다. 사익: 사적인 이익. 사욕: 사적인 욕심. 사욕은 부정적인 말이지요.)인가, 다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함인가?'


*

'남의 아픔은 남의 아픔이지, 내가 아픈 게 아닌데 왜 내가 공감하면서 이렇게 아픈 거지?'하면서 힘들어하던 적이 있었다.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올 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이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가 있는거지? / 세상은 이렇게나 비합리적이었던거야?' 하면서.

막 대학에 입학한 뒤, 대자보도 처음 읽어보고 여러 사건소식들을 고등학생 때보다 더 날것으로 접하던 때(고등학생 때, 뉴스나 신문 중에서 유독 입시 내용만 골라 머릿속에 넣는 기이한 능력이 있었다.)에는 내가 무슨 병에 걸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게 인간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믿는다.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아픔이 담긴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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