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삼성역에서 볼일을 보고 롯데타워로 급히 이동할 일이 생겼습니다. 이리저리 도착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할 듯해서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인도 끝자락에 서서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습니다. 이윽고 제 손을 알아차린 택시 한대가 오른쪽 방향 지시등을 켜고 정차했습니다.
급히 문을 열고 자리에 앉으며
“롯데타워요.”
라고 말하곤 2~3분여를 달리다가 차 안을 둘러봤습니다. 한눈에 봐도 매우 깨끗한 상태의 차였습니다.
“차가 매우 깨끗하네요. 새로 차를 뽑으셨나 봐요.”
그러자 기사님이 말씀하십니다.
“뽑기는요. 조금만 있으면 15만인데요.”
“네?”
깜짝 놀라 고개를 왼쪽으로 주욱 빼고 확인해보니 계기판은 144,000km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다시 한 번 천천히 택시 안을 둘러봤습니다. 매끈한 대시보드, 먼지 한 톨 없는 손잡이, 초록색의 발 매트. 무엇하나 깨끗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향조차 은은한 라벤더 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시선을 돌려 그를 관찰해봤습니다. 60대 초반의 얼굴, 짙게 패인 이마의 주름이 마치 나이테처럼 이마를 켜켜이 두르고 있었습니다. 햇볕을 가리기 위한 선글라스와 팔 토시, 빳빳한 카라의 폴로티셔츠. 무엇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말을 건넸습니다.
“기사님. 차 안이 너무 깔끔하네요.”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건네는 그의 한마디.
“그럼 당연히 제 사무실인데 깨끗해야지요.”
순간,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곳에서 화장실 가고 식사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해야합니다. 그러니 어찌 근무환경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17년 간 무역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못 쫒다보니 도태되고 말았죠. 사업이 좀 된다고 이것저것 손을 대다보니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수 억 원의 빚뿐이더군요. 그래서 이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요. 이일을 하면서 손님을 바이어라고 생각하며 합니다. 이 바이어와의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난 굶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손님을 대합니다. 그러니 회담 장소가 지저분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 택시가 냄새난다, 지저분하다 말들이 많은데 그런 택시들은‘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필요한 사람만 태우면 된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안 그래요.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태울 수 있는 것. 이번 손님이 만족하고 내려야 다음 손님을 또 태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다른 손님을 모시고 온다는 것. 이런 택시들이 많아진다면 택시의 평이 좋아지겠지요? 요새 ‘타다’다 ‘카쉐어링’이다 처럼 택시를 대체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대체 할 수 없다면 대체 될 수밖에 없다.’딱, 그거에요. 제가 지난 17년 간 무역을 통해 배운 것은 바로 이겁니다.”
기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흥분과 두려움 그 중간의 묘한 감정이 가슴 언저리에 불똥이 튄 것 같았습니다.
5년 전. 회사를 박차고 나오면서 앞으로 닥치는 모든 시련을 이겨내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 록 다가오는 시련에 결국 그것을 피해야할 이유들을 떠올리는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속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가.’
‘어제보다 지금 얼마나 변했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문을 열고 내리는데 그가 한 마디 건넵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문 밖에 서서 그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답했습니다.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1평 남짓한 사무실을 가진 사장님은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