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yer Jan 16. 2023

본질을 이해하고, 자기 언어로 표현하기

김신록 배우 인터뷰를 통해 늦게나마 얻은 연기 인사이트

공연에서 배역을 맡는다는 것은 다른 인물로 살아볼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인물을 표현해내야만 한다는 책임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공연을 해보기 전까지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연을 진지하게 공부하면서는 '우와 이거 어떻게 해야 해'하며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항상 어려웠다.


연기 공부를 할 때마다 머릿속을 떠도는 질문이 있었다.

"다 직접 해봐야 해?
그럼, 범죄자/살인자 역할은 뭐야.
초능력 영웅 역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당장 이 역할은 어떻게 준비하지?"

이 질문에 대한 그 당시 나의 답은 '최대한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참고한다'였다.

인풋이 많으면, 그중에서 이것저것 조합해서 결과물을 꺼내놓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존인물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연기를 참고'한다는 것은 성대모사와 같았다.

내가 인물을 표현하고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해석을 따라가려고 노력할 뿐인 것이었다.


맡은 역할에 대해서 누군가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표현하는 법에 대해 늘 고민했다.


이와 관련해서 도움이 될 자료를 하나 발견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배우 김신록이 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연기론을 들려주었다.


김신록 배우의 연기론을 보고 들으며 연기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리고 늦게나마 예전 내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해본다.

배우 김신록의 연기론 영상

자신의 연기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김신록 배우는 출연작 중에서 <지옥>을 언급한다.

내가 김신록 배우를 처음 본 작품이기도 했다. 다른 인물들보다도 김신록 배우의 인물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작품이기도 하다.

해당 작품에서 김 배우는 지옥으로 갈 운명이라고 예언을 들은 어머니를 연기했다.

아이들을 두고 특정일 특정시간에 꼭 죽을 운명인 어머니.

아이들에 대한 애착, 걱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반응하는 모습 등을 표현하는 모습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김 배우는 자녀가 없다고 한다.

"자제가 없는데 엄마 연기를 어떻게 잘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엄마라는 배역에 대해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살인자를 살인자, 엄마를 엄마'라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자기 언어로 재구성한다.


이 말을 들으며,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나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잘할 때 활용하는 방법'은 상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영화 <세 얼간이>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기계에 대한 정의를 누가 들어도 쉽게 설명한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의 똑똑함, 유연함, 센스가 드러난다. 교과서에 나온 정의를 그대로 읊는 동기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은 거추장스러운 단어 하나 쓰지 않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한 번은 김설진 안무가(2015 댄싱 9 우승자, 드라마 <스위트홈> 안무디렉팅 등)의 특강에 갔는데, 거기에서 김설진 안무가도 비슷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안무로 표현할 때,
표현하려고 하는 것(사물/인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걸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시계를 춤으로 표현한다면, 대부분 시곗바늘을 형상화하지만, 안무가 자신이라면 좀 더 시계의 본질을 떠올려볼 것이라고 했다.

시계의 본질은 바늘이 아니라 내부의 기어니까, 그 부분을 형상화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곤 움직임으로 둘의 차이를 보여주셔서 이해가 단번에 되었다.

TV화면으로 춤을 볼 때도 표현력과 유연성에 놀랐지만, 현장에서 본인에게 직접 표현에 대한 주관을 듣고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천재구나. 이런 면이 바로 천재성을 결정짓나 보다."


책 공부와 연기와 안무의 공통점이 보이기도 했다.

연기, 안무, 책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상통하는 것 같다.

* 나는 '학교에서 공부 잘함, 학교 성적이 좋음'에서 '학교공부, 학교성적'을 판가름하는 것을 '책 공부'라고 표현하곤 한다.


주어진 상황, 이론 등을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완벽하게 숙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언어로 표현하기란, 어느 분야에 대해서든 통하는 '잘하는 방법'인 것 같다.


이 연기론과 관련해서, 당시엔 내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 채 인물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적이 있긴 있다.


한 번은 비리 경찰 역할을 맡았다. 공공의 질서를 지키는데 앞장서야 하는 직무상 역할과 정반대로 사는 인물이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 없고, 공익이 아니라 거대 기업의 수장에게 휘둘리는 인물이었다. 악인의 편에서 행동하는 졸개였고, 얼마나 악한지 악인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살인해 놓고는 태연하게 휘파람 불며 청소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이코 같은 인물을 표현하려니 막막했다.

이때,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을 참고했다.

필리핀 군부 독재 중,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살인했던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당시 '고문 및 살인을 행한 자들'이 등장하는데, 해당 사건에 대해서 죄의식 없이 말한다. 심지어 그땐 자기가 아주 잘 나갔으며, 어떤 업적을 세웠고 어떤 공을 인정받았는지 자랑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던 장소를 보여주며, "이곳은 피바다였고, 피 냄새가 진동했지"라고 말하고 나서 그 장소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영화를 거듭해서 본다고 해도 그런 인물들에 대해 공감하진 못한다. 하지만, 저런 사고방식을 갖고 살고, 행동하고, 사람을 대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역할을 맡고 공연을 올리기까지 해당 영화를 8번은 돌려봤다. *특정 장면만 반복재생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30번도 더 봤다.

다른 인물의 연기를 참고하는 게 아니라, 실존 인물을 참고하며 배역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려 한 노력이었다. 결과는? 효과가 있었다.

당시에는 분석하랴, 표현하랴, '내 연기를 어떻게 준비했고 어떻게 생각해서 표현했는지'에 대해 글로 정리할 시간이 없어 몰랐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내 방식대로 '잔악한 비리 경찰'역할을 이해하고 표현했다.

'우습지 않은 것을 우습고 즐겁다고 받아들이는 사람'.

그래서 사람이 죽어도 웃고, 누군가 더 끌려가도 웃고, 심지어 매복을 하면서도 농담을 던지며 웃는 인물이었다.

배우로서 들었을 때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무대 위와 아래에서 딴판이다'라는 말이었다. 해당 배역을 연기하면서 동료들에게 그 말을 들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엄청 사악했어... 무서웠어..." 당시 동료들의 평이었다.


책 공부에서 잘 활용하던 '내 언어로 표현하기'.

이 방법을 연기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에 명확히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좀 더 즐겁게 연구하고 몰입해서 효과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커버 이미지 출처: 사진: Unsplash의 Aneta Pawlik

매거진의 이전글 난 너를 보며, 넌 나를 보며 성장하던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