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개, 같은 삶

by 김태한

멈춰 선 버스 안에서 시선을 밖으로 건네니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와 그 앞을 두어 걸음 앞서가는 여자가 보인다. 아마도 모자지간이리라. 앞서 걷는 여인이 뒤돌아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빨리 와!"라며 소리친다. 뒤따르는 어린아이는 자기 몸만 한 책가방을 매고 두세 걸음씩 종종거리며 따라 걷는다. 얼굴엔 긴장이 묻어있다. 그 긴장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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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큰 이모네 강아지였던 '유월이'가 떠오른다.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집에 십수 년 전, 생후 며칠 되지 않은 강아지 한 마리를 며칠간 맡아 둘 기회가 있었다. 강아지라면 기겁을 하던 어머니는 쌍수를 들고 노발대발하셨고, 점잖은 아버지는 짐짓 못 본척하며 가까이 오면 발로 밀어두곤 했다.
강아지는 말티즈 종이었다. 크기는 손바닥보다 조금 컸으며 온몸은 눈 뭉치를 뭉쳐 놓은 것 마냥 희었다. 두 눈은 바둑알 두 개를 얹어 놓은 듯 까맣고 잡종인지 코는 얼룩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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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라는 것이 사람과 같아서 첫 며칠은 눈치 보고 자신의 방석 위에서 눈치를 보고 벌벌 떨었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제 집을 만난 어린아이 마냥 이 방 저방을 뛰어다녔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지고 나선 아버지 퇴근길 엘리베이터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현관 앞으로 뛰어가 앉아 있곤 했다. 강아지를 그토록 싫어했던 가족이 그를 보며 웃음을 만들어 보였다. 6월에 집에 들였으니 이름을 '유월이'라고 지어 주었다. 유월인 앉아 있는 어머니 다리 위에 올라가 앉기도 했고 졸리면 집 안 아무 곳에서 나 뻗어 잠들곤 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약속했던 유월이를 보내야 하는 날이 되었고 나는 큰이모에게 유월이를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문을 여는 순간 어머니는 베란다 쪽으로 급히 몸을 돌려 앉으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 내었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뭐 하시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얼굴을 훔치며 말씀하셨다.

그것도 생물이라고 없으니 서운하다.

그 짧은 며칠의 시간에 정이 들어버린 경험은 인연의 소중함과 질긴 잔인함을 느낀 사건이었다.
생각을 거두고 그 어린아이를 찾았을 땐 목젖이 드러나라 웃는 여대생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 아이도 사춘기를 겪을 것이고 취업난에 고민을 할 것이고 결혼에 걱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녀의 미래를 걱정할 것이다.
수년 전 큰이모 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찾은 집에는 잊고 있었던 유월이가 있었다. 양 귀는 핑크로 물들어 있었고 털을 다 밀어내어 앙상한 갈비가 울퉁불퉁 굴곡져 있었다. 뒷발은 절고 있었고 바둑알 같던 두 눈은 연신 뒤룩뒤룩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녀석이 오줌을 하도 아무 곳에 나 갈겨대는 바람에 성질이 불같은 큰이모가 야단을 호되게 치는 모양이었다. 결국 오줌 갈기는 행위 자체를 포기한 녀석은 방광염이 걸렸고 심신이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친척 누나의 설명이었다.
나는 변해버린 유월이를 보며 인간의 잔인성과 지독한 개인주의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미물에게 보내버린 처절한 미안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어서 빨리 탈출하기를 바랐고 어쩌면 단명해주길 바랐다. 집으로 돌아온 뒤 몇 날 며칠을 그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리곤 무섭게 잊어버렸다. 나 역시 잔인한 인간이었다.
다시 생각을 그 어린아이로 돌렸다. 그 아이의 눈에서 유월이의 눈을 봤다. 두려움이 그득한 눈빛으로 제 주인을 따라가는 이의 눈빛이 보였다. 그 어미가 그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해주길 바랐고 그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한 삶을 살아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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