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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Jul 24. 2020

피아니스트의 전설_1900과 달리, 나는 해낸 것

겁쟁이가 모험가가 된 비결

커버 이미지: Анна Рыжкова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최악의 취업난, 불운한 세대


요즘 언론에서 내 또래를 이렇게 부른다.

연일 취업문이 더 좁아진다, 경쟁률이 더 높아진다 등 불안한 정보가 오간다.

어릴 적에는 가장 열정적일 것으로 상상했던 2030대 사람들이 가장 염려많고 위축되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보와 소식에 압도되어 내 삶이 매몰되게 두지는 않는다.

공연을 내 업으로 삼으려 하던, 내가 훗날 공연 전문가가 될 줄 알았던 시기의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들어준다.

수십수백 대 1이라는 비율을 너무도 자주 보고 듣던 그때가 있었기 때문에 근래의 취업난은 내겐 연속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괴물 같은 경쟁률을 마주했던 옛 경험이, 그 웃픈 익숙함이 이렇게 현재 버팀목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내 나름의 지지대를 활용하며 매일 노력을 이어가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사실 나는 엄청난 겁쟁이였다.



겁쟁이의 마음은 겁쟁이가 알지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명화 5편을 보고 각각 5줄 이상 감상문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포레스트 검프 등 명작들 가운데 당시 내가 가장 공감했던 작품은 바로  <피아니스트의 전설>이었다.


그 영화에는 갓난아기 시절에 호화로운 여객선에 버려지고, 배의 잡역부가 거둬서 성인이 될 때까지 배에서 자란 한 남자가 나온다. 그 남자의 이름은 줄여서 1900.

1900은 여객선의 피아노 연주자로 일한다.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연주 실력이 아주 일품이다. 게다가 무섭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집채만 한 파도에 흔들리는 배에서도 휘청거리는 기색 없이 걸을 수 있고, 피아노를 타고 파도와 춤을 추는 놀이도 즐길 줄 안다.

이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배 안의 상황에서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지만, 그는 배 밖으로, 육지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학교 생활 외엔 별다른 경험도, 지식도 없던 겁쟁이 여중생은, 영화 속 1900에게 깊이 공감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막막함. 그 두려움을 넘어서기 어려운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본 후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1900과 닮은 나도 저렇게 침잠하게 될까 하며 우울했다.




망설임을 버리겠습니다.


그렇게 겁쟁이의 마음을 잘 알던 겁쟁이가 어떻게 강인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대학 새내기 MT 때, '망설임'을 종이에 써서 태워버리던 것으로 시작되었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 한 메신저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이셨던 분께서 당신께서 가르치시던 학생들에게 지정해둔 닉네임이 맨날 뛰는 누구, 단발이 어울리는 누구 등 저마다 개성 있었는데 나는 수식 없는 단 한 단어였다.

모범생.


그 단어로 받은 충격이 정말 컸다.

게다가, 돌아보니 학교 생활 중 후회되는 일들만 떠올랐다.

축제날, 자습한다고 집 일찍 가지 말고 밤까지 동아리 공연에도 어울려볼걸.

떨리더라도 장기자랑에 빼지 말고 제일 좋아하던 락 노래를 시원하게 불러볼걸.

그랬으면 친구들과 더 어울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내게 학창 시절의 추억거리가 더 풍성하게 남았을까?


그래서, 대학 입학 후에 처음 갔던 MT에서 종이에 극복하고 싶은 것을 써서 태워버리던 때, 나는 망설임을 썼다. 그리고 태워버렸다.




발레를 하면 늘긴 늘어요,

근데 힘든 건 똑같아요.


망설임을 버린 후, 중고등학생 내내 가장 하고 싶었던 공연 활동에 줄줄이 지원해서 참여했다.

기획을 할 때도 있었고, 관객 안내를 할 때도 있었고, 배우가 된 적도 있다.


배우는 자기 몸을 잘 가눌 줄 알아야 한다며,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발레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발레를 배우던 중,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 했다던 친구가 나처럼 "으으으"하며 다리를 찢고 있는 게 이상했다.

배운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면 모를까, 너는 어릴 때부터 했다면서. 그래도 아파?

물었더니 친구가 대답했다.

"안 아픈 게 아니라, 아픈 게 익숙해지는 거야."

아프더라도 하다 보면 늘고, 강도를 높여보면 더 아프지만 더 늘고. 그렇게 익숙해진다고 했다.




도전을 에너지로 쓰는 모험가


두렵더라도 육지를 밟아 세상으로 나갔더라면, 1900은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공부 외의 관심, 록 음악이나 뮤지컬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표출하고 다녔더라면 나는 그냥 '모범생'이 아니라 '좀 이상한 모범생'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들과 더 친밀해졌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추억거리가 생겼을 것이다.


1900과 과거의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대학생부터의 나, 지금의 나는 다르다.

겁쟁이 중학생은 도전을 에너지로 쓸 줄 아는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

도전을 경험으로, 경험을 익숙함으로, 익숙함을 에너지이자 기회로 사용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는 가운데,

'최악의 취업난'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도 나름의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도전에 임하다 보면, 어느덧 현재 상황의 돌파구를 찾아내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전들이 또 내 힘과 기회로 다가올 것을 기대한다.


나처럼, 돌파구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아,

좋아하는 글귀를 보낸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돛 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by Mark Tw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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