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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Nov 23. 2023

동생이 인정할 만큼의 애독가

"누나만큼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은 흔치 않아"

고등학생일 때, 문학 선생님께서 한 번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음, 책을 많이 안 읽는구나."

읽는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문제집과 가끔 딴짓 삼아 읽던 소설 한 달에 한 권 정도. 그리고 경제신문 한 가지. 이 외에 읽는 것이 없어서 그랬던 걸까? 어디에서 티가 났던 걸까?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누나만큼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 흔치 않아, 누나."


격주에 한 번씩은 도서관에 가는데, 대여기한이 얼마 안 남았을 때를 빼고는 의무감에 가는 것이 아니다. 폭신한 소파도 있고, 빈백도 있고, 청정기의 소리가 백색소음 같고, 햇살이 잘 비치는 자리에 앉으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기분에 흠뻑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닐 때도 나는 도서관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철제 또는 나무로 된 책장에 책들이 꽂혀있고, 검색용 컴퓨터 한두 대에 딱딱한 의자와 높이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책상이 나란히 놓여있는, 소파가 있긴 하지만 폭신함은 이리 앉아도 저리 앉아도 느껴보기 어렵던 때에도 나는 도서관에 종종 들렀다.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가 좋았다. 책을 고르는 것도 즐거워한다. 책 고르는 것을 좀 더 '대중적'인 예시로 들어보자면,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에서 '오늘은 뭘 볼까'하고 고민하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터치하고 밀어보는 것! 그런데 그렇게 영상 콘텐츠를 고를 때보다 더 신이 난다. 방, 집 밖으로 나가면 기분이 업되는 내 성향 덕도 있지만, 도서관, 큰 책장 앞에 서면 다른 장소에서보다 더 차분하게 집중하고, 배시시 웃을 때가 많은 것이 꼭 평소에 봉인되어 있던 내 어떤 부분이 봉인 해제 되는 것 같다.


동생의 '누나 책 많이 읽어, 정말로.'라는 말을 종종 들으며 요즘 되새겨보건대, 진짜 그 말이 맞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1,000자 정도 되는 독서기록을 제출하는 과제를 어려워하는 성인들이 많다. 어떤 책을 읽을지 몰라, 베스트셀러나 인기도서, 다른 사람의 추천도서만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기별로 내 흥미에 따라 책을 골라 짚는다. 종종 계획적이고, 자주 즉흥적으로 읽을 책을 고른다.

고등학생 때는 모차르트의 편지 모음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수학 교과 선생님께서 책을 참 다양하게 읽는구나 하며 감탄 또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즈음 읽었던 책은 소설 <브이>(동명 드라마로도 유명함)이다. 엥? 다시 생각해 보니 의아하기도 하다. 한 선생님께서는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아쉬워하셨고, 다른 선생님께서는 책을 참 다양하게 읽는다며 감탄하셨다. 문과 기준의 시선과 이과 기준의 시각 차이였던 걸까? ㅎㅎㅎ



커버 사진: Unsplash의 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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