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는 시간을 받아들일 것

극한의 시간 절약 쟁이에겐 용기와 설계와 노력이 필요한 미션!

by Sayer

나는 시간을 극한으로 절약하는 것에 익숙하다.

학원, 고가의 인강, 과외 없이 소위 SKY라인 대학에 입학했다. 그 좋아하던 뮤지컬 곡들을 mp3에서 다 빼버리고 영어 듣기를 스트리밍 듣듯이 들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쉬는 시간은 중식, 석식 이후 교정을 한 바퀴 도는 그 시간뿐이었다. 이동수업 때도 빨리 이동해서 단어장 더 보고, 빨리 옷 갈아입고 수리 하나 더 풀고, 숙제도 빨리 끝낸 다음 문학 지문을 읽고. 그런 식이었다. 치열하게 시간을 쪼개고 활용하는 것으로 덕을 봤다고 생각했고, 그런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지금껏 이런 습관을 유지하게 된 계기였다.


공연 활동을 할 때는 '15분 단위로 스케줄을 쪼개 업무를 보는' 기획자 및 전문가들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취준 시기에도 자투리의 자투리까지 끌어모아 활용하려 노력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취뽀가 끝난 지금, 이런 습관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원흉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자투리 시간을, 멍 때리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시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음악을 듣기로 했다.

나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멍을 때리거나 가사에 집중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다.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의 흐름과 가사에 담긴 이야기 그 둘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분위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퇴근 중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게'만들기 위해서 행동 설계를 조금 해두었다. 2주 넘게 실행 중이다. 일부러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고(마침 할인 중이었다), 음악을 고른다. 이때, 고르는 시간을 길게 잡지 않는다. 보통은 원하는 음악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 이동 중에 멍 때리며 차창 너머 풍경을 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자책이나 신문 등 뭐라도 읽으려 하고, 뭐라도 '할 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 생각이 행동으로 전환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플레이리스트를 장착해야 한다. 그래서 스트리밍 서비스 1면에서 제시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애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도무지 내 취향인 노래를 추천해주지 않는다. AI도 내 취향 찾기가 어려운가 보다. '그래, 나도 내 취향 곡을 모르겠는데 네가 어찌 알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가장 먼저 눈에 띈 플레이리스트를 장착하고, 멍 때리는 시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한 가지 발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방법 한 가지를 발견했다!

최근부터, 출/퇴근 중에 한 정거장 정도 더 가거나 덜 가서 내리고 있다(물론, 늦잠으로 시작하는 하루라면 이렇게 못 하기도 한다). 그리곤 목적지까지 별생각 없이 걷는 습관을 새기고 있다.

출근길에 활기 있게 일터로 향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퇴근길에 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순례길을 수십 킬로미터씩 걸은 것도 아닌데, 일을 하고 돌아오는 피곤한 상태에서 좀 걷다 보니 저절로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되곤 한다! 머나먼 여행지에서만 무념무상 걷기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무념무상, 무아지경의 표본! ㅋㅋㅋ 영화<Soul(소울)>에서 Moonwind(광고판 돌리는 캐릭터 이름)


조금씩 변해갈 거라는 희망찬 기대를 안고 있다.

읽을거리를 이벤트, 독서 학습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잔뜩 받아놓았으면서 독서 행사나 신간도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읽을거리가 이렇게나 많은 걸. 신청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라는 생각과 '아니, 이 책은 출근길에 읽고 이 책은 퇴근길에 읽으면 되잖아. 충분히 가능한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할 때가 아직은 많다.

그래도, 이제는 의식적으로 전자의 생각에 힘을 더 얹어주려 노력한다.

"맞아. 내겐 멍 때리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해."

이렇게 조금씩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진짜 진짜 여유와 쉼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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