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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Jun 18. 2021

Jobs 건축가: 빛과 선으로 삶을 그리는 사람

"설계자"로서의 건축가에 집중한 인터뷰집

2021.05.29-06.18금


독서 목적

건축과 개발이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하며, 예전에 에디터 직무에 지원서를 내고 있을 즈음에 읽었던 잡스 에디터에 시리즈가 있단 게 기억났다. 그래서 이 책을 골라 읽었다.


프로그래머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어서 개발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서, 영화 <인셉션>이 많이 생각났다. 영화 속 아리아드네라는 건축학 학생은 한 번의 꿈속 세계를 체험해본 뒤, 안 한다며 뛰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상상한 대로 즉시 눈앞에 나타나는 경험이 강렬하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개발 공부를 하며 느끼는 프로그래밍 영역도 그렇다. 전문가가 되어 '주어지는 역할/일'을 하다 보면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작업을 하게 되겠지만, 개인 프로젝트를 한다면 지금, 학습 중에 느끼는 프로그래밍의 매력을 그대로 느끼며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셉션 속 아리아드네가 느꼈을 감정을 비슷하게 느낀다. 공연이든, 물리적인 어떤 작품들(그림, 영상, 사진, 심지어 음악도)도 생각한다고 그대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 같다. 안무도 그렇고.

그런데, 개발은 그렇지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문법 익히고, 조립할 API 활용법을 익히면, 이리저리 조합해서 자기가 그리던 사이트나 앱을 만들 수 있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잠시 개발 공부에 매력을 못 느끼기도 했는데, 조립식 작업이 기본적이라는 것을 알고 나선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여태 봤던 영화 출연 인물 중에서 개발자 관련하여, 공감을 느끼는 인물들→ 인셉션 속 아서와 아리아드네, 어벤져스 속 토니와 그의 딸.


서평

종이로 된, 정기간행물이 아닌 책이지만, 잡지 같은 구성이다.

주 내용은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인물별 챕터 구분이 단색의 배경과 텍스트로만 디자인되어 있는데 단순하지만 멋스럽다.

책 내용 중에는 인물 스케치 말고는 별다른 일러스트가 없지만, 적절한 글자 간격과 진짜 대화하는 듯한 문체 때문에 읽기 힘들지 않다.


그리고, 재질이 가벼운 편이다!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아서 여기저기 오가며 조금씩 읽을 수 있었다.

페이퍼백이 아니어도 가벼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참고로, 이 책에서 다루는 건축가란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한정지어둔 듯하다. 설계자로서의 인사이트에 집중해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해당 내용을 전달해준다.

*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건축가란 설계부터 시공까지를 진행하는 건축 전문가이다.
이는 아버지의 작업을 보고 자란 영향이다.
아버지께서는 설계부터 시공(현장 작업)까지 다 하신다. 설계 현장도, 실측도, 시공 현장도 따라가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매 공간/작업마다 에너지가 다른 점이 멋졌다.

독후감

1. 내가 알기로 세상에서 제일 멋진 건축가를 떠올리며 읽음 (===아버지)

나는 어릴 적부터 어깨너머로 아버지의 일을 보고, 묻곤 했다.
건축을 가업으로 잇고 싶던 때도 있었는데, 극구 반대하시는 그 뜻만큼은 잘 따랐다. (정확하게 이 뜻만! 잘 따랐다. 내 인생에서 이 외의 결정들은 대체로 부모님이며 선생님 말씀을 잘 안 따랐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범생이'로 낙인찍혀 있을까? 인생 최대 미스터리이다)


그런데, 지금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 중인 '개발'에서 익숙한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건축가 아버지를 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처음 듣는 이론, 사고방식, 개념에 어려움보다는 익숙함을 느끼며 흡수할 수 있다. 과거, 아버지께서는 작업 현장을 보며 이것저것 질문하는 딸에게 하나하나 대꾸해주셨고, 지금도 나들이 가서 함께 건축양식을 분석해보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신다.

전문가 계에서 내 0 티어 모델 양대산맥이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또 다른 전문가 모델은 어머니.


