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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Nov 23. 2022

비우기 위해 씁니다

글쓰기 모임 막바지 셀프 피드백, 내가 얻은 것에 대한 고찰

글쓰기 모임 라라크루 2기가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이 모임에 참여할 당시 내 바람은 꾸준히 즐겁게 쓸 내 주요 글감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아직 그런 주요 글감이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얻은 것이 있다.

바로 '내 머릿속 폭풍을 잠잠하게 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무대 게임>이라는 연극을 관람했다.

이 연극에는 두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배우, 한 명은 작가다.

공연할 작품을 연습하려는데 기싸움을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극 속에서 배우가 "너는 네가 살기 위해 글을 쓰는 거잖아"라며 작가를 공격하고,

작가의 대사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배설해야만
살 수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쓴다


당시엔 두 인물의 기싸움에만 흥미를 느끼며 관람했는데, 연극 내용 중 이 장면이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시간이 갈수록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비우기 위해 글을 쓴다.

내 머릿속에는 항상 소용돌이가 있는 것만 같다.

여러 생각이 휘몰아친다.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비워줘야 한다. 비우면 된다, 비워줘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깨닫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은 더 최근의 일이다. 숲 산책을 가 청설모를 만난 즈음일 것이다.


머릿속 생각의 소용돌이에는 어제 먹었던 카레집 카레 맛있었다, 길 건너 김밥집 없어지고 메밀국수 집 생겼던데 나중에 엄마랑 가봐야지와 같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생각들도 있다.

이 시기에 이곳에 다이소가 크게 입점한 것은 굉장히 합리적인 전략이군, 이 자전거 어플은 이제 최소 가격 전략을 마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보군 등 남의 사업운영에 대한 흥미도 끼어 있다.

그리고 내 업무에 대한 셀프 피드백과 다음 주에 해야 할 업무, 사람들과 대화하며 들은 조언이나 여러 콘텐츠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다 깨달은 점 그리고 멍 때리다 갑자기 떠오른 영감 등도 있다.


머릿속 정리 시도 1: 셜록의 기억의 궁전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는 작중 인물 셜록홈스의 '기억의 궁전' 씬이 등장한다.

셜록이 여러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어떻게 정리하고 조합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조용한 공간에서 글자들이 휙휙 움직인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부럽기도 했다.

저게 된다고? 대박이네. 어떻게 하는 거야 저거.


드라마 속 셜록의 방법을 따라 해보려 했다.

그의 머릿속 정리법과 맥이 통하는 생각정리법 관련 영상강의, 도서도 있었다.

관련 콘텐츠에서 얻은 조언을 따라 머릿속에 서랍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 서랍에 차곡차곡 정보를 저장하는 것을 시도해봤지만 실패했다. 내가 컴퓨터가 아닌 이상 폴더를 나누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부작용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머릿속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늘 머릿속에 생각의 소용돌이가 있으면, 종종 압도된다. 압도되었을 때 가장 자주 발생하는 상황은 길고 잦은 멍 때리기. 그리고 최근 들었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실제로는 가만히 앉아있었음에도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만으로 지치고 힘들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지치고,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으로 의미 없는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축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또 추가되고, 또 다른 생각이 추가된다. 소용돌이가 점점 커진다.


머릿속 정리 시도 2: 생각을 머리 밖으로 끌어내기

이 생각 폭풍이 좀 잠잠해지는 때가 언제였던지 회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누군가를 만났던 때였다. 사람을 만나 내 근황이나 어떤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머리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안 지 얼마 안 되었다.


라라크루 2기 활동은 최소 주 2회, 온라인 플랫폼에 자신이 쓴 글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활동에 참여하려 노력하다 보면 글감을 탐색하고, 그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내 머릿속 이야기를 머리 밖으로, 텍스트로 툭 던져 놓는 것이다.


활동 초기에는 몰랐는데, 활동 전보다 자주 글을 쓰면서 머릿속 폭풍의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다.


이걸 깨달은 뒤로는 한바탕 생각이 휘몰아칠 징조가 보이면 생각을 텍스트로 옮길 준비를 한다.

타이핑이나 필사가 가장 좋고, 그게 안 된다면 아직 오타가 많이 나지만 내 작은 모바일 기기도 괜찮다.

생각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 내놓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꺼내놓으면, 신기하게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머릿속 폭풍에서만큼은 빠진다. 기분도 한결 가뿐해진다. 이때, 폭풍이 가벼워지는 느낌은 머리가 가벼워지는 것 같다.


이렇게,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머릿속 폭풍을 잠잠하게 하는 방법 하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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