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보러 가는 대신 뮤지컬 곡을 불렀다

일상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목표-성장-성취'사이클 만들기

by Sayer

최근에 어떤 뮤지컬을 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안 보기로 결정했다.

무대에서 가장 먼 꼭대기 좌석인데도 티켓 값이 비쌌고, 줄거리도 넘버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이 작품은 꼭 봐야 해!라는 결정적인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작품을 보러 가는 대신, 그 작품 속 넘버를 불러보기로 했다.


우선 연습실을 두 시간 예약했다.

그런 뒤에 악보를 뽑고, 넘버를 표현하는 캐릭터의 성향과 그 캐릭터의 인생사, 작품에서 해당 캐릭터가 이 넘버를 어떤 상황에서 부르는지 등을 분석했다.

분석할 때, 원작 만화와 영화, 드라마, 뮤지컬의 영상과 그림, 텍스트 자료를 활용했다.

악보의 빈 공간과 뒷면에 빽빽하게 자료 메모가 쌓이고, 내가 정리한 메모를 읽으며 이 인물이 이 노래 한 곡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에서 세 마디 정도로 압축해서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연습실에 가기 전에 실행하는 활동들이다.

이다음부터는 연습실에서 진행한다. 예약으로 정해놓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할 수 있는 작업은 빠르게 지나간다. 예를 들면, 악보의 멜로디 익히기다. 악보의 멜로디 음표를 건반 하나하나 눌러가면서 정확한 음을 찍어본 후에 발음을 연습해 본다. 납작한 소리가 나지 않게, 반음이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부분도 왜 그런가 확인해 보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 실행해 본다. 가사, 반주와 어울리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게 단어와 문장을 끊어 연습한다.

그다음에는 단락별로 노래의 기승전결 에너지 변화를 주는 것을 고민하고, 연습한다.

이 정도하고 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이해할 수 있어. 이제 할 수 있어.'

녹음 앱을 켠 채, 한 곡을 끊지 않고 불러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면, 다시 수정해서 연습하고, 또 완곡을 해본다.


뮤지컬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콘테스트나 오디션에 나갈 목적도 아니다.

과제도 아니고, 누군가 부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분석을 하고, 연습을 하고, 열심히 넘버를 표현하려는 걸까?


인물 분석을 하던 중에, 다른 작품에 대해 한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다가 답을 얻었다.

나: 친구야,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작품이며 인물 분석을 하고 있을까ㅋㅋㅋㅋㅋ

친구: 그야 당연하지,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학창 시절에는 '나중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꿈, 장래희망, 진학 목표 등에 기대어 살았다.

MBTI며 강점혁명 등 자기 분석 도구들을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의 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은 목표, 성취, 성장욕구였다.

더 배우고, 문제를 더 풀고, 질문을 해서 모르는 것을 해소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모든 학습 과정을 '좋다, 해보자'며 지나온 비결은 원하는 바를 선택하고 싶어서, 더 잘하고 싶어서였다. 실력을 키우면 더 좋은 선택을 하고 더 멋진 것들을 경험하는 기회가 줄지어 올 것이라고 상상했다.


여전히 나는 목표와 성취와 성장을 좋아한다.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학창 시절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변화의 정도가 더디다.

매 분기, 잦으면 매달 시험과 수행평가 등이 있었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기 편리했다. 외부에서 쥐어준 '수행평가, 기말고사, 학력고사' 등의 평가에서 이전보다 높은 점수받는 것!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성장했으니 기뻐하고, 바로 다음 목표 달성을 위해 준비했다.

공부 자체보다는 그 '목표-성장-성취'의 사이클이 좋았다.


그런데,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서부터 그런 편리한 성장 사이클은 구경하기 어려워졌다.

목표와 성장과 성취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가 어려운 삶은 나를 자주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그런 마음이 들면 줄곧 극한의 스케줄을 잡곤 한다.

하지만, 극한의 스케줄 작전에는 함정이 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스케줄을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다 보면 바쁘긴 하지만, 성장에 대한 성취감은 없다. 심신의 피로가 더 몰려온다.

셀프 번아웃을 해버리고 만다.


이번에 연습실에 다녀왔던 것도 사실 이 '극한의 스케줄 작전'속 n번째 스케줄이었는데,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이 스케줄만큼은 즐거웠고, 몰입했고, 피곤하지 않았다.

이 점에 주목해, 앞으로는 '성장하고 싶다, 나에게는 목표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어우 무기력하다'라고 느끼는 상태에 빠진다면 넘버를 고를 것이다.

'표현하고 싶은 넘버'를 평소에 장바구니에 담듯이 리스트로 작성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한 곡을 고른다. 선택한 곡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연습하고 표현한다. 이 전에 표현해 봤던 곡을 다시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경주하듯 몰입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기는 어렵지만 ㅋㅋㅋ

즐겁게 일상 속 나의 활력을 위한 안전망이자 버팀 기둥이자 놀이를 찾아낸 것 같아 든든하다.


부른 곡: 뮤지컬 데스노트, 비밀의 메시지​


커버 이미지 출처: 사진: Unsplash의 David Be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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