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을 들어야만 사는 그대에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K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내내 학급에서 반장을 도맡아 했습니다. 단정한 외모에 서글서글하게 웃는 인상, 상위권 성적인 그를 동경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를 좋아해 언제나 그를 칭찬했고 그럴 때면 늘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곤 했습니다. 그는 당시 학업과 등진 저에게도 친숙하게 대해줘 우리는 곧잘 함께 어울려 놀곤 했습니다.
수능을 마치고 성적이 좋지 않았던 저는 이름 없는 대학에 입학했고 그는 소위 ‘인 서울’ 대학으로 진학해 우리는 각자 인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서른 즈음이었습니다. 워낙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거절을 하다가 결국 어느 날 동창회 자리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막상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구들을 보니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온 친구, 멋진 외제차를 타고 온 친구,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로 헐레벌떡 들어오는 친구 등 다들 잘 된 모습들이 보기 좋은 저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K 도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항상 나서서 의견을 말하고 조율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한쪽 구석에 앉아 말도 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의아해 보이긴 했지만 저도 얘들하고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어느새 그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모임은 저녁 10시가 다 될 무렵 마무리됐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로 나와 한두 명씩 택시를 잡아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거의 모두 택시를 태웠을 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K가 등 뒤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저기.. 시간 괜찮으면 한 잔 더 하지 않을래?”
시계를 얼핏 보니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왠지 그 녀석의 눈을 보니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 요 앞에 순댓국집에 가서 한잔 더하자.”
우리 둘은 바로 앞 순댓국집으로 향했습니다. 술국 하나를 주문하곤 서로 마주 앉았습니다. 그제야 그 녀석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더군요. 고등학교 때와 변함없는 얼굴, 헤어스타일.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 하나가 눈에 띕니다.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는 얼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행동. 학창시절 누구보다 앞에 나가서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던 그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녀석이 술을 연거푸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이미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있었습니다.
“사실 요새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다소 뜬금없는 그의 말에 물었습니다.
“네 것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야 그게.”
그는 또 한 잔 들이켜고 말을 이었습니다.
“난 어릴 적부터 어딜 가든 칭찬을 받고 자랐어. 동네에서는 인사를 잘한다고 어른들께 매번 칭찬을 받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받았어. 너도 알다시피 난 고등학교 내내 반장이었잖아. 그땐 기분이 되게 좋았어. 책임감도 있었고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항상 나만 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거든. 친구들 앞에서 나만큼만 하라고 할 때에는 내가 이들의 중심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 말이야. 그땐 몰랐다. 이것들이 나에게 독이 될 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생활을 할 때도 이런 것이 이어졌어. 리포트를 할 때면 언제나 늘 교수님께서 칭찬을 해주셨고 나와 같이 팀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항상 줄을 섰으니 말이야. 대학 생활도 그럭저럭 잘 해나갔던 것 같아. 근데 문제는 취업을 하면서 생겼어. 회사 생활은 내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 그 안에서 소위 라인도 잘 타야 하고 가끔은 눈 감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도 생기곤 했지. 잘하는 법만 배워온 나에게는 그것이 힘들어졌어. 상사는 점점 나에게 칭찬을 해주지 않았고 그럴수록 난 더욱 칭찬받기 위해, 정확히는 그 사람 눈에 들기 위해 발버둥을 쳤어. 그것이 화근이었지. 칭찬에 목마른 나에게 상사는 업무 외적인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난 늘 그렇듯 칭찬을 받기 위해 그것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어. 부장님 딸의 리포트를 대신 써준 적도 있고, 개인적인 물품을 배달한 적도 있어. 심지어는 회사 근처에 있는 상사 집의 형광등도 갈아준 적도 있어.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니까 이젠 거절하기도 애매해졌고 공과 사의 기준도 사라진지 오래야. 그래서 요새 좀 힘들다.”
'칭찬강박증후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얼마 전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칭찬을 과하게 받고 자란 아이들은 직장에 취업한 후 칭찬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의 본질을 떠나서 상사의 칭찬을 받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내 삶의 기준이 나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있을 때 우리의 인생은 바빠지고 건조해집니다.
명심할 것은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에게 주어인 인생 시간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금 편하게 나를 놓아두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