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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한 Feb 21. 2021

아버지와 K7

아버지가 현역에서 은퇴하신지 벌써 8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시간 참 빠릅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니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 직업에 종사하셨으니 ‘장인’이라고 불려도 될것 같습니다.

퇴직과 동시에 15년 간 함께 했던 중형 자동차를 폐차하시고 제가 드린 경차를 운행하셨습니다. 안전을 위해 중형차를 구입하시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드렸지만 경차가 효율적이라며 한참 동안 경차를 운전하셨고 그 다음 자동차도 경차를 구매하셨으니 은퇴이후 8년 동안 경차만 운행하신 셈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운전을 하면 얼마나 오래하겠니. 이제 좀 큰 차타면서 좀 편안하게 다니는 게 좋겠다. 네가 시간 좀 내서 아버지하고 자동차 좀 보고 와라.”

운전하면 얼마나 오래 하겠냐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그제야 조금은 아차 싶더군요. 평생 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도 이제 좀 편안한 차를 타면서 노후를 보내셔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말이죠.

여러 차종을 고민하다가 아버지와 오랜 대화 끝에 결국 기아 자동차의 ‘K7’이란 자동차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대리점에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집 근처에 기아 매장을 발견하곤 아버지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아버지는 K7에 앉아보시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야...이거 차가 너무 큰데. 시장 좀 다니고 니네 엄마 목이 좀 않좋으니까 그것만 좀 편안한 차면 되는데...이 차는 좀 크다....근데 차는 좋긴 좋네.”

“아버지. 아무래도 엄마도 편안하고 해야 하니까 이 차로 하셔요. 어디 멀리가고 하려면 편안한 차가 최고에요.”

제가 말을 건네자 옆에 있던 영업 사원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버님. 이번에 이 차가 몇 대 남지 않았습니다. 이 모델은 중상 트림으로...”로 시작한 설명은 10분 동안 저도 알아듣지도 못할 전문용어로 가득한 설명이 넘쳤고 “개별소비세 할인하고 이것저것 들어가면 200만 원 정도 할인 받을 실 수 있습니다. 이 차 몇 대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말로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영업 사원은 이야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방문 하겠다 문을 나서며 완벽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설명은 길게 잘 들었다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왔는데.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그 뒤로 그는 수시로 문자와 전화를 번갈아 하며 차량 조건이 좋으니 꼭 구매하시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상담할 때 말도 빠른 편이었는데 연락을 통해 차량이 줄어드는 것을 수시로 이야기 해주니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더군요. 

비교를 위해 같은 브랜드 다른 매장을 가보자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같은 브랜드 대리점에 방문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흔 중반 즈음 되어 보이는 직원이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다가오는 그를 보니 수트 이곳저곳에 무엇을 흘렸는지 얼룩이 져있었고 단추를 잠그지 않아 열린 재킷 밑으로 바지를 잡고 있는 LV모양의 루이비통 벨트의 큰 버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자동차 안에 앉아 이것저것을 설명해 줬는데 설명을 듣는 내내 뭔가 불편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의 ‘말’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전석에 타시고 그는 조수석에 저는 뒷자리에 앉아 그의 설명을 들었는데 주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버님. 이게 계기판. 이게 크루즈 컨트롤 스위치입니다. 아니아니 이거. 아니 이걸 하셔야지. 그리고 이차는 ~ 부분을 누르면 ~ 기능이 있는데 그래서 연비가 아주 잘나와.”

반말인지 존대인지 모를 애매한 화법이었습니다. 왠지 내내 불편하더군요. 게다가 마치 사려면 사고 말라면 말라는 식의 행동. 속으로 한 가지 마음만 들었습니다. ‘차는 이곳에서 봐도 구매는 당신에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버지께 여쭸더니 아버지도 같은 감정을 느꼈더군요. 피곤하시다며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씀에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하는데 사거리 약간 못 미친 곳에 기아자동차 매장이 하나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

“아버지. 저기 한 번만 더 가보실래요?”

“그래. 그럴까? 저기만 갔다가 집에 가자 오늘은 피곤하구나.”

저는 핸들을 꺾어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대리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매장에 들어서자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영업사원이 다가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차량 보러 오셨나요? 천천히 둘러보시고 궁금한 것은 언제든 불러주세요.”

이미 다른 매장에서 둘러봤기에 바로 차량을 말씀드리고 관련 견적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는 관련 리스트를 찾더니 현재 구매 가능한 트림별, 색상별, 할인율 등 일목요연하게 적힌 리스트를 뽑아서 설명을 했습니다. 덧붙여 현재 구매하면 가장 효율적인 차량까지. 설명을 듣던 아버지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집 사람이 목이 안 좋은데 이 차량은 어떨까요?”

“어머님이 목이 안좋으세요? 어쩐 일로 안좋으세요?”

그 뒤로 영업사원은 자신의 와이프도 목 디스크로 고생한 이야기를 하며 목 아픈 사람도 힘든데 옆에서 케어하는 사람도 힘들다며 아버지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저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물론 목이 불편하시면 K7이 제격이란 말도 빼놓지 않고 말입니다.

상담을 마치고 대리점을 나서는 아버지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차량 구매는 저 이에게 하자. 여기가 집에서 조금 멀더라도 저 사람이라면 믿고 사도되겠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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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적자에 허덕이던 SAS 항공을 단번에 턴어라운드시킨 얀 칼슨 사장은 <비즈니스 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보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짐을 잃었다가 찾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승객의 짐을 찾아주는 문제해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짐을 잃고 걱정하고 염려했을 그들의 마음을 충분이 공감하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짐을 잃었던 고객들을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영원한 충성고객이 됩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많은 할인율도 사은품을 하나 더 챙겨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그것에 적절한 대응을 한다면 한명의 확실한 충성고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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