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1, 사랑에 관한 글을 쓰라고 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를 언급하며 '이건 잘못된 사랑의 예'라고 글을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눈이 머는 듯이 빠지는 사랑은 사실 진실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많이 변하진 않았다. 눈이 멀 듯 사랑을 하면 그 사람/상황 외의 다른 것에는 신경 안 쓰게 되고 이런 행동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이 둘처럼.로미오 앤줄리엣 컴플렉스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사랑에 관해 오랜 시간 언급되고 전해오는 이야기이지만, 난 아직도 이 이야기 속 두 남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공연을 관람할 당시에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담, 왜 갔냐구? 다른 것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ㄴ. 눈독들인 것: 적vs청색 옷 입은 청년들의 대결구도.
나는 사진 한 장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사진 속 모습을 실제로 보고싶다는 마음이 가장 강했던, 그래서 관람을 결정하게 된 공연이다.
가장 보고싶던 장면이 오프닝 부분이었다. 휙하고 10~15초만에 지나갔던 것 같다. 상상보다 멋지고 소름끼치도록 강인해보이는 두 집안 청년들 모습에 그 10여 초의 장면 분량이 더 길었다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와 동시에 '내 눈과 머리가 자체적으로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겨두고 두고두고 힘 안 날 때, 힘내고 싶을 때 보고싶다'는 생각도 했다.ㅋㅋㅋ
ㄷ. 흉흉하던 당시, AI(인공지능 말고ㅋㅋ)
당시는 AI.조류인플루엔자가 굉장히 불안감을 조성했던 때였다. 하지만, 아무때나 공연관람을 하지는 못하니까, 취소하기는 싫어서 꿋꿋이 보러갔다. 가보니 공연장 2층은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해서 배우들이 안쓰러웠다. 아, 관람객이 너무 적었던 걸까? 프로그램북과 cd세트를 구매했더니 와인 두 병을 선물로 줬던 기억이 난다. 와인 명칭이 로미오 그리고 줄리아 였는데, 생산지가 베로나였다. 그래서 신기했다. 두 인물을 좋아하진 않아도 '이렇게 별 상관 없어보이는 상품에도 쓰이는군'하며 호기심이 생겨 무슨 맛이려나?내가 성인 될 때까지 묵혀둬도 되나?하고 기대했는데, 그 해 성탄절 당일, 부모님께서 이웃과 한잔씩 돌리시더니 동이 났다.ㅜㅜ 나도 궁금했건만 그 맛 ㅜㅜㅜㅜ
ㄹ. 어린 관객의 뒤끝.
공연 당시 2층에 사람이 정말 적었다 그래서 커튼콜 때, 주연 중에선 딱 한 배우만(당시 레이디캐퓰릿 역의 여배우)2층을 향해 손인사를 격하게 해주었고, 다른 배우들은 그냥 1층에만 인사를 건네기 바빴고, 그런 모습을 본 어린 관객은 매우 삐졌다(☜내 얘기). 그 꽁~함은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에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이 와서 보고 호응한 댓가가 이거라니!!'하고 꽤나 분노했던 터라, 그 때 무대에 섰던 배우들중 레이디캐퓰릿 역의 배우 빼고 전부! 굉장히 마음이 안 간다ㅋㅋㅋㅋ
(사인회 선착순 인원보다 줄 선 사람들이 한참 모자라서 스태프들이 발로 뛰며 그냥 가려던 관객을 잡아세워 행사소개하고 대기 줄로 이끌었던 광경이 기억난다. 당시,옆 공연장에는 이승기 콘서트가 준비중이었는데, 마침 사인회 시각에 입장 줄을 서고 있었고, 로비를 나서 보이는 '어마무시한 대기행렬'을 보고 놀랐다.
뮤지컬과 가수 콘서트의 관객 수요 규모의 차이를 그때 처음 느꼈다.)
ㅁ. 상상해본 이어지는 이야기, '벤볼리오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공연 말미, 벤볼리오가 눈에 밟혔다.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잃은 채 레이디 몬테규를 부축하며 지하무덤으로 들어서는 모습. 뮤지컬 속 모습대로라면 그가 몬테규가를 이끄는 가주가 되지 않았을까?하고 공연장을 나서며 상상했다. 원작에서는 잠깐 나오는 인물이지만 뮤지컬 속 인물의 모습대로라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 차분하고 현명하고 여전히 평화를 추구하는 가주(벤은 공연 내내 캐퓰릿과의 싸움을 말리는 역할을 주로 하는 듯 보였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끝까지 남아 그 모든 이야기를 간직한, 외롭지만 강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