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yer Nov 25. 2022

내 의연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타인이 말해준 내 강점, 의연하다

최근, 이런저런 체육활동을 기웃거리며 시도하고 있다. 한 번은 수영을 하다가 휴식 중에 함께 레인에 있던 분이 내게 해주신 말이 있다.

(누구랑 같이 오지 않고)
혼자 운동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구경하거나 쳐다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의연함에 놀랐다, 멋졌다.

담담한 말투로 나의 강점 한 꼭지를 짚어 전달해주었다. 그 섬세함과 솔직함 그리고 따듯함이 고마웠다.

나는 그냥 혼자 운동하는 모습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고 나서 문득 궁금해졌다.

내 의연함의 뿌리는 무엇일까? 기억을 더듬어서 추적해보았다.


의연하다(毅然하다): 의지가 굳세어 끄떡없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나 혼자 탐구해본, 내 의연함의 발달과정

비자발적 연습과 자발적 훈련

방법과 시기에 따라 각각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방법별로 구분해본다면, 비자발적 연습과 자발적 훈련이다.

우선, 고등학생 때 한 선생님께서 내 숫기 없음과 자신감 없음을 고쳐주겠다고 하시며 일부러 발표를 많이 시키시곤 했다. 이것이 비자발적 연습이었다. '나설 줄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은 못 느끼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기 때문에 '의연한 나'를 만들어가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훈련한 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 훈련의 결과물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한 조각으로 남아있다.


중학교 다닐 때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애쓰던 시기"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공부밖에 모르던 범생이였다. 드라마나 KPOP, JPOP에 흥미가 없어 이야기 섞을 것이 없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다른 동급생들에 비해 서로 같이 있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적었다. 별로 공유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없다 보니 학교에서 겉도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외톨이가 된다. 그리고 저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는 그 시기엔 왜인지 모르겠으나, 외톨이를 괴롭히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 중에서 중학생 시기가 암흑기였다고 자부하는데, 마음은 많이 아팠지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지나왔다.

그 시기에 깨달은 것들이 굉장히 많다. 그중 하나가 크게 반응하지 않으면 조용히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짓궂은 괴롭힘에 반응을 하면 할수록 더 자주, 더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려 노력했다. 물론, 의연함의 필요성을 깨닫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노력하던 초반이라서 "애쓰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 내 동급생들이나 선생님들 보기에도 애쓴다는 티가 났을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는 "습관 형성기"

내 모교인 고등학교는 독특한 곳이었다.

당시 대학입시 전형 중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서 그 전형이 적용되는 유일한 학교였다. 그래서 그 전형을 전략 삼아 진학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동급생들은 공부에 열의가 없는 편이었다. 대신 다른 곳에 재능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런 동급생들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매일 작은 연못 옆 농구코트에서 놀라운 농구 실력을 보여주는 모습, 축구를 잘하는 이들도 물론 많았고, mp3 등으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복도나 교실에서 춤판을 벌이기도 했으며, 노래 실력이 정말 뛰어난 이들도 있었다. 한 번은 내 옆자리 동급생이 격투기 선수라는 것도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전통문화 특화사업 학교로 선정된 곳이라 태평소를 불고, 민요를 부르는 동급생도 있었다.


이런 자유분방한 재능의 요람에서도 대학 입시에 대해 나름의 전략과 목표를 갖고 진학한 학생들은 공부에 매진하려 애썼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많은 동급생들이 졸고 마는 수업시간과 자율학습 시간, 빼버리는 보충수업과 야간학습 그리고 흥미로운 각양 각색의 놀이 판을 벌이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로 목표 대학 진학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보겠다며 책과 노트를 놓지 않았다.

흥겨움 속에서 잠잠하게 어제의 내가 정해둔, 오늘 해야 할 공부량을 확인하고 글자를 읽고, 문제를 풀면서 의연하게 내 할 일을 하는 습관을 형성하는 시기였다.