참고로, 전에는 여쭈어야 답해주시곤 하셨는데, 요즘은 먼저 설명해주신다. 아빠께서 관심을 갖는 시스템이나 공간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얘도 관심 있겠거니, 날 닮았으니까"하고 먼저 설명해주시는데, 대체로 맞다. 취향이 비슷하다.       그 덕에 건축현장의 여러 용어가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맘에 드는 인테리어나 오호라 싶은 양식은 찍어다가 폰에 스크랩해두는 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건축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 구체적 용어는 자주 까먹는데, 상세하게 쓰임과 배웠던 장소를 묘사하면 거듭 설명해주신다..... 아빠... 근데 또 기억이 안 나요...ㅜㅜ 예시를 못 쓰겠어요ㅋㅋㅋㅋㅋㅋ ㅜㅜ  


2.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 일화를 떠올리며 읽음 (===가우디)

대학 재학 중, 시험 후 내게 주는 선물로 가우디전에 갔고, 매 모형마다 멈춰서 수분에서 수십 분을 메모하며 깊이 감상했다. 당시 손으로 울고 웃고 감탄하며 기록했던 메모는 지금도 못 버리고 있다.

특히, 가장 오랫동안 감탄하며 머물렀던 작품은 바로 쇠로 만든 아름다운 울타리 두 점이었다. 두 개의 울타리 패턴 앞에서는 글씨가 날아가든 말든 그 순간의 주접과 감탄을 그대로 감상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외국처럼 바닥에 철퍽 앉아 감상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아주아주 오랜 시간 동안 메모하며 감상했다. 지나가던 다른 관람객들이 이 울타리가 뭐기에...? 하고 같이 멈춰서 있다가 떠나기를 몇 번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쯤 사색하고 글 쓰고 기록하고 생각했다. 울타리 앞에서만 한 시간!


가우디는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배운 바를 너무도 잘 접목해서 천재 소리를 듣는 건축가다.

그의 집안은 금속을 다루는 기술자 집안이었고, 가우디는 그런 어른들께 배워, 단단한 금속을 구부리고 모양을 내 아름다운 패턴의 울타리도 만들 줄 알았다. 그리고 금속을 다루며 만들던 곡선은 훗날 그의 건축에서 보이는 곡선들로 옮겨갔다.

재료와 규모가 바뀌었을 뿐이다.


수해가 났을 때, 집수리를 할 때 아버지 옆에서 도와드리며 시멘트를 섞고, 바르고, 도배하고, 전기 배선을 관찰했다. 보일러 선 까는 것도 보고. 각종 연장도 활용해봤다. 아, 나무 자재로 벽 틀도 세워봤네.


솔직히, 최근에는 "내 인생/커리어는 어디로 흘러가는가"하며 답답함에 압도될 때가 많다. 열심히 살아왔고, 하고 있긴 한데, 불안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걱정보다는 어떻게 사용될지 기대가 된다.

내가 처한 환경을 통해 익힌 사고방식, 경험을 경영학적 사고와 공연 경험과 더해 개발 분야에 쓴다면? 어떻게 쓸까? 무엇을 할까?

3. 학자 같은 건축가 vs 현장의 전문가로서 건축가

대학에서 건축학과 교수님들의 특강을 들을 때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 <건축학개론> 볼 때도 공통적으로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다.

되게 느긋해 보이네... 저건 내가 생각하던 전문가가 아닌데?

내가 봐온 건축가로서의 아버지는 항상 치열하셨다.

단가, 시간을 쳐내기 위해서. 돈 떼먹으려는 악덕 손놈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 책은 건축가 인터뷰를 굉장히 느긋한 템포로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독자로서는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색하다. '건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기대하는 현장감은 안 느껴진다.


47p. (예술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예술가 아그네스 마틴 사례)
이 모든 게 예술에 매진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런데 위대해지기 위해서 꼭 그래야 할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몰두해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남편이나 아내가 있으면서도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이 꼭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닐 테니까요.
제게는 항상 '사람'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대학 입시, 공연 전문가, 공공기관 취업에 도전할 때는 몰두하는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에 의문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 읽으며 "어 내얘기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ㅋㅋㅋㅋ

* 모조리 끊어내고 공부에만 몰입하는 게 더 독이 되는 것을 모르고 매진했다. 그런데 그렇게 매진한다고 해서 뭔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하나에만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일전에 김선영 배우님께서 왜 "(한 가지/일에)미치지 말라"고 조언하셨는지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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