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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Oct 21. 2022

벙개 덕에 발견한, 내 사진의 쓸모!

여태 찍어둔 공간, 풍경, 기타 등등 사진들을 즐겁게 꺼내보고 있다.

나 말고 모든 것을 찍는 게 취미입니다만...

학창 시절에는 단점이었다.

대학 입시 '현역'이던 시절에, 입학사정관 제도 도입기였다. 내신과 수능, 면접이나 논술 못지않게 서류도 중요했다. 학사기록, 자기소개서뿐 아니라 내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줄 자료도 제출해야 했다.


자료로는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활동을 했으며, 무엇을 배웠다는 구성으로 쓴 글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필요했다.

가장 간단한 것은 사진자료였다. 그런데, 내겐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내가 이런 곳에 가서 이런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남겨야 했는데, 나는 '찍히는'쪽이 아니라 '찍는'쪽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발표 대회에 나가서는 '와 쟤 멋있게 잘한다'라고 생각하며 그 친구를 찍고, '와 저 전시물 신기하다'라고 생각하며 전시물을 찍고, '이 건물 구조가 독특하다'하며 건물을 찍고, 노을이 예쁘다며 풍경도 찍었지만, 나를 찍을 생각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활동에 참여했지만, 많은 경우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너를 찍어야지, 바보야. 네가 그 활동을 했다는 걸 증거로 남겨야 하는 거라고."라는 조언을 들은 후에는 여기저기 부탁해서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음'인증하는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들어는 봤나? UCC

UCC가 흥하던 시절, 나는 싸이월드에서 한 UCC 스타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길 즐겼다. 지금은 유튜브 콘텐츠 그룹 '티키틱'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세진 크리에이터의 콘텐츠였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시리즈는 립싱크 콘텐츠였다. 하지만, 그 외에도 대학교 기숙사 생활, 인간의 이중성 등 여러 주제로 콘텐츠 시리즈를 만들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내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이 겁은 나지만, 나 자신이 찍는 사람이자 찍히는 사람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지금은 브이로그, asmr 콘텐츠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를 찍어서 공유하는 용기는 못 내고 있다.

주로 내가 아닌 것을 찍는 편이고, 찍는 것에 비해 공유하는 것은 적다.



친구들과의 벙개 덕에 내 사진의 쓸모를 발견하다!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분기 별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이번에도 만나보니 3분기 마무리 모임이 되었다. 당일 오전에 모이자! 하고 제안을 받았고, 당일 오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 벙개 모임이었다.

날이 좋아 걷기 좋은 길을 산책해볼까 했지만, 찬 바람이 너무 불어 포기했던 날이기도 했다. 모여든 카페에 드는 볕이 좋아서, 겉모습과 창문이 마치 한옥 같은데 그 틈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이 예뻐서 멈췄다 이야기하기를 반복했더니 노을이 졌다.

어디로 이동할까 결정을 하고, 카페를 나서는 길에 친구들도 나도 저마다 이 장소를 사진으로 남겼다.


평소에 SNS에 내가 다녀온 곳을 업로드하면 자발적으로 내 GPS를 찍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뭘 하고, 내가 어딜 갔다는 것을 굳이 남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그래서 SNS에 휴일에 했던 활동이나 갔던 곳을 찍어 올리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벙개는 귀갓길이 길어서 그랬나? 심심하기도 하니 한 번 올려보자 하고 업로드했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쓰기엔 짧다 싶은 후기와 함께 말이다. 업로드한 곳은 사진이 주가 되는 인스타그램이었다.


나를 아는 친구들이 댓글과 좋아요로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도 댓글을 달아왔다. "예쁘게 찍어주신 사진을 ㅇㅇ콘텐츠에 활용하고 싶습니다."출처를 남기고 내 사진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간 쓸모를 찾지 못했던 '나 아닌 것을 찍는 습관'이 빛을 발한 것 같아 기뻤다. 흔쾌히 Yes! 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괜히 들춰봤다. 이젠 업무용 사진도 있고, 나를 찍은 영상과 사진도 있다.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버릇은 어디 멀리 못 갔다. 풍경과 나 아닌 사람과 사물 그리고 풍경을 찍은 사진이 더 많았다.


내 계정을 출처로 남기고 내 사진을 사용하고 싶다는 즐거운 상황을 맞닥뜨린 후라서, '이런 사진들을 활용할 방법이 있겠다'며 조금 조사해봤다.

여행 콘텐츠를 주로 업로드하는 계정에서도 오늘 찍은 것이 아닌 사진 콘텐츠도 공유한다. 1년 전이나 2년 전의 아름다운 장소를 "ㅇㅇ년 ㅁㅁ월"이라고 밝히며 사진을 공개한다.


그동안 찍었으나 혼자만 보고, 담아두었던 나들이며 여행 사진을 찾아보고 있다. 여기저기 다녀왔던 곳의 사진을 발굴해서 업로드하려 한다.

하다 보면 또 재밌는 일, 내가 으레 하던 일의 즐거운 쓸모를 마주하게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Andrea Zaneng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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