대학에서는 "무념무상기"를 보냈다

대학 4년 간 통학을 했는데, 왕복 4시간이 걸렸다. 겨울이 되면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고 해가 지고 나서 귀가하는 별보기 운동을 자연스레 하는 생활이었다. 본래 아침잠도 많은 편이라 1학년 1학기에 정말 힘들었는데,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팀 프로젝트 회의 참여와 개인 할당량 준비도 어려웠다.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부터 시도했다. 하지만, 다음날 일정 소화에 악영향을 준다는 단점이 컸다.


그래서 긴 통학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버스와 전철에서 깨어 있는 연습을 하려고, 당시에 좋아했던 유튜브 게임방송, 보고 싶었던 영화 스트리밍, 자기 계발 조언 강의 등을 들었다. 이동 중 잠들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후에는 지옥철이든 한산철이든 예습 복습 과제 시험공부 등이 가능할 정도로 오디오 자료나 쪽지 자료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이동 중 공부자료로 활용했다. 종종 전공서적을 들고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든 이 학습 환경에서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에, 누가 보든 말든 내 할거 하겠다는 의연함을 장착한 시기이다.


이 통학 교통수단에서의 특훈 덕에 웬만한 학교 공간 어디서든 자리 잡고 집중할 수 있는 스킬을 얻었다. 예를 들어, 복도. 길 가다 필 받았을 때는 광장에 자리 잡고 앉아서 안 풀리던 문제를 다시 풀어내기도 했다.

*다만, 전철과 달리 너무 조용한 열람실은 오히려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인위적으로 조용한 공간은 갑갑했다. 아마 평소에 집중하는 환경과 달라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던 것 같다. 다른 동기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열람실과 도서관 자리를 탐색했고, 나는 복도를 배회하다가 맘에 드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공부하곤 했다.


대학에서 졸업한 후에는 "심화 적용기"

새로운 분야, 새로운 환경에서 의연한 태도를 적용하는 시기를 보냈다. 공연계에 뛰어들겠다고, 오디션도 보고 아카데미에 들어가 공연을 만들고 올리며 예술학교 진학도 노리던 때였다.


연극 뮤지컬에서도 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성향이 내성적인 사람이 많다더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성향과 달리 자기 분야에 대한 자부심과 진지함은 무서울 만큼 강하다. 그 '강하다'라는 느낌이 바로 '기가 세다'라고 말하는 느낌인 것 같다. 시험장과 오디션장, 유명한 선배들의 특강 장소마다 이런 '강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런 강한 사람들에 대한 예시: 조용하지만 다 흡수해 가겠다는 의지와 나는 빛나는 배우가 되겠다는 열망을 갖고 눈을 빛내며 훈련 또는 명상 또는 연습에 몰두한 사람들.

긴장되고 떨리더라도 기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 진지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경력도 없고 경험도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나도 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칭, 시뮬레이션, 연습을 했다. 책 공부에만 활용하던 의연함을 다른 분야에서도 더 힘주어 활용해본 것이다. 이게 되네? 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부터는 "이미 내 것이 된 시기"이다.

사람이 있건 없건, 누가 보든 말든 내 할 것을 한다.


어쩌다 식당에서 혼밥을 하게 되어도 글감이 떠오르면 이면지를 꺼내 아이디어의 잔상을 문장으로 남긴다.


길을 가다가 하늘이 너무 예뻐 폰 카메라 렌즈를 하늘로 향했을 때, 지나가던 행인 1과 2와 3과 4와 5가 내 행동을 신기하게 쳐다봐도 아름다운 하늘을 사진으로 담는 것을 서두르거나 대충 하지 않는다.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데 즐겁게 심취한다.


매 순간 나 자신을 다듬어간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가을에 숲 산책을 하다가 발랄하게 식량을 찾는 청설모를 보며 '누가 보든 말든 발랄하게 내 할 일을 하는 마이웨이, 저 모습을 본받아 인생 교훈 삼아야겠다'라고. 그런 내용을 담은 글을 발행한 적이 있다.

당시 내 친구들은 '너 이미, 원래 그렇게 살고 있잖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그리고 이렇게 글로 나의 의연함의 역사를 추적해보니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각 상황에서 애쓰고 노력해서 다듬어진 모습이구나.

오랫동안 다듬어 내 일부가 된 의연함이라는 조각이 꽤 맘에 든다.

:D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Omid Armi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비우기 위해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