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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Mar 17. 2023

좋아하는 시(詩) 있나요?

이육사 시인의 <소년에게>, <절정>을 좋아하는 이유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음악의 종류와 그것이 왜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성향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일본 작가의 시에서 따온 문장을 간판으로 내건 가게를 발견했다.

아마 사장님이 좋아하는 작가이거나,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그 문장을 이름으로 선택한 것이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희고 푸른 지음을 노래하며 노래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

내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이육사 시인의 <소년에게> 속 구절이다.


이거 언제 읽었던 시더라? 아마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왜 읽었던 거지? 교과서에 실렸던 것 같아.

갑자기 이 시가 떠오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타래같이 이어지는 셀프 질문과 답변을 하다 보니 핵심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 시를 좋아하지?

소년에게 - 이육사

차디찬 아침 이슬
진준가 빛나는 못가
연꽃 하나 다복히 피고

소년아 네가 났다니
맑은 넋에 깃들여
박꽃처럼 자랐어라.

큰 강 목놓아 흘러
여울은 흰 돌쪽마다
소리 석양을 새기고

너는 준마 달리며
죽도(竹刀) 저 곧은 기운을
목숨같이 사랑했거늘

거리를 쫓아다녀도
분수 있는 풍경 속에
동상답게 서 봐도 좋다

서풍(西風) 뺨을 스치고
하늘 한가 구름 뜨는 곳
희고 푸른 즈음을 노래하며

노래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같이 연상된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_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시의 제목은 '소년에게'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목표점을 향해 멀리 보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소년에게'와 '절정'을 가장 좋아하는데, 모두 이육사 시인의 작품이다.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질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두 작품 모두 문학이나 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의 작품으로 듣거나 읽으며 처음 만났다.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선 상태이지만, 굴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이 그려졌다.

어려운 상황에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져서 좋았다. -<절정>


'서풍 뺨을 스치고 하늘 한가 구름 뜨는 곳'을 노래하지만 지금은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어려움이 나에게까지 미쳤지만 그런들 어떠랴.

이 시에서도 바라는 목표점을 그리며 어려운 현재를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소년에게>


여행을 하며 음악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비긴 어게인> 시즌1에는 윤도현, 이소라, 유희열, 노홍철이 출연한다.

몇 번째 에피소드에서였던가? 각자의 음악적 색깔, 주제, 테마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부분이 있었다. 음악가 삼인방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분이 윤도현 아티스트였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윤도현 아티스트의 작품 테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 동료들과 본인이 말한 그의 주제는 "도전과 평화"였다.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참 부러웠다.

인간은 정리하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자신의 활동을 특정 키워드로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시와 그 작품을 다시 읊으며 왜 이 시가 좋은지 생각해 봤다.

그리고 생각에 그치지 않고 '왜 이 시가 좋은가'글을 써보면서 내 취향이랄까, 테마에 대해서 좀 깨우쳤다.

역시, 분석을 하든 생각을 하든, 자료로서의 흔적을 남겨야 얻는 것이 있구나!


시에 관한 취향으로 알아본 바, 내 테마는 강한 의지, 강단 있는 마음과 정신, 이상향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사고.

음.......  좀 더 힘 있는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한다면,

의지, 의연, 강인함, 이상향, 희망 이런 단어들이 나의 테마라고 볼 수 있겠다.


단 두 가지, 한 가지로 통하는 자기소개를 하기엔 아직 멀었다.

하지만, '내 테마는 없다'라고 하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여담

키 크고 강인해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아기자기한 소품을 보면 눈을 못 뗀다고 했다.

그리고 키 작고 앙증맞아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큰 액세서리, 강렬한 소품에 애정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대학에서도 듣고 고등학교에서도 들었고 공연하면서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 나, 우리 가족들을 돌아보면 대체로 맞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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