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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한 Jan 05. 2020

음원 사재기에 대한 생각

더 이상 진실이 없는 세상

스무 살 초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일입니다. 당시 변변치 않은 학벌에 돈도 없고 꿈도 없던 저는 매일 같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돈만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던 그 시절 머리엔 온통 돈 생각뿐이었고 그렇게 어설프게 손을 댔던 주식은 그간 모아 놓았던 수 천만 원의 돈을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결국 변변한 직업도 없이 하루를 연명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야, 우리 하우스 할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 녀석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하우스’라는 곳을 운영하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하우스? 그게 뭔데?”

“그게 있잖냐. 너 PC방에서 사람들 많이 하는 게임 알지?”

그에 입에서 나온 게임은 당시 PC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던 롤플레잉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즐기는 차원이었으면 괜찮은데 너무 깊게 빠진 나머지 게임에서 사용한 아이템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에 판매가 되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방을 구해 그 안에 수십 대의 PC를 놓고 오토로 돌린다는(요즘에는 이것이 매크로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것이었습니다. PC가 자동적으로 적들을 죽이고 간혹 고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 그것들을 판매해 수익을 내는 구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려운 처지에 귀가 솔깃해 그러 마하고 진행을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일확천금이란 환상은 미수에 그쳤던 일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즐겨보는 편입니다. 적어도 사회의 억울한 단면과 부조리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청을 하게 됐는데요. 어제는 ‘음원 사재기’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방송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대형 음원 사이트(멜론, 지니 등)에 가수들이 top 100안에 들어야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고 일부 가수들과 기획사들이 자신의 소속 가수들을 차트인 시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수 백 개의 창을 띄어 놓고 소속 가수의 음원을 지속적으로 재생한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결국 재생이 많이 된 음원은 차트에서 점점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고 대중들은 무분별하게,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20년 전의 그것과 ‘똑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만 다를 뿐 노력을 들이지 않고 프로그램을 돌려(매크로) 수익을 내는 것. 결국 정직하게 노력해 결과물을 낸 사람들은 잊히고 자본으로 금칠을 한 사람들만 살아남는 이상한 구조가 더 발전하고 되풀이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보고 싶어 표를 예매하려 인터파크 티켓에 들어갔는데 티켓이 오픈됨 과 동시에 좌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티켓을 예매하려면 오픈 정시에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고 해당 콘서트를 클릭. 복잡한 보안 문자를 누르고(DFHNCRURK와 같은 문자), 해당 날짜를 클릭, 해당 회차를 클릭. 그리고 손톱보다 더 작은 좌석을 클릭해야만 예매가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티켓 예매 절차를 연습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니 얼마나 경쟁이 치열했을지는 불 보듯 뻔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이 모든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수 초 안에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서칭을 하다 보니 이것 또한 매크로 시스템을 쓴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알아서 자동으로 모든 과정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학 수강 신청에도 이 프로그램이 등장한다고 하더라고요. 참으로 기가 차고 코가 찰 노릇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연예. 모든 분야에서 어쩌면 우리는 조작된 세계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조작된 세상 속에서 살겠지요. 소수의 이익을 위해 마치 들러리를 서고 있는 이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조작들이 많아질수록 통하는 것은 ‘진심’ 일 것이라는 순수가 아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성적이고, 진심을 담으면 조작된 시스템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이 더욱 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는 어쩌면 조작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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