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공간

by 김태한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들러 저녁을 먹었습니다. 평소 살갑지 않은 아들이기에 대화도 몇 마디 오가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신발을 신으려 현관문으로 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뭔가 하나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꼭 하나가 빈 듯 한 느낌.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봐도 생각이 나지 않다가 티셔츠를 찾으러 옷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번개 같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 넓은 집에 어머니 방과 동생 방 심지어 옷 방은 있는데 바로 아버지만의 공간이 따로 없더군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 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고 나면 어머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있을 공간이 생기곤 했지만 그 순간마저도 아버지의 공간은 좁은 소파 위가 전부였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벌떡 일어나 이케아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작은 책상과 의자, 액자, 스탠드, 러그 그리고 작은 화분 하나를 사서 다시 부모님 댁에 방문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조립하고 이리저리 배치를 해보다 아버지께 작은 서재를 하나 만들어 드렸습니다.


현역 시절 자신의 방이 따로 있을 만큼 오랜 시간 자신의 공간이 있었는데 은퇴하시곤 그런 공간이 단 한 곳도 없이 그렇게 지내오신 아버지. 독서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인데 이제야 그걸 알아차린 제가 이렇게나 무심한 아들인지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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