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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한 Mar 03. 2020

엄마와 프라다

“그럴 거면 조그만 가방이나 하나 사주던가!”


이번 어머니 생신을 맞이해 제대로 된 선물 하나 해 드리려고 몇날 며칠을 물어보고 또 물어본 끝에 마지못해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평소 가방이라곤 종이 쇼핑백이 전부인 어머니가 웬일로 가방이야기를 하시는지 물어보니 ‘이모가 시장갈 때 가지고가는 조그만 백’이었습니다. 


평생을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해본 적 없는 어머니이기에 이모가 매고 가는 손바닥만 한 검은 가방이 평소에도 편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 사진첩을 찾아보니 예전 이모네 식구와 함께 밥을 먹었던 사진이 있더군요. 이모 옆에는 어머니가 말한 손바닥만 한 명품 브랜드 P사의 검정색 핸드백이 놓여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끝끝내 귀찮다고 거부를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온가족이 롯데타워로 향했습니다. 연세가 드시고 나선 동네에서 산책 정도만 하셨기에 실로 십 수 년 만의 가족 서울 나들이였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곧바로 7층에 위치한 명품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슬며시 멈추며 7층에 멈췄습니다. 문이 열리고 발걸음을 내딛던 어머니가 순간 멈칫하더니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춰 물어봅니다.


“여기 비싼데 아니냐?”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불안합니다.


“비싼데 아니야. 얼른 들어가서 구경이나 한번 해보셔요.”

머뭇거리는 어머니 등을 떠밀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습니다. 연신 두리번거리는 어머니를 동생과 나란히 모시고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새 멀찍이 혼자 걸어오시더군요. 그 모습이 마치 30년 전과 꼭 닮았습니다.


휘황찬란한 매장들을 지나자 끝 쪽에 위치한 P사 브랜드가 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본주의 미소를 머금은 입은 직원이 마중 나오며 환한 미소로 안내를 합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보고 오신 물건이 있으실까요?”

“네. 작은 검정색 백을 보고 싶은데요.”


얼마간의 대화가 오가고 그녀가 안쪽에서 핸드백 한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한 눈에 ‘이모가 시장갈 때 맨’ 다던 검정색 백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이게 맞는지 확인하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대뜸 직원에게 되묻습니다.


“얼마에요?”


그녀는 이미 너무나 많이 말해버려서 로봇이 된 듯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답했습니다.


“네. 고객님. 이게 원가가 백팔십 오만...”

“네!?”

미쳐 말을 끝내지 못한 그녀가 움찔했고, 옆에서 듣던 우리도 어머니의 고성에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제 몸을 돌려 세우며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미쳤구만. 너 지금 들었냐? 무슨 손바닥만 한 가방 하나가 이백만 원이냐. 이백만 원이!! 어서 나가자!” 

말을 하는 도중에도 제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어서 나가자는 싸인을 보냈습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매장을 나와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쳤어? 미쳤어? 지금 이 가방 얼마주고 샀는지 알어? 너 거기 알지 6-3번 타고 내리면 시장있는거 거기서 만 삼천원주고 산거야. 이걸 지금 3 년째 쓰고 있는데. 어찌나 질긴지 아주 튼튼하다고. 근데 백만 원이 말이되? 어?”


다급 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데 문득 어머니 얼굴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잘 다니던 직장도 나오고 사업한다고 이리저리 헤매고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른들은 왜 더 빨리 늙어지는 것일까요? 못 본새 짙게 패인 이마의 주름이 그날따라 왜 그리 선명했을까요?


동생에게 눈치를 줘 어머니를 다른 자리로 모시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매장으로 들어가 가방을 구매했습니다. 이후 처리하는 과정이 조금 시간이 걸린다기에 잠시 매장 밖으로 나와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조금 전 어머니의 표정, 실랑이하던 모습, 카페로 향하는 뒷모습이 하나 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얼굴도 자주 뵙고 앞으로 조금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 기사를 보고 있는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매장 앞을 쳐다봤습니다. 시선을 둔 그 곳에 한 노년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약간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고 언제 했는지도 모를 파마머리에, 코끝에는 돋보기가 얹혀 있었습니다. 시선을 따라 내려가니 그녀의 옆구리에는 쭈굴쭈굴 한 자그마한 가방이 매달려있었습니다. 낯이 익다하고 잠시 바라보는데 그녀가 우리 엄마임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안절부절 하며 매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안을 넘겨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어머니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아니, 차 마시러 간 거 아니었어요? 다 어디가고 왜 혼자 여기 계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대꾸도 없이 덥석 제 손을 잡고 그녀 손에 가지고 있던 것을 얹어주곤 힘주어 제 손을 힘껏 말아 쥐었습니다. 놀라서 내려다보니 제 손엔 흰색 봉투가 쥐어져 있습니다. 놀라서 물었습니다.


“이건 뭐에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아이고야...미안하다... 가방이 저리도 비싼 줄도 모르고 내가 가방을 사 달라 했다... 왠지 니가 살 것 같아서 돈 뽑아 왔다. 얼마 안 되는데. 이거 보태서 사라.”


그리곤 다시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어머니가 떠나고 봉투를 열었습니다. 만 원짜리 50장이 나란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세게 쥐었었는지 봉투가 구겨진 콜라캔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꼭 저를 닮았습니다. 저 밖에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살아온 온통 구겨질 대로 구겨진 제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순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벗고 닦으려는데 아무리 닦아도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제 마음이 그렇게 흐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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