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yer Mar 22. 2023

나는 뮤덕이고, 뮤덕이었으며, 뮤덕일 것이다.

휴덕기를 마치고 돌아온 뮤덕의 고백, 그리고 콘텐츠 글을 쓰겠다는 다짐


나는 뮤덕*이고, 뮤덕이었으며, 뮤덕일 것이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현재도 미래에도 뮤덕일 것이다.

*뮤덕: 뮤지컬 마니아. 뮤지컬 덕후의 줄임말. 연극과 뮤지컬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연뮤덕'이라고도 한다. 나는 연극보다도 뮤지컬을 관람한 비중이 월등하게 커서 뮤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휴덕: 열렬히 좋아하던 분야에 대해서 분석하고 연구하고 소비하는 '덕질'을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 경제력, 심리적 문제, 수험 등에 뜻을 두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탈덕: 덕질하던 분야에 대해 아주 인연을 끊어버렸다는 의미. 이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연예인 팬들만 봐도 누군가 문제가 생겨서 탈덕했다고 하더니, 얼마 후 다른 연예인의 무대와 출연작들을 챙겨보던 걸? 애정하는 대상을 옮겨갈 수는 있지만, 무언가에 깊이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습관을 아주 끊어버리는 것은 어려운 듯하다.


애니메이션 중에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라는 작품이 있다. 이 만화의 초기 시즌을 감상할 때, 주인공인 미도리야 이즈쿠(이하, 미도리야)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여 좀 쑥스러웠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미래 세상,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저마다 초능력을 갖게 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미도리야는 초능력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구하는 영웅을 너무 좋아한다. 정말로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영웅 전문 잡지보다도 구체적이고 집요한 영웅 분석 노트를 만들었다. 인터뷰, 활약 영상, 잡지 분석 스크랩 등을 죄다 섭렵해서 자기만의 인물 사전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초능력이나 인물의 성향과 상성 등에 대해서 분석하는 게 습관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중얼거리며 분석하는 모습이 만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런 모습은 때때로 살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공연에 집중하며 공부하고 훈련하던 시기에 나도 그런 모습이었다.

내 연기와 노래를 녹음하고 녹화해서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연습이나 레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왼발 말고 오른발을 먼저 떼어봐', '손을 좀 더 느릿하게 뻗어봐' 또는 '그런 분위기보다는 이런 느낌의 넘버가 네 음색과 성향에 더 잘 어울려'라며 동료들도 분석했다. 신기하게도, 동료 분석을 하면서 배우는 점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즐겁게 분석하고, 정보를 나누며 공부했다.


그런데, 제삼자가 보기에는 만화 속 미도리야의 모습처럼 좀... 살벌하게, 오싹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고,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달았다.


그래도 공연에 많은 걸 쏟아부으며 집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뮤덕으로서의 일화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내가 선망하던 배우의 레슨을 봐주시는 감독님이 내 표현에 대해서 칭찬하셨던 것이다.


프로 뮤지컬 배우들의 레슨을 해주시는 음악감독님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강의를 갈무리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 여기(내 앞, 동료들의 앞)에서
노래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하는 사람, 손 들어봐!

몇 명은 망설였고, 몇 명은 번쩍 손을 들었다. 나도 손을 들었다.


당시에 나는 뮤지컬 <서편제>의 '살다 보면'이라는 넘버를 표현했다.


감독님께서는 내가 노래하기 전에, 먼저 '어떤 장면에서 어떤 인물이 어떤 내용을 말하는 넘버인지'물으셨다.

내가 어떻게 이 넘버와 인물에 대해서 분석했고,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물으신 것이다.

그리고, 내 대답과 그 후의 노래를 들으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뮤덕이구나? 그렇지?
(나: 끄덕끄덕)
그럴 줄 알았어,
뮤지컬 공부하는 애들이 이 노래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냥 슬프게만 부르거든?
그런데 너는
이 곡이 사실은 슬픈 감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표현하고 있어.

내 분석과 표현을 알아봐 주시는 감독님의 말씀에 신이 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뮤덕입니다.
성덕****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성덕: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린 성공한 덕후. 덕은 계를 못 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한다. 취미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발전시킨다던지,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와 어찌어찌 마주치게 된다던지 말이다.


이렇게나 공연을 좋아했지만, 공연 전문가로서의 진로를 포기하고 새로이 취업 준비를 시작하던 때부터 '공연'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들은 전부 삼갔다. 스마트폰 속 플레이리스트도 싹 갈아엎었고, 함께 공연했던 동료들과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공연을 그만둔다고 마음을 먹고 하나 둘 멀어지는 행동을 실행할 때마다 낯빛이 어두워졌고, 활기도 덜해졌는데 이런 모습을 공연하며 함께 반짝이던 동료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 친구들은 계속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혹시라도 내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을까 봐.


마음이 참 힘들던 시기를 지나왔다.

길을 가다가 버스킹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나는 대학생 때는 두 달에 한 번은 공연을 관람했고, 한창 집중해서 공연 공부를 할 때는 하루에 3가지 공연도 관람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취업 준비 기간 동안에는 공연 관람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시 공연을 하고 싶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싶을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나서 어느 날 번개 모임을 하듯이 온라인 공연을 예매해다가 관람했다.

이제 더는 휙 하고 바뀌는 무대의 마법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하지만, 나름의 즐거움을 느꼈다.

작품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고, 넘버와 장면 전환 등을 이해하는 정도가 깊어졌다.

차츰 다시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제는 음악을 듣거나 이전의 활동 영상을 보거나, 프로의 공연을 보러 가도 슬프지 않다.

최근에는 온라인, 오프라인 공연을 가리지 않고 당기는 공연을 분기에 2~3편씩 관람하고 있다.

다시 부릉부릉, 뮤덕으로서의 시동을 걸고 있는 것 같아 우습다.


이왕 뮤덕의 길로 돌아온 김에, 이제 막 관람한 공연들과 여태 관람했던 공연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공연 썰에 대해서 내 쓰고 싶은 대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다 보면 광대와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썹이 편안하게 풀어진다.

표정부터 편안한데 마음은 얼마나 좋겠는가!

즐겁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다 보면 건강한 글쓰기 습관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찾고 있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취향에 맞는 뮤지컬 넘버를 알게 된다던가, 관심이 가는 배우의 과거 영상을 발견한다던가,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에 꼭 맞는 공연을 알게 되어 다음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던가 말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본질을 이해하고, 자기 언어로 표현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